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 장소연_서전고등학교 교사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 이수경, 이보림_ 홍동초 교사
나는 소망한다, 정년퇴직을! 나는 소망한다, 정년퇴직을!
-50대 국어교사가 온라인 수업에서 살아남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하며 지구촌이 전쟁터로 변했다. 학교도 전쟁터가 되었다. 적어도 50대 국어교사인 나에겐 정말로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선 전쟁이었다.
원래 태생부터 기계나 전자제품과 친하지 않다. 좋아하질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이건 꼭 있어야 하는 거라고, 이거 없는 집 없다고, 안 쓰면 후회한다고 강요하다시피 해야 마지못해 산다. 옷 입는 감각도 유행과 거리가 멀다. 대신 한번 사면 오래 쓴다. 고장 날 때까지 쓴다. 결혼할 때 산 냉장고, 세탁기도 20년을 훌쩍 넘겨 썼고, 침대도 26년만인 작년에 바꿨다. 휴대전화도 고장 나기 전엔 바꾸지 않는다. 학교도 바뀌는 게 싫어 지난 학교에선 무려 8년을 근무했다. 지루하거나 지겹지 않았다. 게으르다고 해야 하나 한결같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나의 성격은 사람도 오래 알던 사람이 좋고, 물건도 쓰던 것이 좋다. 그래서 정년퇴직이 가장 큰 소망이다. 지금까지 30년을 교사로 살았듯이 앞으로도 계속 교사로 살고 싶다. 맘 같아서는 죽을 때까지 선생 노릇을 하고 싶지만 62세가 되면 퇴직을 해야 하니, 그때까지 주변 선생님들께 폐 끼치지 않고 아이들한테 미움받지 않으며 학교 생활하다 정년퇴직을 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지금까지는 수업이나 업무나 아이들과의 관계나 나름 꽤 괜찮았다. 큰 공은 없었어도 큰 과도 없이, 좋은 선생님들, 착한 아이들과 함께 즐겁고 보람 있는 학교생활을 해왔다.
그 런 데,
온라인 수업을 하란다. 청천벽력!!!
나의 삶을, 일상을, 일을 ‘코로나 19’가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코로나라는 듣보잡은 발 들이고 싶지 않은 온라인의 세계로 나를 밀어 넣었다.
온라인 개학 며칠 전 - “온라인 개학은 어떻게 하는 겨”라고 할 때 - 전 교사가 모였다. 언제 준비했는지 젊은 교사가 나와 온라인 수업은 무엇인지, 어떤 플랫폼들이 있는지 각각의 장단점을 설명해 주었다. 기계치인 나는 뭔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우선 EBS 온라인 클래스에 가입하고 – EBS는 고3 수능 수업 준비할 때 들어가 봐서 좀 익숙했다. - 학년 부장들이 만든 방에 들어가 하라는 대로 방을 만들었다. 이 방에 EBS 강사들이 하는 수업 영상을 복붙하면 된단다. 그럼 이게 나의 수업인가, 이 강사들의 수업인가? 찝찝하다.
다음 날, 소통 메시지가 왔다. 쌍방향 수업 방법을 알려 줄 테니 보내 주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설치하고 오란다. 열어 보니 온통 영어로 뭐라 뭐라 쓰여 있다. 둘 중에 고르는 것도 있다. 뭘 눌러야 하지? 자신이 없어 옆자리 젊은 유 선생한테 “자긴 다운 다 받았어? 잘 돼?”하니 싹싹한 유 선생, “부장님, 제가 다운 받아 드릴게요. 시간 좀 걸려요.” 한다. 우와, 무지 고맙다.
이튿날, 또 모였다. 이번엔 노트북을 갖고 모이란다. 어제 다운 받은 것을 활용해 생생한 쌍방향 수업을 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을 알려 준단다. 거꾸로 수업을 해봤거나 온라인 수업 경험이 있는 교사 몇몇이 모여 ‘원격수업지원팀’을 꾸렸단다. 모둠별로 그 선생들이 돌아다니며 알려주었다. 순서를 못 쫓아가서 뒤늦게 따라잡느라 진땀 뺐다. 그래도 몇 번의 고비를 넘기자 내 얼굴이 나오고 선생님들 얼굴이 나오고 목소리도 들렸다. 신기했다. 그런데 이렇게 50분간 20여 명의 아이들과 수업을 하라고? 판서는? 모둠 토의는? 내가 회의방도 만들어 아이들을 초대도 해야 해? 마뜩잖았다.
연수 듣느라 늦게 퇴근해 부랴부랴 저녁을 먹고 휴대전화를 보니 친구들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 2월에 명퇴할 걸 후회된다느니, 9월 명퇴를 신청해야겠다느니, 젊은 교사들한테 짐만 된다느니, 아이들이 나이 든 교사 더 싫어하겠다느니……. 난 친구들이나 동료들한테 늘 정년퇴직할 거라고 큰소리쳤었다. 그런데, 정년은 고사하고, 58세 명퇴도 불가능하다. 당장 올 1년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하다. 코로나 이전으로는 죽어도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데,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는 것보단 올 8월 명퇴를 준비하는 게 훨씬 쉬워보였다. 아, 정년퇴직 나의 오랜 꿈은 어떡하나…….
다음 날 아침, 카풀로 같이 출퇴근하는 2학년 부장 이 선생(40대)이 어제 배운 거보다 더 쉬운 게 있다며 시연할 테니 올라오란다. 2학년 교실에 아이들이 아닌 담임교사 예닐곱 명이 모여 있다. 평소 친목 모임과 교원 단체 밴드에 가입해 있었는데, 이 밴드를 이용하면 훨씬 더 편하단다. 밴드를 만드는 방법부터 가르쳐 주었다. 생각보단 쉬웠다. 강의식 수업도 하고, 학습 자료도 올리고, 과제용 양식도 올릴 수 있단다. 댓글로 과제도 올리라 하고, 질문도 올리라 하고. 무엇보다 카메라 방향만 바꾸면 칠판이나 교과서를 손쉽게 보여 줄 수 있단다. 교사는 애들 얼굴을 못 보는 대신, 아이들은 내 얼굴을 볼 수 있고 내가 말하는 중에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글을 올릴 수도 있단다. 무엇보다 수업 영상도 저장이 돼서 아이들이 두고두고 봐도 된다니, 언제 어디서나 공부할 수 있다는 온라인 수업의 장점이 바로 이거군. 와우! 괜찮은데!
그날 이후 출퇴근 차 안에선 이 선생의 밴드 직무연수가 이어졌다. 이 선생은 새롭게 추가된 기능을 알려 주었고, 난 연습해보며 어려운 점을 물었다. 가르쳐 준 대로 바로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로 해보며 무릎을 쳤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 이거야!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겠어. 밴드 만들고 수업 도우미에게 밴드 주소 알려 주라고 하면 되겠네. 수업은 휴대전화로 하고, 자료 탑재나 피드백은 노트북으로 하고. 자신 있게 라이브 밴드 수업에 도전했다. 15분~20분 라이브 수업을 한 후 올려놓은 영상이나 텍스트를 보고 과제를 해 올리고 하니, 오프라인 때보다 진도도 빨리 나갈 수 있고 영상 자료도 더 많이 제시할 수 있었다. 어랏, 온라인 수업이 장점이 있네.
가장 만들고 싶었던 모둠 채팅을 하던 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모둠별 채팅방을 만들어 한 권 읽기 토의를 하던 날, 아이들이 주고받은 모든 대화를 확인하며 이 방 저 방 옮겨 가며 들여다보고 ‘이 모둠은 토의를 아주 잘하네. 00이가 생각이 깊구나. **의 생각이 참신한데. 00이는 자냐, 왜 말이 없지?’ 등 참견을 했다. 난 그냥 모둠방을 순례하며 들여다보면 되었다. 모둠 채팅 내용은 저장도 되어 나중에 찬찬히 살펴보고 수행평가에 반영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누가 좋은 주제를 제안했는지, 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 한 명 한 명이 한 말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수업시간만으로 부족한 모둠 토의를 주말에도, 밤 11시에도 해 나를 감격스럽게 했다. 밤늦게까지 독서 토론을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참다운 공부는 이런 게 아닌가 싶어 뿌듯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1대 1 채팅으로 질문하는 아이들도 늘어 소통의 부족함을 채워갔다.
밴드로 수업에 자신감이 좀 붙자, 포기했던 줌에 도전하기로 했다. 수업은 밴드가 좋았지만 동아리 활동은 실시간 쌍방향이 가능한 줌이 효과적일 것 같았다. ‘원격수업지원팀’ 중 한 선생님께 찾아갔다. 내 휴대폰에 앱을 깔아 주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단계 한 단계 시범을 보여 주었다. 따라 하다 보니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자리로 와서 옆자리 유 선생을 줌 회의 방에 초대했다. 되었다. 노트북으로도 시도해 보았다. 유 선생의 도움으로 자료 공유까지 도전했다. 신세계였다. 집에 있는 아이들과 교실에 있는 아이들을 줌으로 한 공간에 모아 놓고 아이들에게 ‘가장 멋진 건축물’을 소개하게 했다. - 난 건축동아리 지도 교사다. - 줌은 보여 주고 발표하는 우리 동아리 활동에 안성맞춤이었다. 그 후 5~6명이 하는 방과후 수업도 줌으로 진행했다. 소수 학생과는 실시간 쌍방향이 가능한 줌이 좋았다. 학생들이 줌 기능을 잘 알고 있어 수월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 대부분이 실시간 수업을 하니 아이들은 매우 익숙하고 능숙했다. 명퇴 안 해도 되겠는데? 온라인 수업이 점점 편해졌다.
온라인 수업은 점점 볼거리, 읽을거리, 생각거리가 풍부한 국어 수업으로 발전했다. 같은 학년 같은 과목을 같이 가르치는 동료 선생님들 덕분이다. 1학년 두 분을 제외한 다섯 명이 2, 3학년을 걸쳐 수업했는데 이 다섯 교사가 수시로 만나 수업과 평가 계획을 같이 짜고, 함께 쓸 수업 도우미 밴드도 만들어 모든 자료를 공유했다. 밴드에 교과서 자료와 협의 내용도 올리고, 무엇보다 각자의 수업 밴드에 올릴 게시글과 수업 자료를 모두 올렸다. 링크 걸어 둔 영상 자료까지 모두 올려 주어 자료 제작 시간이나 영상 자료 찾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클릭 한 번만으로 내 수업 밴드에 공유하니 수업을 준비하는 수고가 정말 줄었다. 또한, 먼저 수업한 학생들의 결과물도 올려 주어 다른 반 학생들에게 샘플로 보여 주니 학생들이 그 반보다 더 잘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우기도 했다.
3월부터 현재까지 약 8개월 동안의 온-오프라인을 오가는 두 학년 1, 2학기 네 과목 수업을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창의적인 수업으로 채울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기능의 플랫폼 덕도 있지만, 순전히 우리 동료 선생님들의 협업과 공유 덕분이다. 새 단원을 나갈 때마다 함께 수업을 디자인하고, 부지런히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 올리고, 수업하며 부딪히는 문제들을 터놓고 얘기하고, 이런저런 꿀팁을 공유해 준 동료 선생님들 덕분에 온라인 수업이라는 높은 벽을 넘을 수 있었다.
코로나 19는 나를 명퇴의 절벽으로 몰아세웠지만, 든든한 동료 선생님들 덕분에 난 지금도 여전히 정년퇴직을 꿈꾼다.
* 서전고의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들어가는 글_2020 새넷 가을호
1. 시론
2. 포럼 & 이슈
3. 전국 NET
4.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5. 티처뷰_teacherview
-
2020 여름호
2020 3월 특별호
2019년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