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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Oct 13. 2024

돈의 지배 작용과 직업의 매개 작용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우리는 돈 앞에 평등하다, 오직 돈만 가치를 가질 뿐>에 이어 WHY의 <Money: 풍요 속의 결핍>을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돈의 지배 작용(Domination action)

보통 가난의 반대는 부유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돈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난은 자유의 반대말이다. 생존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하도록 강요된다. 나의 노동력과 시간을 제공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이 나에게 없다.

혹시, 존재의 가난을 말하는 것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군요. 가난하면 경제적 자유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자유는 어떻게 침해되는 것일까요? 바로 돈의 지배작용이라는 도식이 이를 설명합니다.

출처: Organic Media Lab


돈이 만든 관계

돈의 지배작용 도식에 따르면 등가성이 중력작용을 하고, 거기서 보편성이 등장합니다.

돈이라는 교환가치로 환산함으로써 서로 다른 이해관계도, 개별적 특성도 통합이 가능해진다. 짐멜은 이것을 돈의 '보편성'으로 설명한 바 있다.

보편성이 바로 지배작용의 바탕이 됩니다. 우리가 익히 알던 경제 시스템에 대한 설명인데,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돈의 가치로 사회를 통합하고, 따라서 사회적 관계가 통합된다. 우리는 하나의 가치, 하나의 기준으로 배열된다.

여기서 최근에 알게 된 개념인 '아장스망'이 떠오릅니다. 그랬더니 돈이 인간을 움직여 사회의 배치를 조정하게 된 듯합니다. 다음 다발말(=단락)이 마치 이를 상세히 설명하는 듯합니다.

예측이 어려운 세상에서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을 갖게 되었고 <중략> 사소하고도 열심인 실천이 차곡차곡 쌓여, 이 사회는 곧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의 합이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월말김어준> 9월호의 박구용 교수님에게 들은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서구에서 '사회'의 정의인데요. 지역에 기반한 가족이 붕괴되고 나서는 부부관계를 사회의 기초로 삼으면서 이들을 구속하는 장치도 돈이 되었다는 사실은 놀랍긴 하지만 생소하지 않은 내용이라고 여기며 들었습니다.


돈의 질서에서 벗어나기

다음 포기말들을 보니 왜 MB 정부 때 '부자 되세요'라는 카피와 함께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린 듯했는지 이해가 가는 듯합니다.

돈의 작용은 반드시 반작용을 동반한다. 신뢰 작용의 반작용은 사람에 대한 불신이다.

또한, 컨설팅 회사에 다니던 시절 치열한 내부 경쟁과 불신이 기업 문화였던 한 클라이언트 기업이 떠오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경지에 도달한다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신뢰의 반작용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의 결핍, 곧 내 존재의 결핍이다. <중략> 그 결핍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볼 수 없는 내가, 돈의 중력 작용을 만드는 동력이다. 그래서 돈의 노예가 탄생한다. 타인을 지배하고 돈의 지배를 받는 반작용 안에 있기 때문이다.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공감할 수 있지만, 다행스럽게 현재 제 상태가 '돈의 노예'까지는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고 온전히 자유롭지도 못하네요. 하지만,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자유를 얻는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말도 비로소 최근에야 깨닫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사업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간에 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존엄함은 돈이 아닌, 우리가 만드는 '관계' 안에 있는데, 그래서 방법은 하나뿐이다.

워렛 버핏도 말했습니다.

버핏이 생각하는 성공은 돈도 명예도 아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느냐가 성공의 기준이 라고 보았다. 버핏은 나이 먹은 후에도 가족, 친구, 동료 등 주위에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보았다. <중략> 매출과 이익을 조금씩 늘리기 위해 자신의 친구들, 혹은 존경하는 사람들,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직업의 종말

다음 포기말들을 읽으면서 송길영 님이 주창하는 '핵개인'이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시대에는 각자의 성장의 기록이 직업의 정의를 대신하게 되리라 믿는다. <중략>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직업에 대해 본질적인 이해를 통해, 질문에 도달하고자 한다.

핵개인을 언급했더니 다음 문장들은 핵개인 탄생 혹은 인식의 전환 이전의 상태에 대한 설명처럼 느껴집니다.

선택의 순간부터 직업은 내 정체성이 된다. 처음 갖게 된 명함이 내가 누구인지 말하기 시작한다. 그 명함으로 나를 소개하고 사회생활의 이름표로 쓴다.

이 상태에 있으면 저자는 '직업 시장의 굴레에 갇힌' 상태로 봤습니다.

직업의 틀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성장을 멈춘 개인의 인격과 능력은 AI와 평준화되는 운명에 이른다. 시장의 논리에서 직업은 나를 가둔 우물이다.

그에 따른 연쇄작용으로 '질식된 영혼'이 있습니다.

풍요를 만들어 내는 동안 질문하기를 멈췄기 때문이다. 질식된 영혼은 질문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제가 중국에서 '자아실현'이라는 말로 떠들며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을 도울 때가 생각납니다. 아쉽게도 대부분은 제 도움으로 굴레에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다행스럽게 나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직업의 매개 작용(Mediation of jobs)

다음은 '직업이 만든 실체'에 대한 설명입니다.

성장이란 생명의 자람을 말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수 없는 것이다. 돈, 명예, 권력, 사회의 평가는 내 존재 안에 있지 않다. '나'가 아니다. 은퇴가 힘든 이유는 이러한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잃어버려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성장하지 못하고 시간을 다 써버린 자신에 대한 자각 때문이다.

생명의 자람이 성장이다! 멋진 말입니다. 듣자마자 마음에 닿아 외우고 싶은 말이네요. 그리고 지인이 스스로 해내는 역량을 '자산'이라고 불렀던 이유도 연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업이 매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방향입니다.

출처: Organic Media Lab

저는 굴레를 감지하지 못하고 무작정 조직에 충성하는 분들을 '좀비' 혹은 '노예'리고 부르며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지금 삶의 질, 워라밸을 찾는 트렌드는 말살된 개인성,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자 생존을 위한 외침이다.

이 책을 보면서 그 정도로 각성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7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71. 나에게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72. 인공 신경망의 인식 능력과 디퓨전 모델

73. 나를 지배한 사고의 틀을 해체하면 만날 또 다른 나

74. 시작은 칠판 대신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75. 가면의 내면화와 함께 하는 존재적 빈곤

76. 잠재력을 믿고 명확한 비전 수립 이후는 하도록 놔두기

77. 감정을 무시한 대가는 나쁜 관계의 기억으로 쌓인다

78. 돈의 신뢰 작용과 가치를 바라보는 다양한 장면들

79. 스테이블 디퓨전 모델과 GPT의 기반, 트랜스포머 구조

80. 이론의 기억과 실행의 기억 간의 간극

81.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의 6가지 기준과 패턴들

82. 반사적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행동하기 위한 선행 조건

83. 효과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84. 우리는 돈 앞에 평등하다, 오직 돈만 가치를 가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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