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13)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제주일보에 기고했던 칼럼을,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는 글로 다시 풀어보려 합니다.
작년 말, 제주4·3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젊은 연주자들이 함께 무대를 준비하는 이야기였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서로를 적으로 인식해온 이들이 같은 지휘자 아래에서 연주를 맞추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갈등이자 시도였다.
그들의 연주회로 세상이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받은 이들이 함께 무대에 선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 대부분은 조용히 흐느꼈다. 그 장면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한 젊은 연주자의 말이었다.
“할머니가 반복해서 자신이 겪은 일과 아픔을 말씀해주셨고, 그 아픔이 내 것이 되었다.”
그 한 문장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지금껏 만나온 4·3 유족들, 특히 부모의 고통을 뒤늦게 알게 된 자녀들과의 상담 장면들이 떠올랐다.
2021년 11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개정으로 직권재심 권고 조항이 시행되면서, ‘제주 4·3 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출범했다. 그 뒤로 4·3 당시 군사재판이나 일반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희생자들에 대한 직권재심이 차례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재판 초기부터 국선변호인으로 참여해, 현재까지 재심 재판과 형사보상, 국가배상 사건에 관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유족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상담의 초반부, 나는 거의 매번 같은 질문을 했다.
“아버님(또는 어머님)께서 유죄판결을 받으셨던 사실을 알고 계셨어요?”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믿음은, 그 질문 앞에서 자주 무너졌다.
대부분의 유족들은, 부모님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공무원 시험 면접에서 이유 없이 탈락한 뒤에야,
사관학교나 경찰대학 입시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짐작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어떤 분은, 돌아가시기 전날에야 며느리에게 조용히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했다.
또 어떤 유족은 재심 개시를 알리는 안내문을 받고서야, 평생 술에 의지했던 아버지의 지난 세월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분들은 자신의 고통을 자녀들에게도, 배우자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그렇게 살다 가셨다.
단지 ‘혹시라도 가족들이 피해를 입게 될까 봐’.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로서의 마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다른 질문을 품게 되었다.
고통을 겪은 사람이, 그 고통을 말할 수도 없고, 숨긴 채 살아가야 했던 사회.
그것은 과연 정상적인 사회였을까.
가해자가 아닌 이들이, 스스로를 죄인처럼 감추고 살아야 했던 시대.
그 고통이 다시 상처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 끝끝내 입을 열지 못했던 수십 년.
그 긴 침묵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오로지 사회의 무관심과 제도의 부재 때문이었다면, 우리는 이제야 겨우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것뿐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공감은, 그 고통이 말해질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이야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지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다.
사람들이 무거운 입을 열 수 있게 된 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고,
법과 제도가 그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고통을 감춰야 하는 사회가 아니라,
고통조차 한 사람의 존엄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이길 바란다.
이제라도 그 말들이 닿기를,
말하지 못했던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두려움 없이 소리내어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공감의 전제사실이다.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