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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Nov 25. 2024

해피엔딩의 함정에서 나와 발견하는 삶을 살기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해피엔딩의 함정에서 나와 네트워크의 시간을 살기>에 이어 WHY의 <Time: 굴레 속의 자유>를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사랑방이라 부르던 행위의 지향

저자는 이어서 네트워크 시간의 컨테이너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네트워크 중심 사고에서 한 걸음이란 반드시 피드백을 동반한 한 걸음이다. <중략> 오직 문제와 직관적 발견이 일어나는 과정 자체가 곧 (네트워크의 시간을 담는) 컨테이너에 해당한다. 멈춰 있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운동력을 갖고 있는 시간이다.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피드백을 동반한 한 걸음'은 막연하게라도 제가 지향해 왔던 바입니다. 저 스스로 해 온 일이지만, 그 의미가 분명치 않아 메타포로 '사랑방'이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사랑방은 운동력을 갖고 있는 시간의 컨테이너였습니다.


다음 문장은 손떼를 묻혀 그림으로 나타내고 싶습니다.

네트워크 시간의 컨테이너는 문제와 직관과 발견의 순환이다.


혁신의 주기Pace of innovation와 발견

테슬라의 사례를 소개하는 부분은 책의 전개에서 다소 어색한 부분입니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가 나오다가 갑자기 외부 사례가 등장해서 그런 듯합니다.

모두가 얄미워하는 테슬라에서는 이 사이클 타임을 '혁신의 주기Pace of innovation' 라고 부르고 있으며, 발견의 결과물은 3시간 사이클로 나온다. <중략> 가장 중요한 '왜'라는 뿌리에서 출발하여 일관되게 오직 해결해야 할 문제에만 집중하기에 가능하다.

아무튼 네트워크 시간의 콘텐츠는 바로 발견이라고 하는 듯합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은 발견 자체다. <중략> 무엇을 발견했는가 말할 수 없다면 성장도,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 에서 출발했어도 가치가 여전히 '0'이다. 발견이 없으면 다음 사이클로 이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유레카의 시간으로'라는 소제목 하에서 만나는 다발말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으로는 알 수 없다. 선형적 시간의 틀이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어색한 말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숨을 쉴 때 이미 알 수 있는데,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이 아예 필요 없는 것 아닐까요? 어쩌면, 살아 있다는 것은 이성과 분석이 작동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인데, 그에 대한 인식이 종종 결여되는 굴레 속에 산다는 지적일까요?


해피엔딩의 함정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하기 위한 가장 작은 실천부터>를 쓰면서 틱낫한 스님께 배운 내용입니다.

마음을, 몸을, 그리고 우리의 의도를 현존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챙김의 호흡이 필요합니다. 의식적인 한 번의 호흡으로,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고,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지요.

하지만, 생명체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이내 '시간의 틀'에 갇혀 다시 굴레 속으로 들어가 관성대로 사는 문제는 다른 문제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굉장한 통찰을 만납니다.

선형적 시간에서 미래는 과거 안에 있다. 가치가 미래에 있다고 믿으면서 과거에 갇힐 수밖에 없는 시간

어릴 때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를 하면 돈을 벌어야 하죠. 그러고 나서는 노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노후에는요? 왜 우리는 준비만 하다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할까요? 저자는 앞선 시간의 굴레에 대해 '해피엔딩의 함정'이라는 별명도 붙였습니다.


'해피엔딩의 함정'은 무엇인가요?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고 맹목적인 노력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해피엔딩의 함정'일까요? 공부하고 일하느라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살필 겨를도 없이 살고 있는 굴레가 바로 '해피엔딩의 함정'일까요?


해피엔딩의 함정에서 나오기

계절 변화처럼 마치 우리의 삶도 하나의 어김없이 다가오는 시간이 줄줄이 어어지는 선과 같은 형태인 양 여겼던 것이 분명한 듯합니다. 물론 시간은 인과 관계를 만들지만,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것을 하나의 선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 녹록지 않습니다. 이를 알기 때문에 전략적 로드맵도 믿고 활용하는 것이겠죠.

어쩌면 이 생각 자체가 선형적 시간의 굴레에 맞춰서 계획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발견을 통해 앞날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선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나는 과연 현재를 살고 있나?

마침 지난주 페북에서 봤던 글도 제 깨달음을 돕습니다. 몸은 현재에 두고 이를 살피지 않으면서(현존) 생각이 과거와 미래를 떠도는 일의 해로움에 대해서 너무나도 무지했던 듯합니다.

평안함을 매 순간 삶의 목표로 삼을 수는 없지만, <가치 있게 시간을 쓰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쓸 때 적어도 두 가지 기준을 두고 무엇을 바라며 현재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지 결정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가치 있게 시간을 쓰는 일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나 자신과 분리되지 않는 발견이라는 화두를 던집니다.

발견은 처음도, 끝도 아니다. 살아 있는 상태, 운동력을 가진 상태, 변화의 연속이다. <중략> 발견은 나 자신과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와 하나 된 자체, 그래서 이 순간도 변화하고 있는 생명을 가진 실체다.

매번 발견할 수 있다면 매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말도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분명 선형의 시간과는 다르고 자신의 선택과 실행의 힘이 느껴집니다. 또한,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연결이 실체가 되는 네트워크에 힘을 더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가치 있게 시간을 쓰는 일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렸던 기둥을 바꿔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8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86. 일상을 파고드는 생성 인공지능

87. 악순환의 해부학 그리고 진실의 힘

88. 비디오, 3D, 사운드, 음성 생성과 노래 합성 모델

89. '왜'를 찾아서: 관계와 욕망이 얽히는 누리의 양상

90. AGI 시대, 인류는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

91. 우리는 모두 각자 자신의 서브를 익혀야 한다

92. 존재적 가치가 먼저 있고 돈이 있는 세상으로

93. 인공지능이 변화시키는 우리의 삶, 우리의 세상

94. 시간의 굴레를 알아채고 시간을 다시 보다

95.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가능할까?

96. 보편기계인 컴퓨터가 에이전트로 이름을 바꾸려나?

97. 해피엔딩의 함정에서 나와 네트워크의 시간을 살기

98. 지각이 제한적인 에이전트가 만나는 세상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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