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쪽인 나로 일을 인식하는 과정을 풀어 보기> 묻따풀을 할 즈음에 우연하게 페벗님 소개로 <인연생기, 인연법이란?>이란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쪽인 나' 사상의 바탕이라 할 수도 있는 인연 혹은 연기법에 대해 제가 본 가장 명쾌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해당 글을 살피기 전에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하기 위해 인연과 연기의 풀이를 찾아봅니다. 1~3번 풀이가 평소 주로 쓰던 말에 담긴 의미라 하겠습니다.
지금 보니 4번 풀이가 <인연생기, 인연법이란?>과 일맥상통하네요. 다만, 평소에 살펴본 적이 없는 풀이 같습니다.
이번에는 연기를 보죠. 연기는 <연기(緣起)를 이해하게 도운 유튜브 추천 영상>을 쓸 때 다룬 일이 있습니다.
자, 이번에는 <인연생기, 인연법이란?>에서 명료하게 다가왔던 표현을 볼까요? 먼저 개요라 할 수 있는 긴 포기말입니다.
연기법과 흔히 혼용하여 쓰고 있거나, 함께 쓰고 있는 것으로 인연(因緣)이란 말이 있는데, 사실 연기는 인연생기(因緣生起), 혹은 인연소기(因緣所起)의 줄인 말이다. 인과 연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인과 연이 화합함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연기법인 것이다.
인과 연이라는 일어남의 원인을 통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인’은 결과를 발생케 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의미하고, ‘연’은 간접적이며 보조적인 원인을 뜻한다. 그래서 인은 직접적이고 연은 간접적이라는 뜻으로 친인소연(親因疏緣)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이어서 예를 볼까요?
예를 들어 식물에서 본다면 식물의 직접원인인 ‘인’은 씨앗이 될 것이고, 간접적인 원인인 ‘연’은 거름과 흙과 태양과 공기와 물과 농부의 노력 등 식물을 싹 틔우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간접적인 일체의 원인을 말하는 것이다.
아주 쉬운 설명입니다.
그리고 다음 말로 나아갈 때는 다시 '쪽인 나'와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즉, 어떤 한 존재가 생겨나는 데는 그것이 아무리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한 가지 원인만을 가지고 생겨날 수는 없으며, 인과 함께 수많은 보조적이고 간접적인 연들이 무수하게 도움을 주어야만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과 연이 화합한다고 해서 인연화합이라고 한다.
'쪽인 나'란 말을 매개로 <'스스로 하는 나'에서 '위하는 나'로의 전환>을 쓸 때 인용했던 구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갈라서 보면 안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한국 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을 만들었습니다. 그걸 안 만들었으면 제 <한국말 말차림법> 같은 것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을 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가고 다른 식으로 갔겠지요. 박정희 대통령이 잘못한 점도 있고 잘한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정신문화연구원을 만들었다는 것을 저는 잊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는 박 대통령 한 사람의 시대가 아닙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사람답게 살아보려 발버둥 치던 시대입니다. 나 최봉영도 그 한 사람이란 말이지요. 그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로 제대로 살겠다고 한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가지고 흘러간 시대입니다.
독자님들이 보기에는 비약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제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갈라서 보면 안 됩니다'라는 말이 마치 인 말고 연도 알아야 한다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으로 드러난 인연에 대해 제 평가와 입장이 확고하다고 해도 함께 연(緣)을 이루는 사태까지 파악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지 말라는 교훈으로 느꼈기 때문이죠.
인용한 두 개의 글은 전혀 다른 맥락과 의도를 가진 글이지만, 저는 그 둘에서 비슷하게 쪽인 나 사상에 바탕을 둔 사고의 필요성 혹은 인연화합을 인식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한편, 사전 풀이를 통해 인과 연을 쉽게 이해하려고 들면 직접과 간접이라는 이분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이러한 우를 줄여줄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인연법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인과 연이라는 것이 확정적으로 어떤 것이 ‘인’이고, 어떤 것이 ‘연’이라고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또한 어떻게 보느냐의 관점에 따라, 시간과 공간적인 차이에 따라,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과 연이 바뀔 수도 있다.
데이터 분석을 하다 보면 반복적으로 나오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내용은 아닙니다.
인연법에서 중요한 것은 결정론적으로 ‘인’이 무엇이고, ‘연’이 무엇인가를 따지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생겨나는 것들은 그 생성과 소멸에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들이 무한하게 중층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연계되면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에 대해 최봉영 선생님이 언급한 내용을 연상시키는 내용이 나옵니다.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인연화합의 가장 대표적인 경전의 비유는 우유와 치즈의 비유를 들 수 있다. 우유를 발효하여 치즈를 만든다고 했을 때 우유가 직접적인 원인인 인이 되고, 발효과정이나 발효에 들어가는 간접적인 모든 조건들이 연이 되는 것이다. 우유만 있어도 발효라는 연이 있지 않으면 치즈를 만들 수 없고, 발효라는 연의 조건이 있더라도 우유라는 인이 없으면 치즈라는 과를 가져올 수 없으므로 인과 연은 어느 하나가 빠지더라도 과를 생성할 수 없는 것이다.
의도치 않게 글의 분량이 길어졌서 다음으로 이어갑니다.
(8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84. 사람이 마음 그릇의 울림판을 통해 함께 떨고 운다
85. 몸과 마음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느낌과 앎을 갖는다
86. 열린 우리주의(홍익인간)와 닫힌 우리주의(집단이기주의)
87.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 밑바탕 마음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