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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Oct 31. 2022

맨드라미는 소환 버튼

기억 속 내 이야기

   

  


동네 앞 2차선 좁은 도로에는 차들이 드문드문 먼지를 날리며 지나간다. 도로 양쪽에는 1층짜리 낡은 한옥이 삐뚤빼뚤 무심하게 늘어서 있다. 집들 뒤에는 작은 산이 봉긋 솟아 있다. 여섯 살 내가 내년에 병영 국민학교에 입학하면 지겹도록 오르내릴 산이다.     


꼬장꼬장한 무서운 할머니 집에서 나와 이사 간 우리 집은 특이했다. 대로변 허름한 상점과 집들은 담벼락으로 울타리를 만든다. 그사이에 자연스럽게 좁은 골목이 생겨났는데 골목길을 따라가면 초록으로 덮인 넓은 오르막이 나타난다. 초록 언덕 군데군데에는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었다. 언덕 가운데에 구불구불한 황톳길이 선명한 가르마처럼 새겨져 있다. 황톳길을 따라 오르막 정상에 서면 한눈에 담을 수 없이 긴 동천강이 펼쳐졌다. 우리 집은 좁은 골목과 초록 오르막 사이에 덜컥 나타났다. 대문도 없이 덩그러니 자리 잡은 1층짜리 양옥집은 주인집도 방 한 칸, 세 들어 사는 우리 집도 방 한 칸이었다. 사람들은 우리 집 마당을 지나쳐 동천강으로 다녔다. 한마디로 우리 집 마당은 동천강 둑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열린 골목, 누구나 오가는 곳. 그 담벼락 좁은 길가에 서너 송이의 맨드라미가 철마다 피었다. 나는 그 맨드라미를 좋아했다. 맨드라미가 꼭 융단 드레스를 걸친 공주 같았다.  


어느 날 언니, 오빠가 학교를 가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안에 있는데 갑자기 외로움이 쏟아져 들어왔다. 평상시에는 밖에 나가 개랑 놀기도 하고 골목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하는데 그날은 세상에 혼자가 된 것 같았다. 사람 소리가 나지 않는 침묵의 공간이 감당할 수 없이 외로웠다.  울음이 터졌다. 나는 바로 오지 않을 엄마를 부르며 방문을 열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 껌딱지였다. 그리고 엄마 젖가슴을 만지는 걸 너무나 좋아했다. 자면서 살금살금 엄마의 가슴으로 손을 짚어넣는다. 추운 겨울 옷을 들치면 잠들어 있던 엄마가 화들짝 놀라 깨어 야단을 쳤다.

"이제 그만 만져! 다 컸는데 언제까지 만질래!"

"알았어......." 그러면서 자꾸만 손이 갔다.

손이 가요. 손이 가. 자꾸만 손이 가~아이손 어른 손 자꾸만 손이 가~~ CF 광고 노래를 부르면서 엄마 눈치를 슬슬 보며 엄마 젖을 만지면 엄마는 기가 차 웃으면서 놔두기도 했다. 외가 쪽 전체에서도 내가 막내라 애기 짓한다고 언니 오빠들이 놀리고 자기들 노는데 잘 끼워주지 않으려고 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는 엄마를 사이에 두고 언니와 서로 내쪽을 향해 자라고 엄마를 볶았고 엄마는 막내인 내쪽을 보고 잘 때가 많았다. 


왜 유독 엄마에게 집착하고 떨어지지 않았을까?


"엄마는 은미 다섯 살만 되면 아빠랑 안 살고 나갈 거야." 

생각해보니 기억도 나기 전부터 종종 들었다던 엄마의 넋두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종종 그렇게 넋두리를 했다. 아빠에게 냉랭한 엄마, 딱딱한 집안 분위기는 본능적으로 엄마, 아빠 사이가 안 좋구나 느끼게 했다.  한숨처럼 다짐하는 말에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진짜 엄마가 가버릴까 봐 불안이 스며든 거다.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 어린 나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잘 놀다가도 마음 한편이 허허로워졌다.









점방에는 라면땅, 캐러멜, 사탕, 막대 하드 등 달콤하고 맛난 게 정말 많다. 

나는 라면땅이 먹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다. 언니도, 오빠도 학교에 갔다. 

너무 심심하다. 엄마는 돈을 줄 줄을 모른다. 사줄 줄도 모른다.

“이리 와 나랑 놀자” 

융단 같은 맨드라미가 손짓하며 나를 부른다. 

나는 놀 거리를 찾아 골목길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맨드라미를 들여다본다. 

꼬불꼬불, 보들보들, 복슬복슬. 덮으면 따뜻하겠다. 

드레스처럼 입으면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님이 될 것 같다. 나는 맨드라미에 묻는다.

“넌, 어디서 왔니? 재미없는 이곳이랑은 어울리지 않는걸.”

선명한 자줏빛은 주위의 무채색을 조금씩 물들인다. 내 몸도 조금씩 물들인다.

맨드라미가 대답한다.

 “사실은 말이야...”

 멀뚱한 표정의 어른이 골목을 지나간다.

 “쉿!”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댄다. 우리는 아무도 몰래 비밀을 공유한다.  



맨드라미는 내게 소환 버튼이다. 유년시절 중 가장 행복한 기억이 많은 곳, 울산시 동동 347번지. 맨드라미를 떠올리면 맨드라미가 핀 골목과 소박한 집과 마당이 떠오른다. 모래밭에서 놀았던 동천강과 학교를 넘어 다녔던 산이 떠오른다. 오며 가며 마주치던 맨드라미를 보며 행복한 상상놀이를 했다. 


지금도 나는 길을 가다 우연히 맨드라미를 발견하면 걸음이 멈추며 순식간에 좁은 골목에서 맨드라미를 보며 놀았던 6살 아이로 돌아간다. 




<엄마의 이름 앞 이야기>

1. 시작

https://brunch.co.kr/@miyatoon/20

2. 프롤로그-영웅 영숙이

https://brunch.co.kr/@miyatoon/37

3. 우리 영숙이는 선생님 시킬 거라......

https://brunch.co.kr/@miyatoon/38

4.호랭이는 뭐하나 저 간나 안 물어가고!

 https://brunch.co.kr/@miyatoon/41

5. 와야 국민학교

https://brunch.co.kr/@miyatoon/43

6. 뽕 따러 가세

https://brunch.co.kr/@miyatoon/44

7. 남의 집 살이

https://brunch.co.kr/@miyatoon/45

8. 진모 엄마는 키가 시집가서 컸어.

https://brunch.co.kr/@miyatoon/46

9. 내 살림과 아이들

https://brunch.co.kr/@miyatoon/47

10. 도시로 떠나다

https://brunch.co.kr/@miyatoon/48

11. 어두운 터널 속에서 

https://brunch.co.kr/@miyatoon/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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