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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May 18. 2022

로컬이 된 럭셔리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

5 - 솔로메오, 브루넬로 쿠치넬리

이 사람을 아십니까

(출처:GQ)

2021 G20에서 인간적인 자본주의와 지속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철학자,  2021 GQ가 선정한 올해의 디자이너, 2021년 7.12억 유로(약 9,500억 원)의 매출을 올린 브랜드를 보유한 경영자, 모두 '캐시미어의 제왕(the Cashmere King)'이라 불리는 브루넬로 쿠치넬리를 말하는 수식하는 말이다.


(출처:Naijaloaded)

브루넬로 쿠치넬리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아마 이 뉴스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가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고민 이외의 다른 결정은 최소한으로 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매일 입는 회색 티셔츠가 사실은 그를 위해 맞춤 제작된 한 장에 30만 원이 넘는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이었다는 뉴스 말이다. 바로 그 럭셔리 브랜드가 브루넬로 쿠치넬리다.


절대 버리고 싶지 않을 옷을 만든다

(출처 : 브루넬로 쿠치넬리 공식 홈페이지)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캐시미어의 제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신의 이름을 딴 캐시미어를 주 재료로 삼은 패션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그는 1978년 스물다섯 살 무렵 무일푼으로 패션 산업에 뛰어들었다. 무채색으로 단조롭기만 한 캐시미어 시장에 연두색, 빨간색 등 다양한 색상을 적용한 제품을 선보이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주 재료로는 보온성이 탁월한 몽골 캐시미어 산양의 목 아랫부분 미세섬유를 사용하고 최고의 수준을 가진 이탈리아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만들기에 스웨터 한 벌에 약 4백만 원, 슈트는 한 벌에 약 8백만 원을 넘기는 초고가 패션 브랜드이다.


쿠치넬리는 패션은 브랜드가 아닌 옷을 입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쿠치넬리의 제품은 루이뷔통, 샤넬, 구찌같은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는 달리 로고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브랜드 이름과 상관없이 최고의 제품력으로 승부한 결과 VVIP들을 위한 럭셔리 브랜드로 인정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출처:The Times)

그가 캐시미어를 소재로 삼은 이유는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고, 쉽게 버리지 않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번 사면 절대 버리고 싶지 않을 옷, 몇 년 동안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든다. 잘 만들어진 옷은 아들딸, 손자 손녀까지 대물림될 수 있다"라고 말하며 훌륭한 품질의 제품은 오래도록 입을 수 있다고 믿는다.


쿠치넬리의 이러한 철학은 최근 어포더블 럭셔리(Affordable Luxury:적당한 가격으로 부담을 낮춘 럭셔리 브랜드) 전략으로 빠르게 유행을 만들어 내면서 끊임없이 소비하게 만드는 전략과는 대척점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최근의 트렌드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좋은 옷'을 만드는 그의 철학에 동감한 사람들은 계속 늘며 탄탄하게 성장 중이다. 21년에는 20년 대비 30.9%의 매출 성장까지도 이뤄냈다.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 중에 장인정신으로 훌륭한 품질의 옷을 만들어내는 브랜드는 쿠치넬리를 제외하고도 많다. 로고플레이 없이 제품 자체에만 집중하는 브랜드도 쿠치넬리만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 중에서도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가진 경영철학에 있다.


누군가의 존엄성도 파괴하지 않고 인간의 명예를 지키는 브랜드

G20에서 스피치 (출처 : wwd)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G20에 연사로 초청될 정도로 그의 인본주의적(Humanitarian) 경영방식으로도 유명하다. 쿠치넬리는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가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노예처럼 힘겹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누군가의 존엄성을 파괴하지 않고 인간의 명예를 지키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출처:브루넬로 쿠치넬리 공식 홈페이지)

쿠치넬리의 직원들은 이탈리아 의류업계 평균의 20%가량 높은 임금을 받는다. 초과근무가 잦아서 임금을 더 받는 것은 아니다. 쿠치넬리는 오늘 피곤한데 내일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직원들을 모두 8시 출근해서 5시 반에 퇴근하도록 했다. 퇴근시간 이후에는 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에 초과 근무는커녕 이메일도 불가하다. 점심시간은 90분이며 트럭 운전사부터 임원까지 모든 직원이 회사 내 식당에서 와인을 포함한 따뜻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쿠치넬리 공장의 벽은 대부분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답답한 곳에서 기계처럼 일하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야외에서 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런지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일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직원도 있다.


Solomeo 전경 및 브랜드 로고 (출처 : 브루넬로 쿠치넬리 공식 홈페이지)

쿠치넬리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7년 만인 1985년 부인의 고향인 페루자 시 근교의 솔로메오(Solomeo)로 본사를 옮겼다. 쿠치넬리는 일하기 위해, 인간성 복원을 위해, 마을 공동체 복원을 위해 솔로메오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솔로메오에 거주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쿠치넬리의 직원이 됐다. 


쿠치넬리는 직원들이자 직원들의 가족인 로컬 사람들을 위해 솔로메오의 오래된 건물들을 재건해왔다. 운동시설, 극장, 도서관 등을 새로 지었고 기술학교를 세워 인재를 육성하기도 한다. 그의 기술학교 덕분에 젊은이들은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있게 됐고 이탈리아 장인의 명맥도 이어지게 됐다. 많은 애정을 쏟는 만큼 자신의 브랜드 로고 하단에 Solomei ad MCCCXCI를 써서 솔로메오에서 생산된 브랜드임을 자랑스럽게 밝힌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뉴요커(The New Yorker)는 그를 '솔로메오의 왕자(The Prince of Solomeo)'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로컬 럭셔리 브랜드 끝판왕, 브루넬로 쿠치넬리

(우) GQ's Designer of the Year 2021 (출처:브루넬로 쿠치넬리 공식 홈페이지)

그가 대단한 것은 단순히 초고가의 럭셔리 브랜드를 꾸준히 성장시키고 있는 억만장자 부자여서가 아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로컬에서 시작한 신진 브랜드도 럭셔리 브랜드로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줬고, 브랜드 자체가 로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로컬 브랜드가 로컬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출처 : GQ)

쿠치넬리는 신진 브랜드도 럭셔리 브랜드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일반적인 럭셔리 브랜드들은 아주 오래된 전통을 자랑한다. 에르메스는 1837년에 시작했고, 루이비통은 1854년, 샤넬은 1913년에 설립됐다. 유명 럭셔리 브랜드들과 비교하면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길게는 141년에서 짧아도 65년 이상 뒤쳐진 시점인 1978년에 시작한 브랜드이다.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고의 제품력이 있다면 럭셔리 브랜드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출처 : 브루넬로 쿠치넬리 공식 홈페이지)

그는 브랜드 자체가 로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에르메스의 파리같이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도시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페루자 근교의 솔로메오라는 도시를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그 도시를 브랜드에 맞게 설계해가고 있다. 쿠치넬리는 회사 수익의 20%를 자신의 재단을 통해 꾸준히 기부한다. 그리고 이 기부금을 통해 솔로메오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성공적으로 IPO(기업공개)를 끝낸 이후 스스로에게 어떤 선물을 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스스로에게 줄 선물보다 솔로메오의 교회를 복원하는데 더 관심이 있다고 답할 정도로 이 도시와 로컬 커뮤니티에 애정을 쏟고있다.


(출처 : 브루넬로 쿠치넬리 공식 홈페이지)

그는 로컬 브랜드가 로컬에 소속된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아래 사람들이 그의 회사와 솔로메오 사람들의 인간적인 삶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로컬의 사람들이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속가능할 수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그의 의견이 워낙 광범위하기에 그저 말로만 존재했다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브랜드를 통해서, 그리고 솔로메오를 통해서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그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견은 현실화되고 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본인이 진정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실현해내고 있다. 로컬 브랜드라고 해서 스몰 브랜드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법은 절대 없다. 로컬 브랜드도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가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브랜드 자체가 로컬이 될 수도 있다. 꿈의 크기 그리고 자신의 뚜렷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만나면 쿠치넬리같은 브랜드가 나타날 수 있고, 브랜드 자체가 로컬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그에게서 새롭게 발견한 뉴로컬의 가능성이다.


뉴 로컬 시리즈

여는 말

로컬(=시골)에는 미래가 있을까?


로컬 헤리티지 (전통 로컬 브랜드)

군산 토박이들이 바라본 이성당이 잘 나가는 진짜 이유 (군산, 이성당) (Editor's Pick)

세상에, 700억을 투자받은 카페가 있다고?! (강릉, 테라로사) (Editor's Pick)

성심광역시에 오세요, 대전이 있어요 (대전, 성심당)

  성심당을 튀소로만 알고 있으면 반도 모르는 거라구요? (성심당 Deep dive) (Writer's Pick)

이제는 부산어묵보다 더 유명해져 버린 어떤 부산어묵 (부산, 삼진어묵)

아마존에 K-호미 팔 생각은 도대체 누가 했을까? (영주, 영주대장간)


뉴 로컬 (신생 로컬 브랜드)

부산을 커피의 도시로 만들고 있는 그 카페(부산, 모모스커피) (Editor's Pick)

롤스로이스만큼 완성도도 높고 비싸다던 막걸리의 다음은? (해남, 해창막걸리) (Editor's Pick)

도대체 무슨 유튜버가 유키 구라모토를 김제에 오게 해? (김제, 오느른)

제주도에서 가장 제주스러운 곳이 어디냐 물으신다면 (제주, 해녀의부엌)

지금 가장 서울스러운 브랜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서울, 젠틀몬스터)

카페진정성은 과연 어떤 진정성이 있었을까 (김포, 카페진정성)


글로벌 로컬 (해외 로컬 브랜드)

지역의 매력을 제일 잘 전달하는 세계 유일 로컬 편집숍 (일본 도쿄, 디앤디파트먼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 이야기 (프랑스 파리, 셰익스피어앤컴퍼니)

무인계산의 시대, 혹시 수다계산대는 들어봤어요? (네덜란드 베겔, 윰보)

졸라 겁대가리 없는 오트우유, 오틀리가 성공한 이유 (스웨덴 말뫼, 오틀리)

샌들에 양말 신는 나라에서 럭셔리 아이웨어가 나온다고?(독일 베를린, 마이키타)

로컬이 된 럭셔리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 (이탈리아 솔로메오, 브루넬로 쿠치넬리)

커피보다 총 얘기를 더 많이하는데 상장까지 한 커피회사 (미국 유타, 블랙 라이플 커피 컴퍼니)


참고자료

https://www.brunellocucinelli.com/en/

https://www.cbsnews.com/news/brunello-cucinelli-fashion-and-philosophy/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2014111601091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10/03/29/the-prince-of-solomeo

https://www.grailed.com/drycleanonly/brunello-cucinelli-history

https://www.youtube.com/watch?v=C2qLElNmQ5g&t=186s

https://www.youtube.com/watch?v=NnAO1YLAk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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