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골목에 들어온 셈이다. 출판계의 고인물, 민음사에서 작고 이쁜 책을 그것도 무지하게 저렴한 가격으로 만들어서 동네서점에 입고하고 있다. 바로 쏜살문고다.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에서는 기성출판물을 사고 동네책방에서는 독립출판물을 산다. 그게 내 원칙이었다. 생긴 건 독립 느낌이 물씬 나는 문고본이지만, 일부러 외면했다.
대형마트에 가는 사람들은 전통시장이나 골목식당이 어려운 걸 모르고 있을가? 알면서도 간다. 주차편의시설이나 결제방식 등의 이유로, 가지 않을 수 없다. 나도 결국 쏜살문고 책을 사버렸다. 첫번째 책은 이상의 「권태」였다. 교과서에 포함된 「날개」부터 「봉별기」 등 전부터 궁금했던 단편을 모아놨는데, 겨우 5,800원이다. 욕하면서 샀다. 표지도 너무 이쁘다. 다음은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다. 일단 시작하고 나니 심리적 저항선은 무너졌다. 이제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다.
쏜살문고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디자인. 처음에 디자인에 혹해서 이상의 책을 구매했었지만, 이건 예외였다. 쏜살문고는 표지가 전반적으로 똥이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놓으면, 전부 같은 크기라서 아주 이쁘지만, 하나하나 보면 정말 별로다. 그래서 살짝 봐주는 측면도 있다. 표지까지 이뻤다면 그건 정말 악질이다. 독립출판 다 망한다.
다른 하나는 고전. 쏜살문고는 고전을 재출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금액도 저렴하다. 8,800원, 9,800원도 있지만, 저렴한 건 5,800원에서 시작한다. 고전을 극도로 싫어하고 가능하면 읽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쏜살문고는 작고 가벼우니 예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