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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Jun 29. 2022

성심광역시에 오세요, 대전이 있어요

7 - 대전, 성심당

대전하면... 알죠?

대전은 누가 뭐라해도 명실상부한 빵의 도시다. '지인이 대전에 온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밈은 어느 경로를 택하든 결국 마지막에는 '성심당 들리고, 집에 보낸다!' 에 도달한다. '서울 촌놈이 보는 한국 지도'라는 밈에서도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 중에서 유독 대전은 빵으로 인식 된다. 이를 포착한 대전시는 노잼도시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빵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적극 살려 작년부터 '빵모았당'이라는 이름의 빵 축제도 진행하고 있다. 이쯤되면 성심당은 '대전의 자부심'이라는 말도, '대전에서만큼은 일당독재가 가능하다, 성심당으로'라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성심당은 실제로 단일 윈도우 베이커리(매장에 있는 손님이 제품 만드는 공정을 볼 수 있도록 점포 내에 공장을 차려놓고 매장과 공장 사이는 유리로 구분한 빵집)중 매출이 가장 높은 곳이다. 2022년 기준 성심당의 매출은 817억이며 대형 프랜차이즈를 제외하고 단일 브랜드 매출 600억을 넘긴 곳은 성심당이 처음이다. 전국적으로 튀김소보로가 유명한 것도 알겠고 대전의 자부심인 것도 알겠는데 그럼 도대체 성심당은 뭘 어떻게 했길래 지금의 성심당이 된걸까.


성심당의 경영이념 :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한다

1967년 대전 은행당에 위치한 성심당 초기 모습 (출처:BnRmagazine.com)

성심당의 경영이념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한다'(로마서 12:17)이다. 성경의 한 구절이 경영이념이 된 이유는 성심당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성심당의 창업주 임길순 사장님은 원래 함경도 출신이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피난 오는 과정은 말 그대로 죽을 고생이었다. 목숨을 건 머나먼 길을 내려오는동안 임길순 사장님은 '살아남는다면 평생 남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했고 거제와 진해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대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1956년 대흥동성당에서 오기선 신부님에게 밀가루 2포대를 받아 대전역 앞에서 예수의 성심(聖心)을 기리는 '성심당' 간판을 걸고 찐빵을 팔면서 지금의 성심당은 시작됐다. 


모두가 배고팠던 그 시절, 그때도 성심당은 대전역 앞에서 굶는 이들과 찐빵을 나눠 먹었다. 하루에 찐빵 300개를 만들면 100개 정도는 이웃에게 나눠줬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때뿐 아니라 지금도 나눔의 정신은 이어져 매월 금액으로 따지면 약 4천만 원 상당의 빵이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꾸준히 기부되고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성심당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성심당은 가톨릭 정신을 기본으로 이웃, 사회 그리고 고객과 직원, 협력업체까지 모두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회사가 되고자 하는 경영이념을 가지고 있다. 성심당과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는 기업'모두를 위한 경제'(EoC:Economy of Communion)라고 부르며, 실제로 성심당은 세계적으로도 EoC 우수사례로 손꼽힌다.


성심당의 경영목표 : 가치 있는 기업이 된다


임영진 성심당 대표 (출처:tong joins)
아무리 매출이 오르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서로 미워하고 무관심하다면 성심당이 아니다. 맛있는 빵, 경이로운 빵, 생명의 빵에 대한 철학을 지니고 서로 사랑하며 빵을 만든다면 당연히 최고의 빵이 될 것이다. 빵을 통해 사랑의 문화가 꽃피워 세상 밖으로 나가 '가치 있는 기업'으로 우리의 몫을 해야 한다

- 임영진(성심당 2대 대표), 성심당 창업 60년 비전 선포식

성심당의 경영목표는 '가치 있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임영진 대표님이 비전 선포식에서 말했던 것처럼 성심당의 목표는 더 큰 매출을 내는 것이 아니다. 빵에 대한 성심당의 철학을 실현해 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소한 빵내음처럼 사랑의 문화가 세상 밖으로 퍼져나가는 '가치 있는 기업'이 되는 것이 성심당의 목표이다. 임영진 대표님의 말씀하신 성심당의 경영목표는 단순히 선언적인 외침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성심당이 기업으로서 이를 실현해낼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심당은 실제로 사랑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성심당의 내부 인사고과 평가 지표 중 40%는 '사랑'이다. 동료에게 먹거리를 선물하면 1점부터 동료와의 갈등에서 화해의 손을 먼저 내밀면 5점 등 사례별로 세분화 된 점수를 부여한다. 사랑의 사례는 성심당에서 매주 발행하는 '한가족 신문'에 동료의 사랑을 받은 직원이 직접 기사를 실어 모두가 알 수 있게 한다. 2015년 부터는 동료에게 칭찬을 많이 받은 직원을 '사랑의 챔피언'으로 지정하고 상금을 수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사랑을 점수로 매길 수 있느냐', '평가를 위한 사랑은 가식 아니냐'는 반발도 있었지만, 2013년 시작한 이래로 동료간 사랑의 나눔이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성심당만의 인사제도로 자리 잡게 됐다.


성심당도 엄연한 회사이기에 단순히 사랑만 나누지는 않는다. 매년 회계 내용을 직원에게 공개하며 이윤의 15%는 성과보수 인센티브로 직원들과 나눈다. 각 지점의 메인 셰프에게는 억대 연봉을 제공하며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해준다. 또한 매장에서 팔고 있는 빵들의 레시피를 책으로 만들어 전부 다 공개하고 해외 유명 베이커리 셰프들을 초대해 베이킹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한다. 직원들의 역량개발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기에 착실히 실력을 쌓은 성심당 출신이 독립해서 개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성심당이 핵심인재에게 보상과 역량개발에 아낌없는 지원을한 덕분에 대전의 전반적인 제빵 수준이 올라가 '빵향평준화'가 되었다는 말도 생길 정도다.


성심당의 노력은 짝사랑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2005년 성심당 본점에 화재가 발생해 모든 것이 불타고 성심당도 이제는 끝나버린 것던 때가 있었다. 그때, 직원들이 먼저 나서서 '우리 회사 우리가 살리자'라는 플랜카드를 걸었다. 이를 지켜보는 대전시민들도 힘을 더했다. 화재 이후 고객들이 성심당을 적극 이용하면서 오히려 매출은 화재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대표 혼자 자기만의 가치를 추구하고 자기만의 뜻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와 뜻에 동감한 직원들과 이웃들이 함께 호응하고 동참해주었다. 결국 성심당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함으로써 정말로 '가치 있는 기업'이 되었다.


사람이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듯, 기업도 수익을 내지 못하면 지속되지 못한다

성심당의 베스트셀러 튀김소보로 (출처:한국관광공사)

성심당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돈을 벌기 위해 착한 일을 하는가 아니면 착한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가'. 누군가는 성심당의 일련의 경영활동이 나름의 마케팅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밀히 손익계산을 해봤을 때 돈을 벌기 위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도무지 효율이 나지 않는 일이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라면, 수익창출을 위한 비용절감에 몰두하는 것이 더 즉각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성심당이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며 걸어온 길은 경영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성심당은 돈만 벌기위해 기업활동을 한다기보다 성심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더 확산시키기 위해 돈을 벌고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하다.


절대로 착하다고만 해서 성공할 수는 없다. 옳은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치열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야 지속적으로 생존하고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사람이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기업도 수익을 내지 못하면 지속되지 못한다. 성심당이 본원적인 경쟁력없이 착하기만 한 빵집이었다면 절대로 전국구 윈도우 베이커리로는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성심당이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성심당이 '빵집'으로서 본원적이고 강력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수익을 내는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심당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튀김소보로를 1980년 최초 개발했고, 1983년 국내 최초로 3시간이 지나도 녹지 않는 포장 빙수, 1985년 국내 두 번째 생크림 케이크 판매 등 제빵업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이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때부터 세세하게 조명에 신경을 쓴 것도, 부활절이나 어린이날 같은 특별한 날마다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도, 또 최근에는 성심당문화원을 개원해서 성심당의 역사뿐만 아니라 튀소비누나 밀가루 포대를 업사이클링한 제품들을 전시하며 성심당의 브랜드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것도 모두 성심당이 제빵업계에서 트렌드 리더로서 차별점을 갖게하고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게했다.


사람에게 가장 긴 여행코스 머리와 가슴 간의 46cm

사람에게 가장 긴 여행코스는 머리와 가슴 사이 46cm라고 했다. 머리로는 아주 잘 알아도 실제로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는 빠르게 움직여도 가슴이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많은 경영자들은 직원들과 이익공유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지만,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이는 많지 않다. 많은 경영자들이 이웃과의 나눔에 대해 생각하지만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이는 많지 않다. 어쩌면 이 모든 이유는 사람에게 가장 긴 여행코스인 46cm를 온전히 걸어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심당은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갖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묵묵히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를 걸어내며 따뜻한 성과를 만들어 냈다.


성심당은 '모든 이가 좋게 여기는 일'을 하며 '가치 있는 기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매력적인 브랜드는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추구하는 가치를 꾸준히 덧칠하면서 만들어진다. 성심당은 '모든 이가 좋게 여기는 일'을 한다는 가치를 꾸준히 추구하며 성심당을 찾는 로컬 고객 뿐만 아니라 직원을 감동시켰고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가장 큰 윈도우 베이커리가 되었다. 


사람이 먹기 위해서만 살지 않듯이 기업 또한 수익을 내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EoC의 권위자인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는 성심당 같은 중소기업이 100개만 생겨나도 한국경제 구조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어마어마하게 규모가 큰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성심당 같은 가게가 동네에 10개만 더 생겨나도 그 지역만큼은 조금 더 살 맛나는 동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뉴로컬 플레이어들이 각 지역에서 더욱 지역밀착적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뉴 로컬 시리즈

여는 말

로컬(=시골)에는 미래가 있을까?


로컬 헤리티지 (전통 로컬 브랜드)

군산 토박이들이 바라본 이성당이 잘 나가는 진짜 이유 (군산, 이성당) (Editor's Pick)

세상에, 700억을 투자받은 카페가 있다고?! (강릉, 테라로사) (Editor's Pick)

성심광역시에 오세요, 대전이 있어요 (대전, 성심당)

  성심당을 튀소로만 알고 있으면 반도 모르는 거라구요? (성심당 Deep dive) (Writer's Pick)

이제는 부산어묵보다 더 유명해져 버린 어떤 부산어묵 (부산, 삼진어묵)

아마존에 K-호미 팔 생각은 도대체 누가 했을까? (영주, 영주대장간)


뉴 로컬 (신생 로컬 브랜드)

부산을 커피의 도시로 만들고 있는 그 카페(부산, 모모스커피) (Editor's Pick)

롤스로이스만큼 완성도도 높고 비싸다던 막걸리의 다음은? (해남, 해창막걸리) (Editor's Pick)

도대체 무슨 유튜버가 유키 구라모토를 김제에 오게 해? (김제, 오느른)

제주도에서 가장 제주스러운 곳이 어디냐 물으신다면 (제주, 해녀의부엌)

지금 가장 서울스러운 브랜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서울, 젠틀몬스터)

카페진정성은 과연 어떤 진정성이 있었을까 (김포, 카페진정성)


글로벌 로컬 (해외 로컬 브랜드)

지역의 매력을 제일 잘 전달하는 세계 유일 로컬 편집숍 (일본 도쿄, 디앤디파트먼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 이야기 (프랑스 파리, 셰익스피어앤컴퍼니)

무인계산의 시대, 혹시 수다계산대는 들어봤어요? (네덜란드 베겔, 윰보)

졸라 겁대가리 없는 오트우유, 오틀리가 성공한 이유 (스웨덴 말뫼, 오틀리)

샌들에 양말 신는 나라에서 럭셔리 아이웨어가 나온다고?(독일 베를린, 마이키타)

로컬이 된 럭셔리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 (이탈리아 솔로메오, 브루넬로 쿠치넬리)

커피보다 총 얘기를 더 많이하는데 상장까지 한 커피회사 (미국 유타, 블랙 라이플 커피 컴퍼니)


참고자료

http://www.yes24.com/Product/Goods/32734963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73585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345277

https://www.joongang.co.kr/article/4383143#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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