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분기 회고: 어둠과 비운 사이
2022년이 끝나가는 시점, 신년이 되면 매주 3개의 글을 쓰며 흐름을 놓치지 말자 다짐했습니다. 주제는 플랫폼과 콘텐츠 어느 사이로 놓고 매주 지속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보자였습니다. 3개씩 3주를 쓰다 보니 3개월은 쓸 수 있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지난 13주간 39개의 글을 꾸준히 썼으니 일단 한 고비는 넘긴 셈입니다. 토요일을 글 쓰는 날로 정하니, 출장을 가는 날은 공항에서, 시차 적응이 안 된 토요일 새벽에도, 독감에 걸렸어도,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해 혼비백산한 그날에도 스마트폰을 붙잡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경기 침체 속 글로벌 사업자의 행보가 궁금했습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를 비롯한 콘텐츠 사업자나 구글이나 메타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행간을 읽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2023년을 '효율성의 해'로 선언한 메타처럼 인건비를 포함한 고정비를 과감하게 줄이고, 메타버스와 같은 확실치 않은 신규 사업을 정리하며 핵심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허울 좋은 '구독자수'와 같은 지표를 내던지고 수익성을 최우선 기치로 내세운 넷플릭스가 그래도 선방하고 있는 반면, 디즈니는 2022년 5조 원 넘는 적자를 기록한 스트리밍 사업부를 정리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소비자직접판매(DTC)와 확고한 브랜드 포지셔닝을 구축한 나이키는 선전하고 있는 반면, 아디다스는 2023년 31년 만에 적자로 전환될지 모르는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1분기는 '어둠'과 '비운' 사이였습니다. 빅테크를 시작으로 정리해고 소식이 헤드라인을 연일 장식 했고, 은행권의 불안과 높은 인플레이션 우려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2022년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어 심각한 내홍을 겪는 중입니다. 엔데믹이 되면서 콘서트 경기는 되살아나고 있으나, 영화관과 웹툰 및 영상 콘텐츠 OTT 플랫폼의 성장세는 꺾였습니다. 코로나 시기 누가 더 '우상향'을 많이 하느냐? 의 게임에서 이제는 누가 더 매출을 버티면서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가? 의 게임으로 변모했습니다. '우상향'의 시대에 묻혔던 많은 이슈들이 '수익성'의 시대에는 불거져 나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비운'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2분기는 전 세계 경제에서 ‘희망’의 ‘씨앗’을 꿈꾸어볼 수 있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리오프닝으로 인한 수요 회복과 이로 인한 중국 빅테크의 성장은 회복의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IMF는 중국 경제의 회복 가시화를 전제로 2023년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 ('22년 10월 예측)에서 2.9% ('23년 1월 예측)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2분기는 여전히 침체와 회복의 기로에 서 있을 듯 합니다. 중국 리오프닝, 실내 마스크 착용의무 해제 등 호재가 있으나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를 뒤집기에는 부족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통계청이 3월 31일에 발표한 '2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1월 생산과 소비, 투자가 늘면서 양호한 시작을 보였습니다. 생산, 소비, 투자가 모두 증가한 것은 2021년 12월 이후 14개월 만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반도체 수요 감소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분기 실적이 '어닝쇼크’ 일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고 있고, 3분기까지 실적 악화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수출 부진이 이어지면, 2023년 경제성장률이 1% 후반에서 1% 초반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2분기는 여전히 ‘어둠’과 ‘비운’ 사이에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지난 1분기를 돌아보자면,
그래도 1분기의 마지막날인 2023년 3월 31일, 미국 뉴욕 증시는 인플레이션 둔화를 호재로 상승세로 마감했습니다. 다우존스 30 산업 평균 지수는 전날보다 1.26% 상승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1.44% 성장했으며, 나스닥지수는 1.74% 상승하며 1분기를 마감했습니다. 은행 부도 위험이 잦아들고 있고,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면서 시장에서는 낙관론이 조심스레 퍼지고 있습니다. 1분기 나스닥지수는 16.8% 상승하며 지난 2020년 6월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S&P 500 지수와 다우 지수는 1분기 각각 7%, 0.4% 상승하며 마감되었습니다. (오락가락하는 뉴욕 증시)
하지만, 1분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시장 분위기는 ‘어둠’과 ‘비운’ 사이였습니다. 2023년 1월 다보스에 열린 ‘세계 경제 포럼’에서는 비관론이 대세였습니다. 당시 PwC가 전 세계 4,410명의 최고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 결과, 73%가 앞으로 경제가 쇠퇴할 것이라 응답할 정도였습니다. 부실화되는 대형은행, 악화되는 소비심리, 정리해고와 미중갈등이 다보스 포럼에서 다루어진 핵심 테마였습니다. 코로나 역병,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기후 위기, 중국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세계와의 단절 등 ‘다중 위기 (Polycrisis)’가 우리가 처한 현실이었습니다. (다보스 포럼, 어둠과 비운 사이)
이런 상황에서 빅테크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활로를 모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메타’는 2022년 11월, 1만 1,000명에 대한 감원을 발표하고, 3월에는 1만 명을 추가로 감원하고, 5천 명의 신규 채용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22년 11월 감원 발표 전, 메타의 총인력이 8만 7,000여 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4%의 인력을 감소시키겠다고 밝힌 셈입니다. 마크 주커버그 대표는 2023년을 ‘효율성의 해’로 선언하며 강도 높은 비용절감을 이어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메타,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
빅테크의 상징이었던 구글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2023년은 구글이 1996년 창업한 이래 가장 큰 도전의 해로 기억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경기 침체와 함께 대세가 된 숏폼 시장에서 ‘틱톡’에 밀리면서 광고 수익이 급감하고 있고, 인공지능 챗봇인 ‘챗GPT’가 출시되며 구글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위 빅테크의 면책 특권을 보장했던 '통신품위법 230조'에 대한 판결도 진행되고 있어 구글의 앞길은 ‘가시밭길’입니다. 2023년 1월 전 직원의 6%에 해당하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1만 2천 명 정리해고를 수행했으나, 아직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까닭입니다. (구글을 뒤흔들고 있는 세 가지 위협)
반면, 애플은 시장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정리해고 바람이 부는 가운데 고용을 유지하고 있고, 탈 중국 상황에서 인도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애플뮤직 등 서비스 매출도 꾸준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매수 추천이 이어지며 주가를 상승시키고 있습니다. 보수적이었던 애플의 채용 기조가 엔데믹 시대에 역설적으로 애플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셈입니다. (다시 주목받는 애플)
경기침체와 엔데믹은 콘텐츠 OTT 사업자들에게도 혹독한 시련이 되었습니다. 넷플릭스는 구독자수 증가 추이가 감소하자, 2022년 4분기 실적이 발표되는 2023년 1월부터는 ‘구독자수’ 목표를 발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사업의 본질을 나타내는 1) 매출, 2) 손익, 3) 고객 Engagement 등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디즈니 역시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2022년 4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스트리밍 사업을 효율화하기 위해 돌아온 밥 아이거 대표는 구조 재편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전체 인력의 3%인 7,000명을 정리해고하고, 메타버스 등 신규 사업을 축소 중입니다. 스트리밍 사업과 콘텐츠 사업 조직을 합쳐 효율성을 제고하고, 훌루나 ESPN 사업을 매각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구독자수를 발표하지 않는 이유, 구조 재편을 시작한 디즈니)
지난 1분기 그나마 성장 키워드는 ‘생성형 AI’의 유행이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챗GPT'와 같은 신기술 도입으로 생산성이 높아져 세계 경제가 연 7%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AI가 앞으로 정규직 일자리 3억 개를 대체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AI가 미국과 유럽 내 일자리 4분의 1을 대체할 수도 있으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생산성이 향상할 수도 있다는 분석으로 AI가 이제는 새로운 대세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웹툰 AI 번역 수상 논란)
한편, 중국 빅테크는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넘게 중국 빅테크는 혹독한 추위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2020년 10월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이 중국 정부의 핀테크 규제를 공개 석상에서 비판하자, 이를 계기로 중국 정부는 빅테크 기업들을 향한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알리바바, 텐센트는 물론이고 전자상거래, 차량 공유와 온라인 교육 등까지 광범위하게 규제를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텐센트 주가가 회복되고 있고, 중국에서 쫓겨나가다시피 축출된 알리바바의 마윈이 1년 만에 중국으로 복귀하면서 알리바바를 6개 그룹으로 쪼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중국 당국의 빅테크 규제가 끝나갈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며 중국 빅테크 주가를 끌어올렸습니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하고 리오프닝을 수행하며 세계 경제 성장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중국 빅테크의 부활?, 알리바바 마윈의 귀환)
미국 증시와 중국 빅테크를 중심으로 낙관론이 조심스레 일고 있는 가운데, 미국-중국의 패권 분쟁은 앞으로 지켜봐야 할 주요한 갈등 중 하나입니다. 단적인 예로, 미국 정부가 2023년 2월 공개한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의 지원 심사 기준이 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기업의 초과이익을 미국 정부와 나누도록 하고, 기업 정보 공개·시설 접근권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중국 등 우려국에 10년간 기술 투자를 못하도록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로서는 눈치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디지털 펜타닐’로 불리는 틱톡도 미중 패권 전쟁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미국 자본에게 매각하거나 미국 시장에서 퇴각하라는 미국 정치권의 거센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와 EU에서는 공무원들 대상으로 틱톡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미중 패권 전쟁에 휘말린 반도체, 절체절명의 틱톡)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도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네이버는 2022년 매출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되려 감소했습니다. 영업이익 감소는 2019년 이후 3년 만에 처음입니다. 이는 ‘경기침체’로 인한 커머스 및 광고시장의 둔화에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웨이브, 티빙 등 국내 OTT 사업자들은 2022년 기준 천억 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하며 2023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CJ ENM은 23년 1월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으며, 언론에서는 이 과정을 통해 15-20% 수준의 인력 절감을 추진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정리해고와 효율화, 그리고 사업 매각이나 철수가 1분기의 주요 화두였습니다. (네이버, 역대 최대 매출 이면의 고민, 국내 OTT, 생존을 향한 몸부림, 기로에 선 CJ ENM)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본격적인 조정의 시작조차 하지 못한 형국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2분기는 아직 희망을 꿈꾸기에는 일러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