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차 May 27. 2022

그렇게 고쳐가며 살고 있습니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 Ep.11

2020년 여름 무언가에 홀린 듯 처음 생각했던 예산 범위에서 1억이라는 큰돈을 초과하는 아파트를 덜컥 계약했고, 대출을 받아 내 이름으로 된 첫 집을 샀다.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조용한 경기도 우리 동네에도 영향을 미쳤고, 몇 주 만에 6천만 원이나 오른 집을 사는 바람에 인테리어 비용을 홀랑 날려 반셀프로 인테리어를 했고 그 과정에서 매일 저녁 맥주를 마시는 사람으로 변했었다.

그래도 깔끔해진 집에서 조금의 정이 들까 하는 사이 겨울을 앞두고 아파트 누수가 터졌고 내 눈에 핏줄도 함께 터졌다. 변호사 상담도 하고 허당 업체를 만나 집도 더욱 난장판이 되는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흘러갔다.

 

에어컨을 연결하던 날 기사님이 툭하고 던진 지나가는 한 마디 "베란다 쪽 샷시 코킹이 다 깨졌어요. 이거 새로 하셔야겠네요."를 귓등으로 들었던 나는 그다음 해 여름 동남아 여행에서 겪었던 스콜 같은 큰 바람과 함께 들이쳤던 소나기에 그 깨진 코킹 사이로 물이 들어와 거실 마룻바닥이 젖는 일을 겪어야 했다. 밝은 색의 예뻤던 마루는 샷시 라인을 따라 얼룩이 졌다. 그 해 겨울 보일러를 열심히 틀었더니 많이 말랐지만 이미 물을 잔뜩 먹은 나무는 여전히 보기 싫은 얼룩이 남아 있다. 물론 적응을 한 탓인지 평소에 잘 보이진 않는다. 언젠가는 누수로 얼룩진 바닥과 함께 마룻바닥 부분 교체를 진행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작년 여름 벌레에 시달리고는 방충망을 교체해야지 결심했었는데 날이 따뜻해지면서 늦기 전에 온 집의 방충망을 미세망충망으로 교체를 했다. 방충망 샷시의 털 교체까지 해서 총 16만 원을 지불했다.

오래된 보일러는 집수리할 때 교체하려고 했는데 잠시 미뤘더니 따듯한 물 조절이 힘들다. 뜨겁거나 차갑다. 그리고 오래된 보일러라 환경오염도 있을 것 같다. 가스비도 더 나오겠지? 이번 겨울이 오기 전에 교체를 해야겠다.

안방 베란다의 윈도우 시트를 거의 2년 동안 방치해놓았다. 올여름에는 사포질과 니스질을 하고 날이 좋은 가을날에 그곳에서 달과 별을 봐야지.


내 첫 집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인테리어 비용이 모자라서 덜 고쳐서 그런 걸까? 살면서 조금씩 고쳐가야 할 부분들이 보인다. 처음에 겪었던 당황, 분노, 슬픔, 후회의 감정은 사라지고 여기저기 내가 조금씩 고쳐가며 살고 있는 흔적들도 켜켜이 쌓여가며 이제 내 한 몸 온전히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저는 그렇게 고쳐가며 잘 살고 있습니다.



이전 글 보기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1 : 내 집 마련을 결심하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2 : 10년 산 동네서 집 구하기 - 나는 내 동네를 몰랐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3 : 내 집 마련의 결심은 우울증을 타고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4 : 포기했을 때 찾아온 나의 첫 집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5 : 덜컥 집은 계약했고, 이제 뭘 해야 하지?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6 : 겁 없는 셀프 인테리어 도전!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7 : 철거가 시작되었다. 이제 되돌아갈 길은 없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8 : 매일 저녁 빨간 눈으로 맥주를 마셨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9 : 핼러윈 데이의 악몽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10 : 그렇게 아파트 누수 전문가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를 생각하는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