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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18. 2022

<이탈리아 16일차>돌로미티, 길 위에서...친퀘토리

<이탈리아 1일차> 로마의 휴일, 그래도 팁

<이탈리아 2일차> 화려한 바티칸, 투박한 산탄젤로

<이탈리아 3일차> 로마 여행에서 놓치거나 놓칠뻔한

<이탈리아 4일차>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이란

<이탈리아 5일차> 사기캐 토스카나에서 관광 대신 여행

<이탈리아 6일차> 몬테풀치아노, 로망이 이긴다

<이탈리아 7일차> 발도르차 평원의 빛과 바람

<이탈리아 8일차> 토스카나, 하늘이 다했다.

<이탈리아 9일차> 피렌체, 63층을 올라갔다니

<이탈리아 10일차> 오, 다비드.. 그리고 피스토야

<이탈리아 11일차> 파랗게 빛나는 친퀘테레..그리고

<이탈리아 12일차> 만토바 공국..가르다 호수

<이탈리아 13일차>베로나, 시르미오네..넘치게 좋았다

<이탈리아 14일차> 구텐 탁, 돌로미티

<이탈리아 15일차> 돌로미티, 세체다에서 멈춘 시간


1.

교환학생 시절 중간고사를 앞두고 연은 조심스럽게 교수에게 말을 꺼냈다. 혹시 시험칠 때 사전을 써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미국인 할머니 교수님은 오 마이~ 어쩌고..다정하게 허락했단다. 연은 공부 내용을 거의 모조리 외어버렸다. 영어가 부족하니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미국 학생들 틈에서 교환학생 연은 그 시험에서 99.5점으로 1등을 했다. 이야기를 듣던 빈이 말했다. 나는 교환학생 때 Dean's list에 올랐어. 아이고.. 대단한 녀석들. 빈 역시 영어가 쉽지 않았다. 어느날 듣다보니 아니, 다들 영어로 X소리를 하다니. 영어만 훌륭했고, 내용이 없었다나? 자신감을 갖고 미국사에 도전했던 빈.. 이후 대학원에 갔더니 그런 친구들은 다 사라지고, 전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이들만 모였다. 빈은 흥분하고 수업에 갔다가, 좌절해서 돌아온게 아니라 오히려 더 흥분해서 돌아왔다. 수업 준비하느라 잠 못자도 너무 재미있던 시절, 교수 질문에 대한 학생들 첫번째 코멘트는 빈도 아는 수준. 두번째 코멘트부터는 생각 못한 포인트가 이어졌다. 빈은 첫 코멘트를 해야하는구나, 작심하고 준비했다. 학생들이 서로 인사이트 경쟁을 하노라면, 교수가 마지막 한 마디로 모두 평정했다. 별처럼 빛나던 그 친구들은 그런데, 다른 것도 모두 잘해서..결국 로스쿨 등 다른 길로 갔다. 본인은 평범하다고 생각한 빈은 연구를 계속했다. 인생 알 수 없다.

연이 교환학생 시절 Human Sexuality 라는 수업을 들을 때, 과제가 '첫 경험'을 써오라는 것이었고..다른 모든 학생과 달리 경험 없던 그가 바바리맨 사연을 써낸 얘기도 무척 재미있지만.. 일단 넘어가자.


2.

자.. 나름 배운 여자들인데, 우리 표현력은 너무 빈곤했다. '와', '와우', '아아아'... 탄성만 쏟아냈다. 아무도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서로 물었다. 이거 뭐라고 해야해!?! 아 몰라.. 꺄아아아아.
돌로미티의 오르티세이 Ortisei 를 떠나 코르티나 담페초 Cortina d'Ampezzo 로 가는 길은 꼬불꼬불 굽이굽이 산길이었다. 돌로미티의 돌로마이트 석벽 사이로 낸 길을 따라 연이 차를 몰았다. 좁은 도로에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가 같이 달린다. 길 전체가 절경인데 여행자끼리 신경써야 할게 여럿이다. 자전거 여행자는 우리가 조심했다. 그들은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에게 수신호를 해주면서 좁은 도로의 상황을 예의바르게 전했다. 오토바이는 위험하게 달리는 주제에 매연까지. 쳇. 우리는 계속 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감탄만 이어갔다.


3.
길 가다 차를 세웠다. Passo Sella. 파소는 path다. 5분 정도 올라갔더니 360도 풍경이 어마어마하다. 바람이 셌다. 이러다 날라가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을 오랜만에 했다. 이런 동네에서 오래 살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될까? 초현실 절경인데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이탈리아 16일 째인데 오늘 찍은 사진이 가장 많다. 파소 셀라.. 그리고, 오후 일정 덕분이다.


친구의 인생샷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찍어놓고 내가 감탄.


저 사진 찍으려고 누운 김에.. 다른 친구들도 다 불러내서 같은 위치에 세우고 찍었다.


저기 가운데에 차를 세우고 돌아다녔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4.

길 위에서 만난 파소 셀라 외에 오늘 우리의 유일한 목적지는 친퀘토리 Cinque Torri. 다섯 개의 봉우리다. (탑을 torre 라 하던데 같은 단어일까?) 20유로에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점심부터 먹었다. 2600m 산 봉우리들 틈에서 밥 먹는 정도는 하루만에 익숙해졌다. 사과 샐러드와 양고기 굿굿.


친퀘 토리.. 5개의 탑이라 하는 편이 낫겠다. 가장 오른쪽 1번 탑 왼쪽 아래.. 2번과 3번 앞에 떨어진 바위는 마치 스테이크를 썰어놓은 양 반듯하게 잘렸다. 4번 봉우리에서 2004년 떨어져 조각난 상태란다. 우르르릉 무너졌을 당시를 상상하기 어렵다.


친퀘토리는 트래킹하기 좋다. 코스가 많다. 우리는 한시간 반쯤 돌아다녔다. 날다람쥐처럼 사라지는 빈을 제외하면, 우리는 살살 돌길을 걸었다. 우리의 무릎은 소중하니까. 우리는 다치면 안되니까. 사진의 바위를 타고 암벽등반 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자칫 길가다 넘어져도 크게 다칠 판인데 저런데 목숨을 걸다니! 그들의 용기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하늘과 구름, 바람 외에 아무것도 없다. 더 뭐가 필요하지?


저 바위의 색깔은 홀로 다르다. 뭐지?


친퀘토리 부근은 요새였다. 1911년 전투 유적을 복원했고, 가끔 표지판이 등장한다. 20세기 초 이탈리아 왕국과 오스트리아 왕국, 헝가리 제국이 전쟁을 벌였다. 1916년 12월13일 '하얀 금요일' 눈사태로 1만 명의 군인이 숨진 곳이다. 이후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오스트리아가 1919년 생제르맹 조약을 맺고 남부 티롤을 이탈리아에게 넘겼다. 이 역사를 책이 아니라 돌로미티 돌산에서 배우다니.


돌들의 노래를 듣는 기분이지만, 돌아서면 평원이다.


연과 딸기는 들꽃 사진 찍느라 정신없다. 돌로미티 들꽃이 가장 예쁠 때가 6월이란다.


나는  산의 지형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평원이  봉우리 위에 만들어질  있지? 대체 지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걸까.


오늘 가방에 가디건, 바람막이, 후드점퍼까지 세 벌을 들고 다니며.. 차례로 입었다 벗었다 입었다 벗었다..바람 불면 춥고 햇볕 쬐면 덥다. 놀라운 곳이다. 역시 멍때리는 시간이 최고. 불러서 사진찍어주는 친구들이 있다.


일단 찍기 시작하면 또 자세를 잡고..친구와 한 컷.

친퀘토리 보면서 커피 타임... 이게 여행이지.


주차장에서 5분도 안되는 거리에 Dones 호수... 라는데 솔직히 연못 정도. 그래도 물에 비치는 산은 예쁘다.


드디어 돌로미티 두번째 숙소, 코르티나 담페초의 한 아파트다. 요즘은 점심 때 식당 빵을 싸들고 와서..햄치즈와 과일, 샐러드를 더해 저녁을 즐긴다. 어제는 올리브, 오늘은 썬드라이드토마토와 앤초비까지. 장본 걸로 차리는데 5분. 와인을 마시며 서로 사진을 교환하고 깔깔대고 그렇게 날이 저문다. 우린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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