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Nov 04. 2024

시간의 굴레를 알아채고 시간을 다시 보다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존재적 가치가 먼저 있고 돈이 있는 세상으로>에 이어 WHY의 <Time: 굴레 속의 자유>를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시간의 재발견을 위한 멈춤

저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평소 잊고 사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처음과 끝이 있는 일생에서 흐르는 시간은 떼어 낼 수 없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이어서 다음 포기말[1]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이 깊어지는 듯도 합니다.

시간은 우리 삶의 규칙이자 리듬과 질서, 평생을 이끄는 주인과도 같다.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집니다.

시간이 우리 삶의 주인인가?


아니면, 시간은 우리에게 축복이나 선물인가? 그게 아니면 적어도 다시 시작하면 되는, 즉 주체가 되어 누릴 수 있는 일상(日常)인가? 이럴 때 필요한 힘은 바로 스스로 일종의 메타 모먼트를 만들어 내는 힘입니다.

우리의 사고의 틀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잠시 멈춰 생각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뮬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도 내게 있다.


이제부터 하면 되는 내 일상이다

한편, 고통을 느낄 때라면 시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까요? 마침 구독으로 받아 본 글 <고통을 대하는 방식>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 글의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고통은 그 순간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고통이 없으면 우리는 시그널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시그널을 놓치면 배울 수 없고, 위험에 빠지게 된다. 고통은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고요히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과 맞닿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이 말씀하신 고통의 변용이 떠오릅니다. 다시 그 내용이 담긴 글 <고통과 행복은 언제나 변하는 유기물적인 것이다>를 찾아봅니다. 거기서 마치 시간을 대하는 자세가 무엇인지를 담은 듯한 한 장의 이미지를 발견합니다.

또 잊히고 약해지기도 했지만, 정혜신 선생님의 문구에 담긴 메시지를 실현할 힘을 기르기 위해 연재하는 글이 바로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이기도 합니다. [2]


시간의 재발견: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다시 책으로 돌아갑니다.

그 시간의 선형성 안에 우리의 사고가, 존재가 있다.

최근에 본 책 제목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떠오릅니다. 더불어 학창 시절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통해 배운 내용이 저에게 이렇게 속말을 합니다.

역사는 선형성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이는 물리적 세상이 아니라 현상적 세계에 대한 것입니다. 역사가 아닌 저자가 말하는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함께 만들어야 할 시간, 주어진 시간이 아니라 함께 창조해야 할 시간을 보았다.

주어진 시간이 아니라 함께 창조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이후에도 '시간의 재발견'이라 이름 붙여진 다발말[3]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체득된 것은 오직 사회적 시간과 경제적 시간이 함께 극대화한 선형적 사고의 틀이다. 틀이 무서운 이유는 아무리 밖에서 벽을 허물어 줘도 정작 나는 꼼짝도 못 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법과 굴레: 물리적 시간과 사회적 시간

저자는 우리가 선형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의 법과 굴레에 대해서도 세분화해 설명합니다. 먼저 '물리적 시간'의 굴레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저장하고 알리기 위한 발명을 계속 반복할 것이다. 이것이 물리적 시간의 법을 살아온 인류의 역사다.

우려 속에서도 가속화되고 있는 인공지능 현상 하나만으로도 저자의 주장은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사회적 시간'이라는 굴레입니다.

물리적 시간을 용도에 맞게 쪼개고 라벨을 붙인 것이 사회적 시간이다. 서로 공유하는 시간을 기준 삼아 소통하고, 협업하고, 관계를 맺는다.

흔히, TPO라고 불리는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는 그러한 TPO가 자본주의나 시장과 만나 만들어 낸 현상도 설명합니다.

사회적 시간은 장사와 소비의 시간이기도 하다. 감사보다 거래와 영업의 시간이 된 명절 <중략> 발렌타인데이처럼 돈으로 살 수 있는 시간, 마케팅의 시간, 더 많은 라벨을 만들어야 하는 의욕의 시간이기도 하다. 사회적 시간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공통의 기준을 만든다.

사회적 시간은 매 순간 상식으로 받아들이면 (살 수 없으니) 고통이 생겨 나거나 일종의 인간 소외라 할 행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의 의식을 통제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겹겹이 우리 삶과 가치관을 형성하고 갑옷처럼 내 몸을 단단히 조이고 있다. <중략> 반복되는 경험practice은 의식의 틀이 되고, 그 를 안에서만 모든 것이 납득된다. 순응하는 것이 가장 사회적이다. 물리적 시간과 달리 사회적 시간은 우리 스스로 만들었는 데도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중략> 사회적 시간이 만든 것은 시간의 노예가 아니다. 서로의 노예다.


시간의 법과 굴레: 경제적 시간

마지막으로 '경제적 시간'이 어떻게 굴레가 되는지 볼까요?

경제적 시간은 돈으로 환산되는 시간, 함께 일하면서 절약해야 하는 시간, 노동의 시간이다. <중략> 모든 것이 풍요로 넘치는 세상에서 이제 희소한 것은 오직 시간뿐이며, 이를 줄여 줄 수 있는 것이 세상의 모든 조직이 만들어야 할 가치가 되었다. <중략> 뭐든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러한 시간의 선형성에 기반한다. <중략> 진정한 굴레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쌓아 온 선형적 사고의 틀 안에 있다.

<가치 있게 시간을 쓰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쓰면서 인용한 엑셀표를 떠올리며 최근까지도 경제적 시간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경제적 시간은 우리를 더욱 비좁은 길로 인도한다. <중략> 질문도, 가치도, 관계도 모두 시간의 존재 안에서 소멸되었다. <중략> 돈이 된 시간을 기준으로 모든 관계가 자라나고 평가됨에 따라 경제적 시간은 거꾸로 사회적 시간의 틀이 된다.

알았으니 이제 굴레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굴레를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룹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편, 시간에 대해 책과 무관하게 파생되는 생각은 별도로 담아볼 기회가 있을 듯합니다. 이 지점에 생각이 이르자 왜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려 2020년 2월에 사 놓고 조금 읽고 말았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3]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단락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8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81.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의 6가지 기준과 패턴들

82. 반사적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행동하기 위한 선행 조건

83. 효과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84. 우리는 돈 앞에 평등하다, 오직 돈만 가치를 가질 뿐

85. 돈의 지배 작용과 직업의 매개 작용

86. 일상을 파고드는 생성 인공지능

87. 악순환의 해부학 그리고 진실의 힘

88. 비디오, 3D, 사운드, 음성 생성과 노래 합성 모델

89. '왜'를 찾아서: 관계와 욕망이 얽히는 누리의 양상

90. AGI 시대, 인류는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

91. 우리는 모두 각자 자신의 서브를 익혀야 한다

92. 존재적 가치가 먼저 있고 돈이 있는 세상으로

93. 인공지능이 변화시키는 우리의 삶, 우리의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