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 완주기 10] 마무리 셀프 인터뷰
거의 두 달이 걸려서 서울 둘레길 스탬프 투어를 완주했다. 이 마지막글을 쓰려고 브런치를 열었는데, 가슴이 벅차오르고 난리 났다. 아, 진심으로 자랑스럽다. 시작할 때 터무니없이 허약했던 걸 생각하면 내 수준에선 힘든 여정이었다.
체력이 약한 사람을 위해 세부코스를 나눠놓았는데 그 세부코스 하나 걷는 것도 처음엔 힘들어서 드러누울 지경. 오랜 좌식생활로 몸이 틀어져 있던 탓인지, 한쪽 고관절에서 소리가 나고 발에 물집이 잡히고 양쪽 종아리에 짝짝이로 알이 배이는 등 저질체력과 운동부족의 폐해가 매 순간 드러났다. 집에서 일하다가 허리가 나가는 사고가 있어서 허리 복대를 하고 걸은 날도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더니 시간이 갈수록 체력이 늘고 점점 덜 힘들어지는 걸 느끼면서 많이 기뻤다. 지금은 다리가 울퉁불퉁 튼튼 근육질 다리가 되었다.
브런치에 기록을 남겨둔 덕분에 다시 읽어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좋았다. 아래 기록을 봐도 처음에는 헉헉대며 죽겠다고 하다가 점점 차분해지고 길을 평가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완주까지의 여정을 걸어갔던 순으로 정리한 브런치 링크
-> 시작하며 / 3코스 / 4코스 / 6코스 / 5코스 / 7코스 / 2코스 /1코스 / 8코스
서울 둘레길은 첫 트레일 도전이었기 때문에 애틋하고 인상이었다. 그래서 어디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딱히 인터뷰 요청이 없어서 완주기념 셀프 가상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Q. 혼자 걸었다고 들었는데?
A. 모든 길을 혼자 걸었다. 동행이 있었다면 오히려 완주가 힘들었을 것. 초반엔 특히 남들만큼 속도가 나지 않아서 자신만의 템포를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여자 혼자 다니는 거다 보니 인적이 너무 드문 길은 약간 무서운가 싶을 때도 있었는데, 심리적인 거라 금방 익숙해졌다. 서울 둘레길은 워낙 도심에서 가깝고 전화와 GPS도 잘 터져서 크게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둘레길은 혼자 걷지 않는 게 권장되는 모양이다. 이건 서울 둘레길만이 아니라 대부분 트레일이 공통적으로 안내하는 내용인 것 같더라.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안전한 트레일 코스가 서울 도심 코스를 제외하면 서울 둘레길이 아닐까 싶다. 기상상황, 일몰시간, 본인의 체력 상태 등을 고려하여 코스만 충실히 따라가면 특별한 문제없을 것으로 보인다.
Q. 혼자 다니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면?
A. 처음에 잘 몰라서 물이나 간식을 잘 챙기지 않고, 기상과 일몰시간을 신경 쓰지 않았다가 좀 곤란한 상황이 있었다. 아마 봉산 코스였을텐데, 코스가 끝나갈 무렵 체력이 바닥났고 목도 말랐다. 좀 쉬다가 가면 괜찮을 것 같은데 산속에서 해가 지고 입산 제한시간이 다가오자 지체할 수가 없어서 쉬지 않고 무리하게 갔다. 내리막 흙길에 미끄러질 뻔하고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 등산족들이 새벽부터 부산 떠는 이유가 있구나, 하고. 트레일 코스라고 우습게 보지 말고 준비할 건 준비해서 가자 다짐했다.
한적한 코스라 혼자 가기 망설여진다면 주말 낮에 가기를 권한다. 둘레길도 주말에 복잡하고 주중에 한적한 경향이 있다.
Q. 총 몇 회가 걸렸는지?
A. 총 8코스지만 세부코스는 총 21개인데, 세어보니 총 18회 걸었던 것 같다. 북한산 구간에서 비도 쏟아지고 스탬프도 놓치고 해서 횟수가 늘어났다. 평소에 운동과 등산을 하는 사람이라 서면 10~11회 정도로 완주할 수 있을 것. 거주지가 서울이 아니거나 서울의 한쪽에 치우쳐있다면 코스 시작점과 끝 지점을 오가는데 드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는 걸 계산해야 한다.
Q. 완주 후 인증서도 받았다고 들었다.
A. 인증서에도 우여곡절이 있다. 마지막 스탬프를 못 찍고 지나친 바람에 그 먼길을 며칠 후 다시 가서 스탬프도 찍고 인증서를 받으러 지원센터에 갔다. 그런데 인증서 발행이 바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서울시장 유고 때문에 서식을 다시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주소 적고 집에 가서 기다리면 일이 주 내로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서울시장 사태에 여기까지 영향을 미칠 줄이야. 당장 인증서를 받아서 브런치에 마지막글을 올리려던 계획이 틀어져서 좀 섭섭했다. 그래도 지원센터분들이 친절히 설명해주셨고, 우편물도 잘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인증서가 그럴듯한 데다가 금박도 박혀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학창 시절 받던 상장받은 느낌이다.
Q. 스탬프북 완성에 애로사항은 없었나?
A. 총 28개의 스탬프를 찍어야 했다. 처음에는 스탬프를 물리적으로 찍기 어려울 때를 대비해서 앱을 병행하려 했는데, 아이폰은 업데이트가 안 되어서 쓸 수 없다길래 실망스러웠다. 그 경우엔 스탬프 옆에서 인증 셀카를 찍어가면 된다고 해서 예비로 인증숏도 찍어두었다. 하지만 막상 다녀보니 스탬프 관리가 잘 되어 있고 가는 데마다 문제없이 찍혔다. 스탬프 찍는 곳도 큰 빨간 우체통이다 보니 찾기 어렵지 않았다.
Q. 코로나 시대인데, 마스크는 늘 착용했는지?
A. 도심 공원이나 강변길에서는 당연히 착용했다. 하지만 인적이 없는 산길에서는 벗고 다니기도 했다. 한 시간에 한 명도 만나지 않는 길이 있다. 진짜 심할 정도로 길에 사람이 없는 날도 있었다. 이런 날은 만나도 보통 혼자 다시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저 멀리 30미터 앞에 사람이 보이면 그제야 서로 마스크를 쓰고 지나치곤 했다. 그런데 아무리 덴탈 마스크라도 땀을 흘리다 보면 흠뻑 젖고, 오염되며, 습기가 차서 필터가 제 역할을 못하는 기분이었다. 틈틈이 새 마스크로 교체하느라 하루에 두세 개는 쓴 것 같다.
Q. 길 찾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A. 서울 둘레길은 관리도 정비도 잘 되어있는 트레일 코스다. 곳곳에 이정표가 있다. 산에서 주황색 리본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서울을 한 바퀴로 연결하려니 산책길이 아닌 도심 구역과 마을길도 지나다 보니 생각보다 헷갈리는 곳들이 많다. 한 번 길을 놓치면 골치 아파진다. GPS앱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다녔다. 보조배터리가 없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경우가 한 번 있었는데 무서웠다. 원래도 길치라 집에 못 돌아갈까 봐.
Q. 둘레길 도전에 좋은 시기가 있을지?
A. 계절을 선택할 수 있다면 꼭 봄을 권하고 싶다. 온갖 꽃들이 만발한 길을 걸을 수 있다. 정말 너무 좋았다. 본격적인 여름이 되자 더워서 금세 땀투성이가 되었고 무엇보다 비와 습기가 힘들었다. 땀에 절여진 상태에서 전철이나 버스를 타는 것도 좀 민망한 일이었다.
Q. 걷다가 인상 깊은 일이 있었다면?
A. 어느 날 스탬프를 찍고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산책하다 나를 보고 말을 걸었다. 평소에 산길에 있는 그 빨간 우체통이 뭔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거 왜 찍냐고 물어보시는 거다. "그냥 재미있어서요. 다 찍으면 인증서 줘요"라고 하니 세상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어디서 왔는지 물어봤다. 그거 하나 찍으려고, 그게 재미있어서 멀리서 여기까지 왔다니 신기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신들도 언젠가 해봐야겠다고 수군거리며 가셨다. 그분들도 스탬프의 기쁨의 발견하시길 바란다.
Q. 향후 계획은?
서울 둘레길 완주에 자신감을 얻어, 그 사이 북한산 둘레길(73km), 해파랑길 부산 구간(68km)도 연이어 완보했다. 은평 둘레길, 송파 둘레길 같은 서울지역 주요 둘레길을 틈틈이 하나씩 진행할 예정이다. 내년까지 제주올레길(425km, 26개 코스)을 기회 될 때마다 걷고, 동해안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 전체(750km, 50개 코스)도 몇 년 내로 완주하고 싶은 희망이 생겼다.
브런치에 정리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별 거 아니지만 이게 정리하는 게 보통일이 아니더라. 서울 둘레길은 다 정리했지만, 둘레길 이후의 길들은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북한산 둘레길만 2개 포스팅으로 간신히 정리했고 다른 길들은 어떻게 할지 아직 고민 중이다.
마지막 스탬프를 찍는 순간을 기념차 동영상으로 남겼다. 이제 진짜 끝이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