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 책의 '16. 감과 잡기' 내용을 묻고 따지고 풀어봅니다.
지각과 생각이 일어남에 대해 쓴 포기말(문장)입니다.
사람이 어떤 것을 마주하게 되면 몸과 마음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느낌과 앎을 갖는다.
이에 대해서는 세 달 전에 <지각(느낌 알음)과 생각(녀김 알음)으로 알아보기>에서 풀어본 일이 있습니다.
이어서 다음 포기말을 보겠습니다.
이런 까닭에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과 앎은 언제나 하나로서 어우러져 있다.
앞서 소개한 글에서 최봉영 선생님은 하나로 어우러져 아는 알음을 '느낌 알음'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반면에 이렇게 어우러져 있어서 <대화할 때 사실, 감정, 의미를 구분할 수 있다면>에서 다룬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듣고 말하는 말이 사실만 담은 것인지 감정에 따른 것인지, 혹은 한 사람만 동의할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닌지 따위의 판단 말이죠.
다시 책으로 돌아갑니다.
예컨대 사람이 '섭섭하다'고 말할 때, 섭섭함을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한 느낌을 섭섭한 것으로 알아서 그것을 말로써 여긴 것을 일컫는다.
최봉영 선생님 정의에 따르면 느낌 알음을 '말로 녀겨서 알아보는 힘'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각과 말을 '연결한다'는 생각을 했더니 어제 인공 지능 관련 논문에서 봤던 'transduction'란 표현이 떠오릅니다.
몇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포기말들입니다.
한국인은 임자와 대상의 마주함에서 비롯하는 느낌과 앎을 하나로 싸잡아서, 그것을 '감'이라고 일컫는다. <중략> 대상에 대한 감은 언제나 어느 순간에 통째로 일어나게 된다.
하나는 앞서 배운 '감'과 비슷한 바탕을 가진 듯이 느껴지지만, 사전 풀이로는 구분되는 낱말이란 점입니다.
한국인은 사물이 본디 가지고 있는 힘을 '신'이라고 불러왔다. 바람, 바위, 나무, 짐승, 사람과 같은 사물이 모두 신령한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인은 신령한 힘이 깃들어 있는 바탕을 '감'이라고 말한다. 먹잇감, 땔감, 물감, 일감, 놀잇감, 장난감, 상감, 대감, 영감, 신랑감 따위로 말하는 감이 그것이다.
국어사전 풀이에 따르면 감은 感(느낄 감)을 씨말로 하지만, 앞서 배운 '감'은 토박이 말입니다.
「1」 느낌이나 생각.
한자 사전 풀이를 보면 오감으로 한 번에 일어난다는 내용이 '어느 순간에 통째로 일어난다'는 설명을 보강하는 듯합니다.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제정신이라는 착각>을 읽으면서 우리 뇌가 일종의 예측 기계로 작동한다는 점 그리고 문제 혹은 고통에 대해 따져 묻는 일에 작용해서 만든 생각입니다.
항상 예측을 하기 때문에 예측과 다른 결과에 대해서는 불편한 감정이 들면 우리는 이를 '쓴 맛' 혹은 고통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고통의 정도에 따라 문제라 부르기도 하고요.
국어사전에서 둘은 나눠 놓기만 했는데 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을 설명하는 다발말[2] 입니다.
가암[1]은 한자로 도구道具, 재료材料, 자료資料 따위로 풀이되어 왔다. 한국인이 일감, 놀잇감, 장난감, 먹잇감, 땔감, 물감, 장군감, 신랑감 따위로 일컫는 감은 일이 벌어지는 바탕을 갖고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감이란 말에 대해 배우다 보니 '바탕'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어지는 기분입니다.
사람이 불을 때는 일을 벌이기 위해서는 불을 땔 수 있는 바탕을 갖추고 있는 어떤 것, 곧 땔감이 있어야 한다.
다음 포기말을 읽다 보면 비로소 느낌과 '감 잡는 일'이 다른 듯하면서도 동시에 일어나는 이치를 알 듯도 합니다.
이는 어떤 것이 감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는 임자가 있어야 함을 말하고, 이는 또한 어떤 것이 임자로서 구실 하는 일이 감을 잡는 일에서 비롯하고 있음을 말한다.
(진화적으로) 느낌은 생리적 도구로서 발달한 것이라고 하면, 순식간에 일어나야 효과가 있습니다. 그에 따라 생물체가(인간도) 행동을 할 테니까요. 사람이 문화의 산물인 말에 빚어 기억하는 다양한 경험과 믿음 그리고 느낌이 어떻게 차려져 있느냐에 따라 '감을 잡는 일'이 느낌과 함께 일어날 듯합니다.
그리고 그 감 잡는 일은 지극히 '임자'에 의존하는 일이며, 다시 말해 그가 가진 줏대와 잣대에 따라 결과가 나타난다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어쩐지 '경험이 왜 중요한가?'를 느끼게 해 주는 말로 다가옵니다.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해 감을 잡는 일은 지각하는 마음의 단계에서 비롯한다. <중략> 지각이 감각에 바탕을 두는 까닭에 지각하는 마음으로 감을 잡는 일은 언제나 감각할 수 있는 것 안에서 이루어진다.
감 잡는 일에 생각이 더해지는 이치를 알려주는 포기말들입니다.
사람은 태어나 자라면서 말을 배우고 쓰게 됨에 따라서, 지각에서 얻은 갖가지 감을 말에 담아서 생각으로써 감을 잡아 나간다. <중략> 사람이 낱말로써 문장을 엮어서 생각을 끝없이 펼쳐나갈 수 있는 까닭에, 생각으로써 감을 잡는 일 또한 끝없이 펼쳐나갈 수 있다.
감을 잡아내는 바탕이 바로 모국어를 다루는 능력에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은 사람이 생각으로써 감을 잘 잡아낼 때, '똑똑하다'고 말한다. 똑똑한 사람은 말을 또렷하고 분명하게 하는 까닭에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뜻을 정확하게 주고받을 수 있다. <중략> 사람이 똑똑하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감을 잡아내는 바탕이 되는 말, 즉 자기네 말(모국어)을 제대로 배우고 쓸 수 있어야 한다.
[1] 고어 표기가 어려워서 아래 아를 'ㅏ'로 대신합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7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72. 느낌에서 비롯하여 무엇을 어떤 것으로 풀어 알아봄
73. 느낌을 만든 알음이 엮이면서 맥락을 형성하여 앎이 된다
74. 우리는 숨을 쉬는 유기체이고, 동시에 욕망하는 인간이다
75. 마주해서 보면 느끼게 되고, 이를 헤아리면 맛이 난다
76. 한국인은 상황을 즐길 때 '살맛 난다'라고 말한다
77. 맛보는 과정을 통해 본성이 습성으로 드러나는 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