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욱 Jun 20. 2022

지금 가장 서울스러운 브랜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6 - 서울, 젠틀몬스터

당신은 서울스러움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이제 서울은 뉴욕, 런던, 도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의 주요 대도시가 되었다. 내로라하는 도시들 사이에서 서울만의 이미지는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분명 서울은 역사가 깊은 도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도시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최근 서울관광재단이 공개한 유튜브 영상 'My Soul SEOUL'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울의 이미지를 잘 반영했다. 이 영상에는 서울의 역사를 상징하는 고궁도 등장하긴 하지만, 영상의 주를 이루는 것은 화려하고 빠른 템포의 도시의 야경과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서울관광재단이 내외국민 9,0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울의 이미지와 관련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서울은 '젊은이들이 저녁에 어울리기 좋은 도시'다. '생애주기 가운데 서울에 가장 오고 싶은 시기가 언제냐'는 질문에 77.4%는 '젊었을 때'라고 답했고, '마주하고 싶은 서울의 시간대'는 34.7%가 '저녁'이라고 응답했다. '서울과 어울리는 음악 장르'는 84.9%로 압도적으로 팝을 선택했다. 설문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내외국민에게 서울은 K-pop으로 상징되는 '빠르고, 역동적이며, 유행에 민감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서울스러움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서울의 로컬 브랜드는 없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고, 역동적이며, 유행에 민감한' 브랜드는 아마도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투자운용사 엘캐터톤아시아로부터 700억 원규모의 투자받은, 펜디 같은 럭셔리업체와 탑모델 지지 하디드 같은 셀럽이 먼저 찾는, 기업가치는 1조 원이 넘는 힙셔리(힙+럭셔리) 브랜드 젠틀몬스터가 아닐까 싶다.


젠틀몬스터의 시작이 영어교육회사라고?

젠틀몬스터 창샤 플래그쉽 스토어 (출처:공식 홈페이지)

젠틀몬스터의 시작은 약간 독특하다. 김한국 대표는 현대캐피탈에 입사한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북미지역에 영어캠프를 운영하는 영어 교육회사인 캠프코리아(현 씨케이글로벌파트너스)에 입사했다. 그는 주임으로 입사한 지 1년 반 만에 임원으로 승진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일했다.


하지만 영어교육은 당국의 규제를 많이 받는 산업이었다. 그는 영어교육으로는 더 이상 비전이 없어 보다고 판단해서 대표에게 신사업에 진출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오랜 스터디 끝에 신사업 아이템으로 선택된 것이 '트렌드가 바뀌어도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자 '대기업과 경쟁이 없는' 안경테였다.


안경테는 완전히 새롭게 도전하는 사업인 만큼 젠틀몬스터는 생산기술, 판매 네트워크 등 모든 것을 바닥부터 쌓아가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브랜드 스토리의 출발점은 창업자가 특정 아이템의 오타쿠 수준의 매니아였거나 오랜기간 업계에 몸 담으면서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를 해결하고자 창업했다는 식이 많다. 김한국 대표는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이긴 했지만 안경 오타쿠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우리나라 성인 안경 착용 비율이 약 45.9%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특별히 다른 안경 착용자에 비해서 전문성을 더 가진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젠틀몬스터 창업을 준비하며 김한국 대표는 그의 부족한 전문성을 채우기 위해 검색 사이트에서 '안경'을 검색해 나오는 업체들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안경 산업에 대해 알고 싶다'라고 말하며 직접 하나하나 찾아다녔다. 안경업체 관계자들을 어렵사리 만나고 설득해가면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모았다. 그들과 함께 "사람은 누구나 내재된 욕망이 있고 그게 바로 몬스터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으로 다소 상반된 두 단어인 젠틀과 몬스터를 합쳐 젠틀몬스터라고 이름을 이름 짓고 2011년 2월 시작했다.


젠틀몬스터라고 처음부터 지금의 젠틀몬스터는 아니었다.

(출처:패션비즈)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젠틀몬스터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홈트라이'를 시도했다. 홈트라이는 고객이 온라인에서 선택한 5개의 안경을 배송해주고 고객은 집에서 안경을 직접 착용해본 뒤 마음에 드는 것만 고르고 나머지는 반송하는 시스템이다.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택배비는 모두 회사에서 부담했다.


홈트라이는 분명 우리나라 안경업계에서는 신선한 시도였지만, 고객의 반응은 싸늘했다. 당시만 해도 소비자들은 온라인으로 안경테를 따로 구매하고 안경원에서 렌즈를 맞추는 것보다는 안경원에서 검안을 마친 뒤 추천해주는 안경테를 선택하는 것을 더욱 익숙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준비한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싸늘한 반응에 젠틀몬스터는 창업 7개월 만에 폐업 위기까지 몰렸다.


반전의 기회는 '제품'에서 나왔다. 함께 협업 작업을 진행했던 타투이스트로부터 '젠틀몬스터 제품이 안 예쁘다'는 평가를 받은 이후 주요 타깃인 '패션피플'이 원하는 힙한 디자인에 몰입한 끝에 2011년 말 '트램씨2'를 선보였고 그제야 서서히 시장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 


(출처:SBS)

점차 시장에 젠틀몬스터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을 때쯤, 갑작스러운 기회가 찾아왔다. 2014년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이 착용하며 '천송이 선글라스'로 갑작스럽게 큰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이다. 스타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계획된 PPL은 아니었다. 스타일리스트에게 협찬으로 전달된 수많은 선글라스 중 '예쁘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었다. 제품에 집중하고 '예쁜 안경테'를 만들어낸 결과였다.


'천송이 선글라스'는 분명 젠틀몬스터의 인지도를 크게 올려주었지만, 지금 젠틀몬스터가 가진 이미지 중에 '한때 천송이 선글라스로 유명했던 브랜드'라는 이미지는 전혀 없다. 젠틀몬스터가 착실히 그다음을 계획하고 또 완성도 높게 실행해 냈기 때문이다.


역시 젠틀몬스터 하면 공간이지!

홍대 퀀텀(좌), Bath house(가운데), 하우스 도산(오른쪽) (출처:공식홈페이지)

젠틀몬스터를 말할 때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공간을 빼놓을 수는 없다. 젠틀몬스터는 브랜드 정체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공간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4년 빠르게 음식을 조리해서 내는 패스트 푸드처럼 15일에 한 번씩 새로운 전시를 여는 패스트 스페이스 개념의 홍대 '퀀텀 프로젝트(Quantum Project)'를 시작으로, 2015년 남겨진 것과 새로운 것의 공존을 표현하기 위해 목욕탕을 개조한 계동 '배쓰 하우스(Bath House)', 2021년 리테일의 미래를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하우스 도산(Haus Dosan)' 까지 젠틀몬스터가 기획한 공간은 항상 화제의 중심이었고 힙스터의 성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안경 브랜드가 왜 이렇게 공간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인지, 과연 이 투자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궁금해한다. 김한국 대표는 몇 천만 원 들인 공간을 한 달에 두 번씩 뒤엎는 퀀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이렇게 하고 무엇을 얻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그때마다 "이 스페이스의 밸류가 상품에 고스란히 녹아들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김한국 대표는 제품만 좋아서는 안 되고 제품, 스타일링, 문화, 공간, 기술 이 다섯 가지 영역이 곱하기로 작동하므로 한 가지라도 ‘0’이라면 결국 전체도 '0'이 된다고 말했다. 젠틀몬스터는 이 정신에 기반하여 제품, 스타일링, 문화, 기술이 녹아들어 간 가장 젠틀몬스터스러운 공간을 계속 새롭게 만들며 젠틀몬스터만의 브랜드 정체성을 강하게 전달해왔다. 그래서인지 공간팀 채용공고에는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은 분'이 필수 자격요건이라고 나가기도 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세상을 놀라게 해주자'

오른쪽 끝에서부터 다섯 번째가 김한국 대표 (출처:VOGUE)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젠틀몬스터는 '공간을 잘 활용해서', '천송이 선글라스여서' 지금의 젠틀몬스터가 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혁신적인 공간 연출이나 방송 노출 효과 모두 지금의 젠틀몬스터를 만든 중요한 요소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젠틀몬스터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놀라게 되는 것은 공간이나 방송보다는 일관된 방향성이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김한국 대표뿐만 아니라 젠틀몬스터 직원 누구든 인터뷰할 때 반드시 나오는 한 마디가 있다. 바로 '세상을 놀라게 해주자'라는 젠틀몬스터의 정신이다. 김한국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뭘 하든 새로워야 합니다. 젠틀 몬스터의 목표를 설명하라고 하면, 새로운 것이 51%, 매출이 49% 정도라고 하고 싶습니다. 아주 미묘한 포인트를 조절하기 위해 노력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새로움에 집착한다.


패션과 아트를 합쳐 전에 없던 비주얼과 맛을 선보인다는 F&B 브랜드 누데이크도, 하우스도산에서 쇼핑하는 동안 옆에 돌아다니는 6족 보행 로봇도, 선글라스 회사지만 아트 디렉터, 조향사, 파티시에, 바리스타, 소믈리에 등 다양한 직원들이 속해 있는 이유도 모두 다 '세상과 사람을 놀라게 하자'는 단단하고 일관된 젠틀몬스터의 정신을 기반으로 뻗어온 결과다.


젠틀몬스터의 적은 젠틀몬스터라고 해요

젠틀몬스터 신사 플래그십 스토어 (출처:공식 홈페이지)

젠틀몬스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다. 2011년 창립 첫해에는 5명의 직원으로 1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지만 2021년 기준으로는 약 700 명의 직원이 2,980억의 매출을 내는 회사로 성장했다. 게다가 아이웨어 브랜드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2017년에는 화장품 브랜드 탬버린즈를, 2019년에는 F&B 브랜드 누데이크를 선보이면서 끝없이 새로움과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다.


젠틀몬스터를 보고 있노라면, '적당히'라는 말은 절대 통용될 수 없어 보인다. 김한국 대표는 한 강의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3개월 동안 책 100권을 읽기로 마음먹었는데 결심이 흩뜨러 질 경우 손을 잘라버리겠다는 각오로 칼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또 젠틀몬스터를 만들 때도 처음에는 안경이나 공간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진 않았지만 필요한 인재들을 찾아냈고, 적극적으로 협업했고, 결국 젠틀몬스터를 만들어 냈다. 이 정도 열정을 가지고 완성도 있게 일을 해내면, 새로운 산업에 진입해도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지금은 누데이크를 총괄하고 있는 하예진 프로젝트 파트장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되게 재수 없게 들릴 수 있는 말인데(웃음), 저희끼리 젠틀몬스터의 적은 젠틀몬스터라고 해요'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김한국 대표와 젠틀몬스터 구성원들이 젠틀몬스터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가장 젠틀몬스터스럽게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을 지켜보고 나니, 그의 말이 절대 재수 없게 들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놀라게 해주자'는 정신을 선명하게 덧칠해오며 가장 젠틀몬스터스럽게 실현해가는 그들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10년 뒤에는 또 어떤 브랜드가 되어있을지가 더 궁금해진다.


뉴 로컬 시리즈

여는 말

로컬(=시골)에는 미래가 있을까?


로컬 헤리티지 (전통 로컬 브랜드)

군산 토박이들이 바라본 이성당이 잘 나가는 진짜 이유 (군산, 이성당) (Editor's Pick)

세상에, 700억을 투자받은 카페가 있다고?! (강릉, 테라로사) (Editor's Pick)

성심광역시에 오세요, 대전이 있어요 (대전, 성심당)

  성심당을 튀소로만 알고 있으면 반도 모르는 거라구요? (성심당 Deep dive) (Writer's Pick)

이제는 부산어묵보다 더 유명해져 버린 어떤 부산어묵 (부산, 삼진어묵)

아마존에 K-호미 팔 생각은 도대체 누가 했을까? (영주, 영주대장간)


뉴 로컬 (신생 로컬 브랜드)

부산을 커피의 도시로 만들고 있는 그 카페(부산, 모모스커피) (Editor's Pick)

롤스로이스만큼 완성도도 높고 비싸다던 막걸리의 다음은? (해남, 해창막걸리) (Editor's Pick)

도대체 무슨 유튜버가 유키 구라모토를 김제에 오게 해? (김제, 오느른)

제주도에서 가장 제주스러운 곳이 어디냐 물으신다면 (제주, 해녀의부엌)

지금 가장 서울스러운 브랜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서울, 젠틀몬스터)

카페진정성은 과연 어떤 진정성이 있었을까 (김포, 카페진정성)


글로벌 로컬 (해외 로컬 브랜드)

지역의 매력을 제일 잘 전달하는 세계 유일 로컬 편집숍 (일본 도쿄, 디앤디파트먼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 이야기 (프랑스 파리, 셰익스피어앤컴퍼니)

무인계산의 시대, 혹시 수다계산대는 들어봤어요? (네덜란드 베겔, 윰보)

졸라 겁대가리 없는 오트우유, 오틀리가 성공한 이유 (스웨덴 말뫼, 오틀리)

샌들에 양말 신는 나라에서 럭셔리 아이웨어가 나온다고?(독일 베를린, 마이키타)

로컬이 된 럭셔리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 (이탈리아 솔로메오, 브루넬로 쿠치넬리)

커피보다 총 얘기를 더 많이하는데 상장까지 한 커피회사 (미국 유타, 블랙 라이플 커피 컴퍼니)



참고자료

https://youtu.be/1SgP09_LLTk

https://dbr.donga.com/article/view/1901/article_no/6741/is_free/Y

https://www.fashionbiz.co.kr/TC/view.asp?idx=142420&uidx=147135

https://www.fneyefocus.com/news/articleView.html?idxno=7560

http://www.brandbrief.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15

https://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3647

매거진의 이전글 로컬이 된 럭셔리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