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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Oct 22. 2020

새 교원단체, 이야기 듣는 구조에서 나누는 구조로

시론 / 한상훈_새로운학교네트워크 이사장, 서전고등학교 교장 

1980년대 한국 사회 격동기에 교육민주화선언을 출발로 하여 교육운동의 맹아가 싹트고 있을 때, 일본의 사회파 작가로 일컬어지는 아시카와 다쓰조가 쓴 교육소설 ‘인간의 벽’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일본의 전후 상황에서 시골의 평범한 한 여교사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사는 누구인가’를 고민하고 성찰하며 전후 일본의 평화교육 운동을 이끌어간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의 활동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소설이었다. 당시 이 책은 한국사회의 권위적 체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대중적인 교육운동을 꿈꾸었던 교사 대부분의 필독서이기도 했다. 특히 그 소설에서 군국주의 교육에서 교사 통제의 장치로 남아있던 근무평정제도를 폐지하기 위하여 일교조가 파업까지 감행했던 소설 속 장면이 나에게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소설에서도 상세히 묘사되었던 일교조의 ‘연구집회’를 직접 접하고 더 큰 감동을 받았다. 2000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합법화와 함께 조합원들의 연구·연수와 교육활동 지원 책임자인 참교육실천위원장을 맡게 된 나에게 합법화된 교원단체의 위상에 맞는 연구대회를 기획하는 큰 임무가 주어졌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 연구대회의 모습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들로 논란을 벌이다가 1년을 허송세월하게 되었다. 당시의 논쟁은 연구대회의 목적과 관련되어 있었는데 순수한 전문성 향상을 목표로 하느냐 아니면 당시의 인사 제도와 같은 합법적 공간을 활용한 회원의 확대에 목표를 두느냐 정도의 수준에서 이루어졌는데 책임자였던 나조차도 어떤 확실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그러던 터에 국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던 선배 교사가 국제교원노조연맹(EI)에서 교육노동의 특수성을 반영한 조직 활동을 가장 모범적으로 하는 단체로 알려진 일교조에서 연구대회가 곧 열리는데 한 번 가보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권하였다.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던 터라 주저 없이 비행기를 타고 당시 행사가 개최되는 도쿄를 향하게 되었다.


내가 참가하게 된 행사는 일교조가 매년 개최하는 연구대회로 정식 행사명은 ‘제50차 전국연구집회’였다. 여기서 우선 놀라게 된 것은 참가자 1만여 명 중 절반은 발표자이고 절반은 토론자였는데 그해의 토론자는 다음 해에 발표할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규모도 규모지만 매년 발표하는 사람이 중복되지 않고 절반씩 바뀐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다. 나는 이러한 교육 활동 나눔의 방식이 어떻게 가늠조차 되지 않았고, 너무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특별 인터뷰를 부탁하였고, 우리나라의 시·도에 해당하는 도·도·부·현과 그 산하 기초단위의 연구실천 활동 지원 담당자 다섯 명과 꽤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꼼꼼하게 이들의 활동을 취재하였다. 


이 자리에서 듣게 된 이야기는 교육운동의 초입에 들어선 우리로서는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었다. 이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일교조의 구성원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교과나 관심 영역에 따라 다양한 네트워크에 촘촘하게 연결되고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작은 기초단위 —우리의 시·군·구에 해당하는 시·정·촌을 말한다―이라 하더라도 대개 20여 개 이상의 교과별, 주제별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고, 구성원 대부분이 이러한 소통구조에서 일상적으로 자신의 교육 활동을 나누고 공유하는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들은 매년 자신이 소속된 네트워크에서 플랫폼 담당자인 분과장의 지원을 받아 해마다 일본 사회에서 제기되는 교육 의제를 지역의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여 자발적으로 주제를 정한다. 그리고 이 주제를 중심으로 수업 연구를 하고 그해 발표자의 수업 연구 내용을 함께 검토하는 워크숍이나 토론회를 거쳐 연말에 총회 형식의 ‘연구집회’를 개최하고 있었다. 마치 학교에서 모든 교사가 연구수업을 하듯이 교원단체 내에서 교대로 모든 회원 교사들이 ‘자발적인 연구수업’을 하고 있었다. 회원 개개인의 관심과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네트워크에서 이러한 활동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그 역량이 축적되면서 전문분야별 정책 연구와 연수의 기능도 일교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교육청에 의해 많은 부분이 주도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도 달랐다. 사실 나는 당시 일교조가 두 조직으로 분열되기 전에 조직률이 80%에 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었는데 이러한 일상적인 연구실천 활동 시스템을 보면서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활동 방식이야말로 자주성을 표방하는 교원단체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일본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에 대한 우려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아이들을 다시 전쟁터로 보내지 말자’라는 평화교육이 일교조가 추구하는 교육이념이고 이러한 정신을 연구실천 활동에 녹여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일교조는 일본 우익과 군국주의 세력에게 최대의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교조의 가장 큰 행사인 연구집회는 ‘평화교육이 사회적으로 크게 의제화되는 행사’가 되었고, 늘 군국주의화를 노리는 일본 우익 세력의 최대의 표적이 되어 왔다. 당시 내가 참관했던 이 행사도 일본 극우 세력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려고 장소를 공개하지 못하고 비밀스럽게 모여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교원단체를 고민하고 있다. 전교조를 중심으로 한 지난 30년 우리 교육운동의 역사는 불행하게도 확대 재생산의 길을 걷지 못하고 사회적, 교육적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축소되어왔다. 이는 우리의 교육운동이 교사 노동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전문적 교육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한국 사회의 특별한 정치적 조건으로 많은 진보교육감이 탄생하였고, 학교혁신 운동을 중심으로 새넷의 활동이 전문적 역량을 크게 발휘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역량을 바탕으로 교육운동의 지평을 보다 확대해 나가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 새넷의 활동 비전으로는 더 많은 선생님을 이 흐름에 동참시키기에는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에 대한 요구를 가진 선생님들이 새로운 학교 운동의 흐름에 함께 하기 위해서는 일교조의 사례처럼 더 대중적 관점과 활동 방식이 필요할 것 같다. 새넷은 그동안 단위 학교 전체를 혁신하는 높은 수준의 활동을 추구하다 보니 일반 회원들이 쉽게 참여하기 힘들었고 회원의 확대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즉 별도의 참여 가능한 네트워크가 없거나 협소하였기 때문에 일부의 회원들만 중앙의 허브와 지역 모임에서 마련한 연수에 참여하고, 참여하지 못하는 회원들은 자료를 받아보는 정도의 활동에 머물러 왔다. 


그렇다면 앞으로 만들어갈 교원단체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 한마디로 말하면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새로운 교원단체는 ‘누구는 이야기하고 누구는 그 이야기를 듣는 구조’에서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참여하고 이를 나누는 구조’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새로운 교원단체에는 회원 개개인의 관심과 요구에 따라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별 소통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우리 교사들은 ‘누구나 전문가’이므로 이 구조 속에서 개개인의 창의적 교육 실천을 함께 공유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공동체적 성장을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교사들의 전문적 활동과 관련하여 그 운동성이 미약해지고 상당 부분이 제도에 포섭되어 자주성이 크게 약화한 현실을 타개하려면 이와 같은 관점의 전환이 너무도 절실하다. 그런데 사실 이런 제안은 우리 교육운동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오래된 미래’가 된 고민으로 때늦은 감이 있다.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 새넷의 선생님들에게는 이러한 시도가 결코 낯설지 않은 흥미진진한 도전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20 가을호 목차+


들어가는 글_2020 새넷 가을호


1. 시론


2. 포럼 & 이슈


3. 전국 NET


4.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5. 티처뷰_teach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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