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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17. 2022

<이탈리아 15일차> 돌로미티, 세체다에서 멈춘 시간

<이탈리아 1일차> 로마의 휴일, 그래도 팁

<이탈리아 2일차> 화려한 바티칸, 투박한 산탄젤로

<이탈리아 3일차> 로마 여행에서 놓치거나 놓칠뻔한

<이탈리아 4일차>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이란

<이탈리아 5일차> 사기캐 토스카나에서 관광 대신 여행

<이탈리아 6일차> 몬테풀치아노, 로망이 이긴다

<이탈리아 7일차> 발도르차 평원의 빛과 바람

<이탈리아 8일차> 토스카나, 하늘이 다했다.

<이탈리아 9일차> 피렌체, 63층을 올라갔다니

<이탈리아 10일차> 오, 다비드.. 그리고 피스토야

<이탈리아 11일차> 파랗게 빛나는 친퀘테레..그리고

<이탈리아 12일차> 만토바 공국..가르다 호수

<이탈리아 13일차>베로나, 시르미오네..넘치게 좋았다

<이탈리아 14일차> 구텐 탁, 돌로미티


빈은 옛날옛적 동네 배드민턴 클럽 회원이었다. 구청 주최 대회도 나갔던 선수. 주부들이 주력 부대였고,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이가 회장 언니였단다. 동네 언니들과 함께 노는 배드민턴 클럽 얘기를 들을 때 마다 신기했다. 일하는 여자들은 끼기 쉽지 않은게 동네 모임이다. 학부모 모임에 들어가도 정보 없는 엄마라 눈치보다 밀려난 기억이 있다. 더구나 동네 스포츠 클럽은 실력이 없으면 끼워주지 않는 분위기. 함께 활동해야 실력이 늘텐데 일단 들어가는게 문제이고.. 빈이 그 클럽 회원들과 어울릴 수 있던 비결은 회장인 왕언니의 귀여움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빈이 바쁘면 아이도 챙겨주는 친절함과 다정함의 화신이던 회장님.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 시절, 그러니까 30대의 빈이 얼마나 귀여웠을까, 생각만해도 웃음이 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생기발랄 귀염뽀짝 사려깊은 친구가 그 시절엔 어땠더라. 10대에 만난 빈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빈의 30대 얘기를 듣다가 우리는 모두 30대를 생각했다. 31세에 교수가 된 소연도 화려하고 파란만장한 시절을 보냈다. 딸기의 30대는 나와 비슷하다. 개인, 기자, 아내, 엄마, 딸, 며느리.. 하여간에 바빴다.

30대에 나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사회생활 10년차를 넘기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던 시절이었다. 노력한 만큼 자신만만했고, 인생 경륜도 제법 쌓였다고 잘난척 했다. 지금 돌아보니 아이고, 귀여워라...그때 참 사랑스러웠다. 더 이상 꿈과 낭만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때 진짜 어렸다. 무게도 10kg 이상 덜 나갔... 무튼무튼무튼... 우리는 지금도 귀엽다. 여행을 하면서 지금 우리가 얼마나 귀여운지 깨닫는 중이다. 10년 뒤에 우리는 이 시절을 어떻게 추억할까. 그때 더 귀여움을 즐겼어야 해! 이탈리아 여행 때 우린 정말 철 없었지! 정작 귀여운 사진은 공개 못하지만, 씩씩하게 걷고 있는 우리는 지금이 전성기다.  


돌로미티엔 두 동네가 가장 크다. 오르티세이Ortisei,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 우리는 오르티세이에 먼저 왔다. 여기서 또 가장 유명한게 두 곳이라 했다. 아침부터 서둘렀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었다. 이 동네 일기예보는 시시각각 바뀌어서 행운을 기대했지만 알 수 없으니까. 오르티세이 숙소에서 5분만 걸으면 세체다Seceda 로 오르는 곤돌라를 탈 수 있다. 왕복 37유로? 우리는 일일권을 인당 51유로에 샀다. 오전8시30분 문열자마자 고고.

오르티세이 동네 분위기는 이렇고.. 우리는 곤돌라를 탔다.

10분+5분 정도 곤돌라를 타고 2500m 세체다에 올라가면 펼쳐지는 풍경. 말을 잊는다.. 왼쪽의 저 바위산이 어제 막달레나 교회에서 본 석벽이다. 이젠 옆에서 보네..


너무 행복했던 우리는 해지기 전에 세체다에 다시 올랐다. 두번 올랐다. 돌로미티는 해와 구름, 바람 덕분에 빛에 따라 풍경이 계속 바뀐다. 같은 장소에 다시 섰던 이날 오후.. 세체다는 더 투명하게 빛났다. 오후에 내린 비가 돌로미티를 씻어내리고, 다시 쨍하게 말린 후.. 달라졌다.


백운암이라는 돌로마이트 바위산들은 장엄하다. 다시 봐도 그렇다. 평평한 평원마냥 꼭대기가 펼쳐진 모양, 마치 한 층을 깍아낸듯 균일하게 층이 난 모습이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된다.


지금 옆에서 놋북을 보던 소연이 말한다. 사진 좋다! 아 정말 좋다! 글이 뭐가 더 필요하냐고 한다. 사진만 보면 된다고. 맞다.


봉우리들 설명도 멋지다...


오르티세이에서 두번째로  봐야 한다는 곳은 알페  시우시 Alpe di Siusi. 원래 세체다나 알페  시우시나   정도는 걸어서 내려오고 싶었는데.. 오후  예보 때문에 일단    곤돌라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세체다에서 알페  시우 쪽으로 가려면.. 다시 5 정도 동네 걸어가면 된다.  소리가 우렁찬 시내를 건넌다.


곤돌라부터 빨간 원형으로 다르던데.. 알페  시우시는  세체아와 다르다. 돌로미티 바위산들을 오들 odle 산군이라 부르던데, 오들은..  동네 토착민인 Ladin  언어로 needle, 바늘처럼 뾰족한 산들이라고 빈이 해석해줬다.. 정말 날카롭게 하늘을 찌른다.


그리고 옆으로 평원과 산이 파도처럼 이어진다.


세체다보다 이쪽 평원은 더 연두연두 넓게 퍼진다. 곤돌라는 물론 리프트도 일일권으로 탈 수 있다. 가벼운 경량 패딩까지 준비했건만 패딩은 일찌감치 벗었고, 봄가을 날씨는 시원했다. 인스타와 페북엔 올렸지만, 동영상의 내 목소리가 신나서 들떴다.


의자라도 만나면 반갑다. 다 해봤는데, 사진 찍고 뭐 하는 것보다 그냥 멍 때리는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알페 디 시우시의 레스토랑. 아랫동네 오르티세이보다 크게 비싸지도 않고, 맛도 훌륭. 사슴고기 라구소스 파스타도 터키 곁들인 샐러드도 무척 푸짐했다. 글뤼바인은 달았지만 맘에 들었고, 각자 칵테일에 티에 맘대로 즐겼다.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기예보가 얼추 맞았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 잠시 쉬었다. 여행인데 낮잠도 오랜만.. 1시간 까무룩 잤을까? 날이 개었다. 이 동네는 여행자를 제대로 조련하는구나. 후다닥 나갔다. 세체다 다시 올라가자고 했다.. 그런데 오며가며 본 희한한 노선이 있었다. 세체다 옆인데 레시에사 Resciesa? 소연이 세체다 샵의 언니에게 물었더니 꼭 가보란다. 레시에사는 곤돌라가 아니라 푸니쿨라? 와아.. 빠르다. 트래킹 코스가 잘 되어 있다. 5분, 30분, 2시간 코스.. 숲길이다. 와웅.. 그러나 우린 시간이 없네? 저기서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5분 코스로 계속 감탄만 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테이블에서 물 한잔에 행복했다. 맥주 안 마셔도 괜찮다.

레시에자 푸니쿨라.

우리는 기어이 세체다에 다시 올랐다. 정말 비가 갠 이후 풍경은 너무 싱그럽다. 미쳤다.


사진이고 뭐고.. 두번째 세체다에 올랐을 때에는 그냥 멍때렸다. 시간이 멈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모든 걸 비워내는 시간. 이 여행이 축복이란 걸 새삼 생각한다.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피사체에 대한 애정으로 찍어준 건 소연. 시간을 다 잊고 싶었지만 곤돌라 막차를 놓치지는 않았다ㅋ


저녁은 동네 평점 높은 피자집 투론다. 피자 맛집인데 양이 많아서 한 판 밖에 못 먹었네..


숙소 1층 공용공간에서 가볍게, 진짜 가볍게 한 잔 더. 햄과 사과 한 알, 자두 한 알 샀다. 그동안 싸들고 다닌 식량 정리해야 할 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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