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시간의 굴레를 알아채고 시간을 다시 보다>에 이어 WHY의 <Time: 굴레 속의 자유>를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지난 시간에 언급한 시간의 굴레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눈을 가리는 허상을 알아채야 합니다.
그 시간의 기차가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낸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알아낼 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내가 잊고 지내왔지만 사실은 갇혀 있었던 시간의 법, 시간의 굴레 안에 충실해 온 나를 보았다.
눈을 뜨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학교에 가고, 그다음에는 직장으로 향하던 삶이 시간의 법과 굴레 속에서 살도록 견고하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굴레의 존재를 느낍니다. 그리고, 지난 글에서도 인용한 '이제부터 하면 되는 내 일상이다'라는 정혜신 님의 단호한 말씀과 여러 차례 인용했던 영화 매트릭스의 영화 한 장면이 겹쳐져서 저에게 선택하고 굴레를 벗어날 기회를 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실행을 위해서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자 역시 이렇게 말하며 우리(?)를 독려합니다.
세상이 변해도, 의식은 갇혀 있다. 시간의 굴레 안에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의식의 굴레가 있다.
한편,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큰 아들에게 지난주에 처음 읽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내용 중에 아인슈타인이 한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 말이 여운이 되어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면 지금처럼 굴레에 갇혀 있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에 대한 제 해답은 <가치 있게 시간을 쓰는 일이란 무엇인가?>로 풀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생각을 멈추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 밑줄 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저자는 <창조적 진화>에 나온 앙리 베르그송의 포기말(문장)을 인용합니다.
"변화라는 것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운동의 연속이고, 우리가 변화라고 인지하는 지점만 변화처럼 우리에게 기록되고 표현되는 것이다."
거듭 읽는데, 제 머릿속에서는 '인 말고 연'이라는 출처가 모호한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사물과 사태는 인과 연의 일어남에 의한 것이다>를 쓰며 인연생기(因緣生起)라는 말을 풀어낼 때 생긴 지식이 작동하는 것일 듯합니다.
보편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인과로 바로 엮는 대신에 상관관계로 보라는 말로 '인 말고 연'을 번역할 수 있습니다. 혹은 성급하게 인과 관계를 판단하기 전에 두루 자리한 쪽을 차려서 살펴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시 보니 '우리가 변화라고 인지하는 지점만 변화처럼 우리에게 기록되고 표현되는 것'이라는 말은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자 이번에는 저자가 거듭 사용하는 '틀 안에 갇힌 사고' 파훼법을 보는 시간입니다.
미디어는 컨테이너, 콘텐츠, 컨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미디어를 이 세 가지 요소로 해부함으로써 미디어의 진화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저자는 틀 안에 갇혀 있던 공간적 사고를 벗어난 방법 그대로를 시간적 사고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공간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열려 있고 살아서 진화하는 네트워크를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선형적인 시간에 갇힌 사고를 벗어나야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치를 만드는 시간을 이해할 수 있다. 해체해야 창조할 수 있다.
바로 '선형적 시간'을 해체하는 것이죠.
오늘 할 일이 벌써 결정되었다면, 남은 것은 그 시간을 잘 채우는 것이다.
그러한 나의 믿음이 스스로를 굴레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던 것이군요. 지금이라도 <가치 있게 시간을 쓰는 일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질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물론, 한순간에 삶이 기적적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전환점이 될 수는 있으니까요.
저자는 '네트워크의 시간'이 선형적 시간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합니다.
선형적 시간이 주어진 시간이라면, 네트워크의 시간은 창조하는 시간이다. <중략> 네트워크 세상에서는 노드가 아닌 링크가 가치를 만든다. <중략> 그 결과 만들어지는 네트워크가 살아 있다는 관점이, 가치가 여기 있다는 것이 우리가 10년 동안 온갖 방법으로 설명하고 엄중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저자에게는 10년을 바쳐온 일입니다.
책 만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겠으나 제가 했던 다른 경험들로 인해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노드가 아닌 링크라는 말은 특정 주제에 대한 '관심'이 경제의 중요 문제로 떠오르는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월말김어준을 구독하며 콘텐츠도 발견을 통해 만들어지는구나 깨달을 수 있었는데, 이 역시 네트워크의 힘을 전제로 한 경우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직업 일상에서 만난 한 장면도 영향을 끼칩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의 시스템 아키텍처에서 프론트 API 영역의 요소 기술로 GraphQL을 볼 때도 혼자서는 그런 자극을 받았습니다.
한편, 선형적 시간이 아니라 네트워크 시간이라면 그 컨텍스트도 다른 듯합니다.
네트워크의 시간은 나의 '왜'로부터 시작된다. <중략> 연결은 메타포가 아니라 실체여서, 데이터로 기록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다. 우연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진화의 과정 자체를 말한다. <중략> '왜'는 네트워크의 뿌리이며, 어려운 의사 결정 때마다 돌아오는 베이스캠프이며, 겉과 속이 같은 네트워크의 존재 이유, 생명의 원리다. <중략> 네트워크의 원리로 동작하는 생명체로써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왜'로부터 시작되어 실체로 존재하는 연결이군요. 이 내용은 아직 아리송합니다. 내용이 길어져 다음 글로 이어갑니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단락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8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86. 일상을 파고드는 생성 인공지능
88. 비디오, 3D, 사운드, 음성 생성과 노래 합성 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