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 이슈 / 새로운학교지원센터
교육자치와 학교
교육자치를 논의할 때 우리는 학교를 먼저 떠올립니다. 교육자치는 학교의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함이며, 학교 교육의 다양성과 개별성은 학교자치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 학교가 가지고 있던 타율과 획일의 문화 속에 그 개선된 모습을 교육자치, 학교자치를 지향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일반적으로 학교는 국가교육과정과 교육청의 지침을 받아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자 합니다. 교육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잘 짜인 절차에 따라 여러 사업과 활동을 연, 월, 주일 단위로 촘촘하게 배치합니다. 학교가 자유로운 상상력에 기초하기보다 안전하게 검증된 연간계획과 엄격한 교육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안정적이며, 효율적 학교운영으로 학교의 안정성을 높인다고 평가받지만, 학생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개별성에 대응하지 못하는 완고한 체계라고 비판받기도 합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선생님들은 자발적으로 학교를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정책적으로 혁신학교를 추진하였으며, 제도적으로 교육자치를 추진해 왔습니다.
국가 주도의 교육정책이 이루지 못한 성과를 교원의 자발적인 학교혁신 운동으로 시작된 새로운 학교 운동이 이뤄낸 것을 보며, 교육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실현하는 것은 교육자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변화를 추동하는 교육자치는 학교를 통해서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의 자치는 학교 교육의 주체들이 실질적 권한을 갖고 참여하여 소통하고 협력하며 교육 운영과 관련된 일을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학교는 다양한 연령층의 교사, 학생, 학부모와 행정업무를 하는 직원, 한시적인 지원을 하는 강사를 포함하는 복잡한 구성체입니다. 의사결정 구조의 민주적 운영이라는 선언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가 있습니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서로 얽혀 상호작용하고 있는 생태계입니다. 권한을 배분해서 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자율적으로 운영된다고 해서 학교 교육 활동이 상상의 플랫폼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혹시 획일과 타율의 문화에 반하는 ‘자율’을 ‘선(善)’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학교민주주의(학교자치) : “단위학교가 학교 교육 운영에 관한 권한을 갖고, 구성원들이 학교의 고유한 교육과정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평가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며,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 (International Conference for Innovation in Korean Education, 2017)”
협력과 공유의 네트워크
미래사회는 구성원들의 자치와 분권, 그리고 자율을 전제조건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교사들이 교육과정과 수업 그리고 평가에서 지금보다 훨씬 확대된 자율성을 가질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그러면서도 교육의 궁극적 목표인 인간의 좋은 성장을 돕는 것에 벗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학생들이 지식을 능동적으로 구성하고, 자신 삶의 주인이 되며, 살아가는 세상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으며, 미래의 경제적 요구에 부합되는 창조적 역량을 갖추게 할 수 있을까요? 교육자치를 추구하는 목적은 혁신 교육의 비전과 교육자치를 수렴하여 더 좋은 학교를 지향하는 협력과 공유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있습니다. 이에 학교 자율화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학교자치를 만들어가는 구체적 방안을 탐색해보고자 합니다.
1995년 교육개혁으로 학교 자율 경영이 학교 운영과 교육행정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안되고 실천된 이후 이십여 년이 경과 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교육 현장에 스며든 타율과 획일 문화를 타파하려 한 것은 1995년 문민정부를 목전에 둔 교육계의 한결같은 소망이었습니다. ‘자율’은 타율과 획일의 대척점에서 새로운 단계의 교육으로의 길을 열어줄 규범적 지향이 되었습니다. 학교 자율 경영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았지만, 그 비판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교육 관계자의 폭넓은 공감을 확보하면서 지금의 교육자치, 학교자치에 대한 논의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학교 자율 경영 정책은 교육계의 지향과 경제계의 논리, 외국의 모형이 결합하면서 등장한 정책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지만, 촛불 시민 혁명과 문재인 정부에서도 큰 틀의 변화 없이 학교 자율 경영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것은 이 정책에 대한 공감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교 자율화 정책의 현실
이제 자율화 정책의 목표가 불분명해졌습니다. 경제계는 규제 완화로 다수 교육 수요자의 이익 또는 효용 총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공리주의적인 이유로 자율화 정책을 지지하였습니다. 교육계는 ‘자율은 곧 선’이라는 도식, 또는 ‘교육의 목표는 자율적 인간 양성’이라는 오래된 지향으로 자율 정책의 목표를 대체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육개혁에 대한 공리주의적 사고는 정치‧경제적 분석을 결여했다는 점과 교육계의 경우 ‘자율화 정책’과 교육 목적으로서의 ‘자율’을 근거 없이 등치 시켰다는 점에서 소박하거나 순진하거나 현실을 오도할 수 있는 인식이었습니다. 교사 집단은 학내 민주주의를 확립하여 교사들의 권한을 확대할 때 참여가 진작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책무성 정책이나 재정적 유인을 앞세운 경제계의 개혁 기제가 일방적으로 학교에 도입되었습니다. 이러한 학교 자율화 정책은 외려 학교 동형화, 외부와의 단절, 학교 간 경쟁을 유발했으며, 구성원들은 학교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더욱 수동적인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인식 아래 학교현장에서 요구한 학교자치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혁신학교의 운영으로 민주적인 학교 시스템이 정착되어있는 학교에서는 인력, 행정적 지원을 요구했습니다. 의사소통 구조의 민주성을 확보하지 못한 학교에서는 교무회의의 의결권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각자 처한 형편에 따라 학교자치에 대한 해석이 달랐습니다. 교육력 성장을 위한 학교자치의 조건으로 행정업무의 경감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수업 이외의 필수 교육 활동도 제외해달라는 이중적인 사고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학교예산의 규제가 강한 원인을 학교장의 자의적 운영에 대한 견제로 해석하여 더 꼼꼼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고, 예산 활용의 교육적 규범에 대하여 자율성 훼손으로 학교장의 자율권 강화를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자치의 권한과 책임은 사회적 윤리
자치의 권한과 책임은 교육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신념의 체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자치의 전제는 민주적 학교문화를 만드는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교사입니다. 연구하는 전문적 학습공동체가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협의와 토론이 일상화된 학교에서 자치는 꽃을 피울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학교 혁신 흐름에서도 학교가 더 많이 민주적일 때 집단 지성이 발휘되고, 소통과 협력이 교육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험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교사의 직무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는 민주적 협의 문화이며, 혁신학교의 민주적·협력적 학교문화가 학교교육 활동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사는 연구 보고서를 읽거나 강연을 듣거나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배울 수도 있지만 진정한 배움과 성장은 단위학교에서 교사들끼리 서로 관찰하고 경청하고 대화하면서 가장 많이 배우게 됩니다. 변화는 지식을 보급하거나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학교자치는 민주적인 집단 지성을 통해 구현되며, 지속가능성은 ‘배움의 네트워킹(networking of learning)’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대규모로 동원하는 교사연수나 계몽적인 집합 연수는 변화를 유발하거나 전파하지 못합니다. 외형적 자율화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학교자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진정한 변화는 서로 배우는 자생적 네트워크를 통해 일어납니다. 교육자치, 학교자치는 이와 같은 자생적 배움의 네트워킹이 학교 안 문화로 형성되는 조직체계, 학교 간 공유체계로 확대할 방안이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속가능한 학교혁신의 정책 추진 방향
학교 자율화, 권한 분배, 학교자치의 정책 흐름과 달리 학교 교육에 대한 결정 권한이 상향 편중되어 있고 관행화되어 있어 법령상 권한이 위임되어 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앙집권적 규제 폐지와 함께 학교의 다양한 상황에 맞추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교육 거버넌스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학교는 학습방법을 서로 공유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조직이어야 합니다. 학교역량 강화 역시 성과 관리와 장학에 의존하기보다 학교 구성원의 학습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는 ‘학습하는 조직’으로서의 학습조직화(learning organization)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학교의 상황을 살펴보면 교원들은 개인적으로는 학습이 매우 잘 이루어지고 있는데 팀 수준 또는 학교 조직 수준의 시스템적인 학습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많은 지적 역량이 암묵지의 형태로 개인에게 체화되어 존재한다면 전문성이 다른 사람에게 공유되거나, 팀 학습. 조직 학습을 통한 학교역량으로 축적되거나 학교 전통으로 전수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학교 자율화가 단지 교사 자치나 개인 교사의 교수‧학습의 자율성을 넘어 전문학습공동체로 조직화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의 학교혁신 정책은 학교를 단위로 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앞으로는 학교 단위를 넘어 지역 단위, 교육생태계 단위로의 교육개혁 정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위학교의 학습공동체 활성화는 물론 이를 넘어 교사 간, 학교 간, 지역 간, 더 나아가 다른 조직과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지역과 교육생태계의 혁신을 이끌 수 있는 다원적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교육자치, 학교자치 정책은 단위학교가 스스로 알아서 자율 경영에 대한 책임을 가지라는 것만이 아닙니다. 교육청에서 모든 것을 세부적으로 관리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아래로부터의 학교변화를 형성하고, 위로부터는 방향성을 안내받으면서 변화를 증진하기 위한 민주적이고 지속가능한 경로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학교변화 추진, 위로부터의 방향성의 안내, 네트워크의 확대가 모두 결합한 중간으로부터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별학교 중심의 외부전문가 지원 방식에서 구성원의 참여와 협력, 공유의 문화와 체제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개방과 협력을 통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학교 개선을 위한 학교네트워크 정책’을 연구해야 합니다. 이 정책은 학교 안, 학교 밖, 학교 간의 학습공동체 형성을 통해 집단역량을 높이고자 한 것입니다. ‘학교 개선을 위한 학교 네트워크 정책’이 실질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교육지원청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고 동료개발 중심의 장학제도 개선, 학교 조직의 학습 조직화, 학교 교육력 향상을 위한 정책의 연계성과 일관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화를 이끌어가는 방법, 학교 간 협력과 연대
변화는 오랜 시간 관계를 맺으며 지원할 때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일회적 장학이 아니라 장기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성장과 지원체제를 갖추어야 합니다. 교사에 대한 결핍 모형과 외부 자극에 의존하기보다 학교는 내부 구성원들의 집단 지성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교사에 대한 장학을 넘어 교사들이 자신의 학급과 교과를 넘어 소통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학교 공동체가 형성되고, 이 공동체가 공동으로 실천을 기획하고 도모할 수 있도록 조직을 세우고 지원해야 합니다.
또한 학교 간 협력과 연대를 촉진하는 활동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 구성원들이 학교 울타리를 넘어 지역 차원에서 학교의 실천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야 합니다. 학교가 서로 협력하여 공동의 문제 해결과 실천할 수 사업을 기획하는 능력이 중요하겠습니다.
이제 새로운 학교의 지속가능성은 일반화 모형보다 우선 지역적 공간 차원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학교는 주기적인 이동이 제도화된 유일한 체제로서 개별 교사의 문화와 가치와 인식과 경험이 학교 단위에서는 집단적인 형태로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역 차원의 문화를 변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역 차원의 민주주의, 마을교육공동체, 새로운학교의 연계 등은 교사들이 학교문화와 가치의 일상적 실현으로 구체화 되기 위해서는 지역 단위의 혁신설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육혁신지구처럼 특정 지역 단위에서 실시되는 지역도 있겠지만 새로운 학교문화를 만들어가는 교사와 학교의 자발적 커뮤니티가 뿌리내리는 지역도 있을 것입니다.
다원적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과 교육생태계의 혁신이 이루어지려면 이를 매개할 수 있는 교육지원청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지원청은 학교자율화정책에 의해 성과 중심, 과업 중심, 선별적 지원 기제의 체제와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이를 학교 간 개방과 협력을 통한 수평적 지역 네트워킹의 활성화, 자발적 배움의 네트워킹과 다른 조직과의 연대와 협력을 이끌 수 있는 개방적, 공유적 기제가 작동하는 체제와 역할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혁신학교의 비전과 교육자치의 과제와 맥을 같이할 것입니다.
들어가는 글_새넷 2019 summer
1. 시론
2. 포럼 & 이슈
3. 특집
4. 전국 NET
5.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6. 티처뷰_teacherview
2019년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