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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Oct 25. 2022

어두운 터널 속에서

엄마의 이름





도시 생활의 복병은 외로움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집에서 맘껏 뛰어 놀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시골은 찌들게 가난해도 아이들이 뛰어다닌다고 타박할 사람이 없었다.  얇은 벽 사이에 이웃이 다닥다닥 붙어 사니 눈치가 보였다.  도시에서 집 없는 설움은 시골과는 또 달랐다. 인심이 야박했다. 이사할 때마다 애가 셋이 딸린 걸 보고는 세를 잘 주려하지 않았다. 2년 뒤 이사한 집주인은 할머니였는데 까탈스럽고 신경질적이었다. 조금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문 밖에서 조용히 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아이들이 마당에 신발을 끌고 다니면 시멘트 닳는다고 호통을 쳤다. 한참 복닥거릴 나이의 아이들이라 나는 쫓겨날까 봐 가슴을 졸이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점점 아이들을 혼내고 야단칠 때가 많아졌다.


부엌에 있는데 또 주인 할머니가 문 밖에서 아이들을 혼내는 소리가 들렸다.

"이놈들아, 마당 다닐 때 신발 끌지 말라고 했나 안 했나! 시멘트 다 닳으면 너네 어미가 물려줄 끼가!"

그동안 쌓인 화가 폭발했다.

나는 문을 거칠게 열고 나가 할머니에게 대들었다.

"할머니! 그만 좀 해요! 애들이 신발을 끌면 얼마나 끈다고 그래요?"

"뭐, 뭐라카노!..."

"시멘트 바닥이 닳으면 얼마나 닳겠어요! 집주인이라고 그렇게 유세하는 거 아니에요!"

"살기 싫으면 방 빼면 될 거 아이가! 와 여서 살고 있는데!"

"나가요! 살라고 해도 더 안 살아요!"

"저, 저 새파랗게 젊은 년이...."


방을 빼서 맞은편 골목길 안 쪽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에 맨드라미가 피어있었다. 골목 끝에 작은 1층짜리 주택이었고 마당에는 개를 키우는 집이었다. 다행히 집주인은 사람 좋은 아주머니였다. 아이들이 개를 좋아했다. 우리가 사는 집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동천강 뚝으로 가는 오르막이 보였다.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초록색 언덕 사이 누런 황톳길을 따라 올라가면 동천강이 끝없이 펼쳐졌다. 강이지만 상류라 물이 개울처럼 얕아 아이들이 모래밭에서 놀고 물놀이하기 좋았다. 가끔 큰 이불 빨래를 남편과 동천강에 와서 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먹고살려면 푼돈이라도 벌어야 했다. 싸우고 나온 할머니 집 위로 작은 산이 있었는데 계단을 따라 산을 넘어가면 첫째 아들이 입학한 병영 국민학교가 나왔다. 나는 근처에 있는 병영동 중학교 선생 하는 집에 가서 아기를 돌봐 주었다. 목재공장에서 잠시 일하기도 하고 자동차 부품 회사에도 다녔다. 집에서 쉴 때는 낚시 바늘 만드는 부업을 했다.


살림을 조금씩 늘리는 보람은 있었다. 푼돈을 모아 마음먹고 카스텔라 제빵기를 샀다. 계란 한 판을 사고 밀가루를 채에 쳐서 카스텔라를 구웠다. 고소한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 간식을 사준 적이 거의 없었기에 세 아이의 눈동자가 연신 빛났다. 빵을 한 판 굽기 무섭게 게눈 감추듯 없어졌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첫째 국민학교 4학년 때 둘째가 학교에 들어갔다. 아직 학교에 안 들어간 여섯 살 막내만 집에 남게 되었다. 둘째가 그나마 일찍 학교에서 돌아오기에 집에 얼른 와서 동생 좀 챙기라고 하고 막내에게는 오후까지만 잘 놀고 있으라고 당부하고 일을 하러 다녔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는 나를 주인아주머니가 불러 세웠다.

"이 봐, 애기 엄마. 일도 좋고 돈도 좋지만, 아직 막내가 어린데 아부터 챙기는 게 어떻겠노! 낮에 어디서 아 우는 소리가 들려서 나가봤더니 그 집 막내가 아무도 없는 방 문턱에 앉아 울고 있었다 아이가. 고마 내 마음이 다 안 좋더라."


가슴에 묵직한 바윗돌이 쿵하고 떨어졌다. 먹먹해진 가슴에 퍼런 멍울이 번졌다. 힘겹게 부여잡고 있던 인내의 끈이 뚝 하고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나도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다. 화목하게 웃으며 살고 싶다. 하지만 정 없이, 입 닫고 산 시간이 쌓이다 보니 마음을 꺼내는 방법도 웃는 방법도 잊어버렸다. 내 삶에 빛이 올까? 다 같이 웃는 날이 올까? 내게 집은 깜깜한 터널 같다. 어두운 터널을 걷고 걸어도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사방이 꽉 막혀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곳. 생기를 빼앗기고 점점 시들어가는 곳. 아이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아이들만 바라보면서 살 자신은 없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아니다. 아이들 봐서라도 살아야 한다.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나는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엄마의 이름 앞 이야기>

1. 시작

https://brunch.co.kr/@miyatoon/20

2. 프롤로그-영웅 영숙이

https://brunch.co.kr/@miyatoon/37

3. 우리 영숙이는 선생님 시킬 거라......

https://brunch.co.kr/@miyatoon/38

4.호랭이는 뭐하나 저 간나 안 물어가고!

 https://brunch.co.kr/@miyatoon/41

5. 와야 국민학교

https://brunch.co.kr/@miyatoon/43

6. 뽕 따러 가세

https://brunch.co.kr/@miyatoon/44

7. 남의 집 살이

https://brunch.co.kr/@miyatoon/45

8. 진모 엄마는 키가 시집가서 컸어.

https://brunch.co.kr/@miyatoon/46

9. 내 살림과 아이들

https://brunch.co.kr/@miyatoon/47

10. 도시로 떠나다

https://brunch.co.kr/@miyatoon/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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