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믿음에 바탕을 두고 꿈을 꾸거나 일을 꾀한다> 이후에 두 달 이상 쉬었던 묻따풀 2024 연재를 재개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일상에서 의문이 나는 주제를 바탕으로 최봉영 선생님과 함께 묻고 따진 내용을 공유하기로 합니다.
그 시작은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똑같은 가치를 지닌 존재다>를 쓸 때 생겼던 두 가지 궁금증입니다. 첫 번째는 주석에 썼던 내용입니다.
[2] '이거다'하는 순간을 늦알이라 할 수 있은지 최봉영 선생님께 여쭤 보아야겠습니다.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보았을 때 '이게 그건가?' 혹은 '그거랑 비슷하다'와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 느낌을 뭐라 불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최봉영 선생님이 만든 단어인 늦알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드리게 된 경우죠.
묻따풀 한 내용을 추려서 글로 쓰려고 하면서 다시 찾아보니 <고양이와 사람이 무엇을 알아보는 단계 비교>에서 '늦알이'의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글에는 늦알이 대신에 '느낌 알음'이라 썼네요.
최봉영 선생님은 아는 것에 대해 느낌으로 아는 것에서 인지와 인식으로 나아가는 단계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늦알이는 한자어 감지(感知)[1]와 비슷한 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늦알이 혹은 감지만 있다면, 이는 생각이 아니라 지각이라 하겠습니다. 늦알이라고 느꼈더라도 생각을 하는 순간 대개는 늦알이 단계에서 생각 단계로 나아간다고 하겠습니다. 제 경우로 돌아가서 '대칭(對稱)'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칭은 늦알이에서 촉발한 느낌일 수는 있지만, 대칭이란 개념이 등장하는 순간은 확실하게 말알이라 하겠습니다. 다만, 명백하게 대칭을 눈으로 본 것이 말속에 담겨 기억하는 경우는 구상일 테고, 대칭이라는 말에 바탕을 두고 녀김을 할 수도 있는데 이를 추상이라 합니다.
알기 위해서 사람은 느낌이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늦알이는 생각의 필수적인 바탕이면서 동시에 구상과 추상이 뒤섞여 생각을 이룰 수 있다 하겠습니다. 최봉영 선생님께서 전형적인 사례를 알려 주셨는데, 바로 '날아가는 코끼리'였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님들은 '날아가는 코끼리'를 본 적이 없겠지만, 상상을 해 보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제 경우는 '날아가는 코끼리'를 떠올리는 순간 어릴 적 보았던 '점보'란 이름의 만화 캐릭터가 떠오르네요. 이에 대한 심상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아마도 다들 상상이 가능할 듯합니다.
최봉영 선생님은 대칭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대칭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된 것은 생활 속에서 우리가 그걸 끊임없이 경험하기 때문이에요.
저도 모르게 반복하던 시도가 자연스러운 일이란 사실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대칭이라는 개념이 우리 겨레에 어떻게 침투(?)해 들어왔는지 상상하게 만드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대칭에는 '대'가 들어가잖아요. 한자 낱말이지만, 우리말에 들어와서는 '대하는'으로 터박이 바탕말이 되었는데, '대'와 '대하는'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개념을 만들어 쓰는 거죠.
그리고 이를 설명하실 때 다음과 같은 도표를 보내주셨습니다.
이어서 대칭이란 결국 '이쪽과 저쪽이 같다'라는 개념과 그 파생이란 사실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영어로 적어 보면 좀 더 분명해지긴 하지만, 대칭 개념은 쪽의 개념인데 서양에서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아요. 대칭이 또렷해지려면 이쪽과 저쪽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해요. 이쪽과 저쪽이 무게가 같던지, 길이가 같던지, 모양이 같던지. 색깔이 같던지.
추가로 '마주하고 있는 것들이 같다'라는 말로 한자 씨말과 일대일 대응하여 이해할 수 있게도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결과적으로 궁금증이 해소된 지점은 선생님께서 정리하신 내용에 추가로 덧붙여 주신 주석을 읽는 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두 포기말을 직접 읽어 보라 하셨습니다.
사물은 이쪽과 저쪽의 대칭을 바탕으로 꼴됨이나 일됨에서 균형, 안정, 동조, 공존과 같은 것이 쉽게 이루어짐
이에 대한 선생님의 부연을 들으며 누리(우주)의 생성과 성장 이치를 듣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포기말도 보겠습니다.
사람은 이쪽과 저쪽의 대칭을 바탕으로 사물들의 꼴됨이나 일됨 따위를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에 필요한 동일성, 규칙성, 논리성, 수식성, 조작성, 제작성과 같은 것을 쉽게 찾아서 이룰 수 있음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짜릿하기까지 했습니다. 기억을 하기 위해 범주화를 만드는 과정을 제가 느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동일성이란 말을 읽고 듣는 순간 묘하게 끌리는 개념인 Integrity가 떠올랐습니다. 한편, 수학과 과학이 역시 그러하겠지만 이쪽은 잘 모르니 제 분야인 소프트웨어로 생각이 나아가 '객체 지향'이 왜 탄생할 수밖에 없는지 그 바탕을 대칭을 두고 설명하는 일을 언젠가는 시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은 <다정한 수학책>의 다발말을 인용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수학자들은 '탐구한다'라는 말 대신 '논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논다는 건 지나치게 목표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별한 목적 없이, 되는 대로 탐구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발견을 하기도 한다.
저는 대칭에 대한 묻따풀을 하면서 교류의 즐거움과 함께 수학자들만 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말을 쓰는 우리도 한국말로 놀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1] 사전을 찾아 씨말 구성을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7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76. 한국인은 상황을 즐길 때 '살맛 난다'라고 말한다
77. 맛보는 과정을 통해 본성이 습성으로 드러나는 배움
78. 생각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키우는 다양한 맛과 문화
84. 사람이 마음 그릇의 울림판을 통해 함께 떨고 운다
85. 몸과 마음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느낌과 앎을 갖는다
86. 열린 우리주의(홍익인간)와 닫힌 우리주의(집단이기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