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반이었던 아이가 검정고시 합격을 하기까지

by 교실남

*이전 이야기는 맨 아래에 링크를 걸어두었습니다.


2025년 9월 의찬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무려 3년 8개월 만의 연락이었다.

[선생님, 오랜만에 연락드려요. 저 정의찬입니다. 한 번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려요.]


나는 한참 동안 의찬이의 카톡을 보는 것을 망설였다. 혹시나 그동안 의찬이가 나쁜 길로 빠졌을까 봐, 예전에 의찬이와 함께 했던 노력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을까 봐 그 결과를 마주하기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의찬아, 오랜만이네! 지금 고2지? 잘 지내고 있어?]


[네, 고2입니다. 잘 지내고 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선생님은 중국에 2년 동안 초빙교사로 갔다가 올해 다시 한국에 왔어~ 학교는 지금 어디 다니고 있어?]


[선생님, 저 지금은 자퇴를 했어요...]


[엥? 자퇴는 왜?]


자퇴라니... 카톡 확인 전 느꼈던 두려움이 다시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의찬이의 문자를 보고 안심했다.


[공부랑 안 맞아서 자퇴를 했는데 자퇴를 하고 공부를 더 많이 한 거 같아요 ㅋㅋㅋ 지금은 검정고시 합격했어요!]


[헉, 공부는 혼자 한 거야?]


[아뇨. 학원도 다니고 복지관에서 도움을 받았어요. 그리고 지금은 알바를 하고 있고 부사관 하고 싶어서 준비 중이에요.]


[와... 그땐 그렇게 공부하기 싫어하더니, 결국엔 공부를 했구나 ㅋㅋㅋㅋ]


[ㅋㅋㅋ 결국엔 고졸은 필요하니깐요. 그래도 결국엔 합격해서 1년 벌었죠.]


[그래, 필요성을 느껴야 공부를 하지. 그땐 네가 너무 어렸고.]


[맞아요. 옆에서 누가 아무리 뭐라 해도 필요성을 못 느끼면 안 바뀌더라고요. 한 번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은데 언제 시간 편하세요?]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 뒤에 약속을 잡았다.




[선생님, 저 방금 학교 정문에 도착했어요!]


오랜만에 본 의찬이는 듬직하고 훤칠해 보였다.

"와~ 의찬아, 너 멋있어졌다? 그때보다 키도 더 크고 얼굴도 잘생겨졌는데?"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안 그래도 요새 잘 생겼다는 얘기 많이 들어요."


"아니 (웃음) 이놈이 겸손을 모르네. 잘생겼다는 말은 취소다."


4년 전에 의찬이의 공부 포기 선언으로 다소 안 좋게 이별을 맞이했지만, 우리는 마치 어제도 만난 스승과 제자처럼 자연스럽게 얘기를 했다.


"그래, 검정고시는 어떻게 합격한 거야? 선생님이랑 헤어지고 나서부터 어떻게 지냈는지 스토리 한 번 쭉 풀어봐봐."


"선생님이랑 헤어지고, 중2, 중3 때도 사실 정신을 못 차렸어요. 학교에서는 적당히 수업 듣고, 집에서는 게임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고1 올라가니깐 학교생활이 딱히 재미도 없고 그래서 바로 자퇴를 했어요. 거의 1년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했죠. 1년 정도 게임만 하니깐 게임이 정말 질리더라고요. 그러다가 문득 걱정이 되는 거예요. 내가 이 상태로 성인이 되면 어떻게 하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예전에 선생님도 떠올랐어요. 그냥 선생님이랑 계속 공부할 걸 후회도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그때 복지관에서 도움을 받았어요. 검정고시 학원에 보내주시더라고요. 근데 검정고시 학원이 제 수준이랑 맞지 않아서, 너무 힘든 거예요. 그때 딱 3개월 정도 다녔어요. 교회 집사님께 학원 공부가 힘들다고 말씀드리니, 집사님께서 속성으로 과외를 해주신다고 했어요. 그래서 학원을 그만두고 집사님께 야매로 3개월 정도 검정고시 과외를 받았죠. 그리고 얼마 뒤에 검정고시를 쳤고 합격을 했죠."


"와... 그럼 성적은 얼마 정도 나왔어?"


"평균 83점인가 그랬어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엥? 83점?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 아닌가? 83점이면 꽤 높은 점수인데? 와... 진짜 대단하네."


"아니에요. 그날 시험이 좀 쉽게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야, 그래도 6개월 만에 검정고시 합격은 정말 대단한 거야. 아무튼 축하한다, 의찬아."


"사실 공부하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거든요. 그때 선생님이랑 공부했던 시절의 기억이 많이 났어요. 그때 선생님이랑 같이 오랫동안 공부한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됐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래, 선생님도 고맙다. 네가 이렇게 잘 자라줘서. 아직 초등학교 때 특수반 선생님이랑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한테는 연락 안 했지? 지금 해볼래?"


"네, 지금 연락해 볼게요!"


특수반 선생님과는 화상통화를 했다. 특수반 선생님은 훤칠하게 자라있는 의찬이의 모습에 한 번 놀라고, 검정고시를 합격했다는 소식에 두 번 놀랐다.


"(눈물을 글썽이며 ) 의찬아, 너는 내 특수반 제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연락 오는 제자야. 이렇게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마워."


의찬이의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나중에 의찬이에게 연락을 받고 따로 내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의찬이 중1 담임이었던 000입니다. 좀 전에 의찬이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교실남 선생님께 전화번호를 받았다고요. 제 연락처 지우지 않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겐 오늘이 올해 가장 행복한 날이거든요~!!! 선생님도 저만큼 기쁘셨겠죠? 수요일에 의찬이 보기로 했는데 마음이 정말 설레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덕에 이 행복 누릴 수 있었어요~ 저녁 맛있게 드세요~]




의찬이의 검정고시 합격 스토리를 듣고, 이제 근황과 미래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지내?"


"돈가스 가게에서 알바하고 있어요. 나름 재미있어요."


"오~ 꾸준하게 열심히 한 번 해봐. 나중에 시간 되면 영화관이나 카페 알바도 해보고. 그게 다 경험이거든. 선생님은 대학 시절에 과외만 한 게 나중에 후회되더라."


"네, 선생님! 아, 그리고 좀 있으면 부사관 원서 접수 기간인데, 부사관 지원해 보려고요."


"오~ 부사관 너랑 뭔가 어울리는데? 관사도 주고 하니깐, 집에서 떨어져 나와서 살 수 있겠네!"


"네, 맞아요. 나중에 합격하면 선생님 또 찾아뵐게요!"


이후로도 우리는 다양한 얘기들을 이어갔다. 의찬이가 최근에 사귄 첫 여자 친구 이야기, 자신의 외모 이야기, 알바 에피소드 등등 의찬이 나이 또래 아이들이 할 법한 풋풋한 이야기들을 했다.

"선생님이 갑자기 궁금한 게 하나 생겼는데, 너 양치질은 해? 그때 양치질 안 해서 선생님한테 많이 혼났잖아."


"음... 1주일에 1번 정도는 해요."


"(깜짝 놀라며) 뭐? 그렇게 선생님이 양치질을 강조했는데.... 양치질 계속 안 하면 여자친구가 엄청 싫어한다? 최소한 하루에 1번은 해, 의아..."


"안 그래도 최근에 또 치과에 다녀왔어요. 양치질할게요..."


의찬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예전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6년 전 한글을 못 읽는 척하던 특수반 아이, 구구단이 외우기 싫어서 학교 다니기도 싫고 죽고 싶다던 아이, 그런 의찬이를 설득하다 눈물바다가 된 우리 반, 다시 재회해서 2달 동안 열심히 공부한 기억들, 의찬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설득하던 과정, 중학교 담임 선생님과의 통화, 의찬이의 포기까지. 그랬던 아이가 지금 내 앞에 늠름하게 서있었다.


내가 그때 이 아이가 특수반에 있을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못 알아챘다면? 중학생이 된 의찬이와 같이 두 달 동안 공부를 같이 하지 않았다면? 의찬이 중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의찬이의 상태와 가정사정을 얘기하고 의찬이의 미래에 대해 의논하지 않았다면?


나의 작은 행동이 의찬이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밀려왔다. 뿌듯함, 보람감, 성취감, 행복감 등 여러 감정들이 교차했다. 그래, 이래서 학교 다니는 게 즐겁지. 바로 이 맛에 선생님 하는 거지.




의찬이와 헤어지고 집에 가서 의찬이와의 대화를 복기해 보았다. 의찬이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잘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의찬이는 인복이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도 주변에 의찬이를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수반 선생님, 중학교 담임 선생님, 복지관 직원분, 교회 집사님 등 이분들은 의찬이가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도움을 주셨다.


두 번째, 뒤늦게라도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의찬이의 경우 오히려 자퇴를 한 것이 신의 한수가 되었다. 질릴 때까지 게임을 했고, 그 결과 게임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마주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현실에 대한 자각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학습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를 줬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게임을 한다고 나쁜 친구들을 사귈 시간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의찬이를 망친 게임이 의찬이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의찬이는 나쁜 길로 빠지기 정말 쉬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좋아하고 약간 오타쿠적인 기질이 오히려 의찬이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네 번째, 중 1때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서 나와 공부를 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그때 단기간에 빡세게 공부를 해서 성취를 해 본 경험이 의찬이가 꾸준하게 검정고시 공부를 할 수 있는 발판과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잡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런 의찬이를 보고 앞으로 나는 어떤 교육을 해나가야 할까? '진짜 필요성을 느껴야 공부를 하더라고요.'라던 의찬이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교육,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파고들어서 성장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교육 또는 초등은 아직 필요성을 느끼기에 이른 나이니 몸이 기억할 수 있게 습관을 잡는 교육 등 여러 영감들이 떠올랐다.




몇 주 전 의찬이와 또 연락을 했다. 부사관 1차 원서접수는 한 상태고 1차 합격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계산을 해보니, 의찬이가 부사관 합격을 하면 또래 중에서 아주 빠른 편이었다. 임관 기준으로 만 18세 이상인데, 임관 기준일이 의찬이의 생일이 지나고 3주 뒤였다. 여러모로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찬아, 무슨 일 있거나 도움 필요하면 꼭 연락하고. 나중에 부사관 합격하고 또 연락해!]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조만간 연락할게요!]




*이전 이야기

06화 학생의 집에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1 선생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학생

#2 학생과 계약한 선생

#3 교사 인생 최대의 난제

#4 선생님, 학원비는 걱정하지 마세요.

#5 중학교 담임선생님과의 통화

#6 선생님, 저 포기할게요.

#7 내 인생 최악의 집

#8 의지를 이기는 환경설정

#9 아이의 학습동기를 자극하는 3가지 전략

#11 아이는 변할 수 있다.

#12 선생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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