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Sep 30. 2024

사람이 무엇을 멋스럽게 느끼는 일의 차림새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이 글은 최봉영 선생님께 9월 28일 받은 도표를 스스로 묻따풀 한 내용입니다.

독자님들도 읽을 수 있는 글이 되려면 <오인 것>과 <쪽인 것>에 대한 배경 설명이 필요한데 이는 <욕망하는 두 개의 나: 온인 나와 쪽인 나>로 대신합니다. 작년에 쓴 글인데 당시 최봉영 선생님이 '온인 나'라고 표현한 개념을 이론으로 다듬는 과정에서 '오인 나'로 바꾸셨습니다.


사람이 무엇에 느끼는 두 가지 느낌

만일 <오인 것>과 <쪽인 것>의 대비를 이해하게 되면 도표의 내용은 이를 '도도한 것'과 '수수한 것'으로 각각 대응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그런 흐름을 따라가 보는 서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최봉영 선생님 도표에서 찾아보면 '사람이 무엇을 느낌'에 있어서 두 가지 구분이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이분법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도도한 것과 수수한 것이죠.

이분법이라고 하니 마침 <그저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연민일까? 연민이란 무언가?>에 배운 내용과 대칭 관계인 듯하여 둘을 함께 나란히 배치한 그림을 그려 봅니다.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앞으로 더 나가기 전에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하기 위해 사전을 찾아봅니다.

'도도하다'는 부정적 평가가 많지만 어쩌면 유교적 바탕에서 '오인 나'의 위상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그 역풍이 불기도 하는 대한민국을 보면 서양에서 장점을 받아 사회 전체로 보면 진화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정 어감을 빼고 의미만 추리면 '잘난 체'가 보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뽐내는 모습이 '도도함' 아닌가 싶습니다.


'수수하다'는 '어울리는 품이 어지간하다'라는 말에 보이듯이 '쪽인 나'에 충실한 모습이란 생각이 듭니다.


도도한 멋스러움을 느끼거나 수수한 멋스러움을 느낌

다음은 도표에서 '무엇을'이 '무엇을 멋스럽게'로 나아가는 경우입니다. 이 때도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둘 다 무엇에서 비롯하는 어떤 멋스러움을 느끼는 점은 같고, 차이는 바로 '도도한 멋스러움'과 '수수한 멋스러움'일 뿐입니다.

유교적 맥락에서 '도도하다'를 혐오 언어에 가깝게 정의해 두고 있다면, 최봉영 선생님 풀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보다 인간적인 느낌에 관계지향적 쓰임이 보이고, 유교적 편향이 완화된 현대적인 표현을 포용하는 듯합니다.


선생님은 도도하다를 '잘난 체'로 보는 질투쟁이 모습 대신에 '뛰어난 능력/형태/지위에서 비롯하는 놀라운 느낌'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인스타그램의 주요 쓰임새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반면, 수수함의 미덕도 국어사전처럼 초라하게 '그리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라고 궁색하게 정의하는 대신에 '익숙함/느긋함/푸근함/따스람/넉넉함'이라는 인간미를 강조합니다. 비교해 보니 국어사전의 '수수하다' 정의는 정말 형편없군요. 마치 일제나 미군정 치하에서 우리 민족의 차림새나 형편에 대해 궁색하게 여긴 학자가 정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오인 나'와 '쪽인 나'의 멋스러움

자, 다음은 '오인 나'에서 볼 수 있는 멋스러움입니다. 최봉영 선생님은 뭐라고 설명했는지 볼까요?

개인적으로는 김건희 여사와 한동훈 당대표 사진이나 영상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이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도도한 느낌을 꾸미려고 실제와 이미지가 너무 다르며 오히려 억지스럽고 과한 경우 역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남까지 함께 하는 '쪽인 나'에서 볼 수 있는 멋스러움입니다.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쪽인 나'의 경우 도도함만을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도도함에서 출발하여 남까지 고려하느라 수수함을 포용하는 멋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수수함에서 비롯하였으나 도도함까지 머금을 수가 있군요. 한편, 도도함이 없어 수수한 멋을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8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81. 떨림과 울림, 어울리다 그리고 매력

82. 차림과 알아차림 그리고 헤아림과 어림

83. 정신이 팔리면 NPC처럼 휘둘리기도 한다

84. 사람이 마음 그릇의 울림판을 통해 함께 떨고 운다

85. 몸과 마음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느낌과 앎을 갖는다

86. 열린 우리주의(홍익인간)와 닫힌 우리주의(집단이기주의)

87.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 밑바탕 마음에 대해서

88. 믿음에 바탕을 두고 꿈을 꾸거나 일을 꾀한다

89. 글 내용에서 내 경험과 공통점을 찾는 일은 대칭적인가?

90. 대칭과 대응의 흐릿한 경계를 묻고 따지다

91. '스스로 하는 나'에서 '위하는 나'로의 전환

92. 쪽인 나로 일을 인식하는 과정을 풀어 보기

93. 사물과 사태는 인과 연의 일어남에 의한 것이다

94. 줏대가 없다면 모든 것이 완벽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95. 그저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연민일까? 연민이란 무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