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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Oct 07. 2024

아장스망: 배치를 바꿔야 삶이 바뀐다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페벗 이순석 님의 글은 몇 가지 생각을 자극했습니다.  

DNA는 결코 특질을 기억하지 않는다. 다만 유도를 위한 건축적 아장스망의 기록일 뿐.
하여, 공학은 탁월한 질서를 위한 아장스망 디자인을 담당한다.

한 가지는 '특질을 기억하는 않은 DNA'라는 말이고, 두 번째는 처음 들어 보는 말인 '아장스망'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전자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이 글은 '아장스망'을 배우고 현시점에서 소화할 수 있는 부분을 담고자 합니다.


인공지능 삼총사의 안내를 따라가다

먼저 인공지능 삼총사[1]의 도움을 받습니다.

아장스망(agencement)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사용한 개념으로, 사물, 사람, 아이디어, 환경 등이 서로 얽히고 연결되어 작동하는 방식이나 관계를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쉽게 말하면, '서로 얽히고 협력하는 요소들의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어요. 이 개념은 개별 요소들이 고정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고 변형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퍼플랙시티는 AI검색답게 링크를 소개합니다. 두 개의 영상을 클릭했는데 그중에서 유영만 교수님 영상이 개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상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에 하나는 영상 초반(2분 30초 경)에 아장스망이 불어이며, 영어로는 Arrangement이고 우리말로는 배치라고 설명해 준 부분입니다.


종종 오리지널을 강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문화 상대주의'를 선호하는 사람으로서 독자나 청자들이 알 만한 말로 연결하는 일이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한편, 앞으로 저도 그렇게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제 선호를 통해 배웁니다.


아장스망 = Arrangement = 배치

들뢰즈의 철학을 따라가기에 앞서 이제는 Arrangement 하면 바로 KR이 떠오르는 제 삶을 확인합니다. OKR 활용 경험 때문인데요. 2020년부터 5년 간 꾸준히 OKR을 써 온 데에서 배우는 바는 어디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KR의 경우 KPI 성격보다는 '정렬'의 역할이 더 크다고 느꼈습니다. 서로 같은 목표를 향해 구성원 각자가 결과를 정렬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았죠. 이때, 정렬의 영어 표현이 Arrangement였기 때문에 아장스망과 OKR이 개인적으로 느슨하게나마 연상 효과를 주었습니다.


상상에 살을 붙여 보면 OKR 즉, 목표와 핵심 결과를 기준으로 조직을 끌어가는 방법은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조직의 직무를 중심으로 아장스망을 새로 하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


유영만 교수님이 풀어주는 아장스망은 행동을 바꾸면, 우리의 생각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딴 데가서, 딴짓을 해야 딴생각이 든다는 이치죠.


사건 속에서 사연을 찾는다

영상에서 유영만 교수님은 사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사고와 사건을 비교합니다. 분명 흥미로운 화두 던지기였지만, 논리적 정연함은 <쪽인 나로 일을 인식하는 과정을 풀어 보기>에 담긴 최봉영 선생님의 이분법 즉, '사태와 사건'이 더 나아 보입니다.

사태는 알아보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이고, 사건은 이미 규정이 된 것입니다. 최봉영 선생님 표현으로 '규정'을 질 들뢰즈는 '의미의 탄생'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생성을 '발견'이라고 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한편, 영상에 따르면 질 들뢰즈는 사건과 의미를 항상 연결시켜서 <의미의 논리>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다면, 사건은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문제(먹구름은 의미 없는데, 소풍 취소가 되면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질 들뢰즈에 따르면 나한테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모든 현상을 '기호'라고 했답니다. 예를 들어 늘 집에 있던 아내가 집에 없으면 색다른 사건이고, 사건이 발생하면 아내가 집에 없다는 낯선 기호를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내가 집에 없는 상황이 바로 아장스망이 바뀐 것이기도 합니다.


가치와 생각의 변화를 위한 아장스망

이어서 유영만 교수님은 아장스망을 통해 질 들뢰즈가 알려 주는 것을 요약합니다. 바로 아장스망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가치가 달라지지 않고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순간 몇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장스망이라는 새로 배운 개념을 중심으로 제 경험과 지식이 재편되고 응집하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는 제 노력이 아장스망을 만나게 했다는 생각입니다. 두 번째는 '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메타 모먼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기도이든, 명상이든, 깊은 심호흡이든 정밀한 단위의 아장스망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과의 관계로 인해 경영자가 되고 사업을 하게 되는 이야기도 하나의 긴 아장스망이라는 생각이 분명해졌습니다.


길은 앞에 있지 않고, 뒤로 생긴다

이어서 다양체(Multiplicity)주름(Pleats) 개념 설명을 들을 때는 소프트웨어 개발(혹은 설계) 경험 때문인지 Git반복이 떠올랐습니다. 한편, 유영만 교수님은 질 들뢰즈를 '생성의 철학자'라고 설명하며 기존의 유와 유의 배치를 바꾸면 새로운 것이 생성된다는 그의 설명을 전합니다. 마치 생성형 AI의 생성과 같은 원리 같습니다. 물론 개념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죠.


또한, 영상에서는 실재성, 현재성, 잠재성의 개념을 말하며, 그래서 내가 부딪혀 왔던 방식과 다르게 부딪혀야 '잠재성'이 발현된다는 들리즈의 설명을 강조합니다. 오늘과 다른 차이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 잠재성을 현재성으로 바꾸는 방법이라는 것이죠. 생각대로 안 될 때 생각지도 못한 것이 떠오르는 법 역시 아장스망 즉 배치를 바꾸는 일이죠. 다른 표현으로 들뢰즈는  '우발적 마주침'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영만 교수님의 들뢰즈의 교훈과 왕양명의 지행합일 즉, 앎과 삶과 함이 구분되지 않고 따로 있는 것을 연결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신영복 선생님의 명언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길은 앞에 있지 않고, 뒤로 생긴다.


주석

[1] <생성형 AI, 유료로 꼭 써야 할까?>에 썼던 대로 구글 제미나이 무료 버전과 챗GPT4o 유료 사용 그리고 퍼플렉시티 유료 사용을 말합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8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81. 떨림과 울림, 어울리다 그리고 매력

82. 차림과 알아차림 그리고 헤아림과 어림

83. 정신이 팔리면 NPC처럼 휘둘리기도 한다

84. 사람이 마음 그릇의 울림판을 통해 함께 떨고 운다

85. 몸과 마음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느낌과 앎을 갖는다

86. 열린 우리주의(홍익인간)와 닫힌 우리주의(집단이기주의)

87.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 밑바탕 마음에 대해서

88. 믿음에 바탕을 두고 꿈을 꾸거나 일을 꾀한다

89. 글 내용에서 내 경험과 공통점을 찾는 일은 대칭적인가?

90. 대칭과 대응의 흐릿한 경계를 묻고 따지다

91. '스스로 하는 나'에서 '위하는 나'로의 전환

92. 쪽인 나로 일을 인식하는 과정을 풀어 보기

93. 사물과 사태는 인과 연의 일어남에 의한 것이다

94. 줏대가 없다면 모든 것이 완벽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95. 그저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연민일까? 연민이란 무언가?

96. 사람이 무엇을 멋스럽게 느끼는 일의 차림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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