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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Feb 08. 2018

오늘도 무사히

에스더 이야기 13

얼마 전 정현 선수가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4강까지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가 16강전에서 전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를 꺽은 후 카메라 앵글에 ‘캡틴, 보고 있나?”를 적었다. 그가 캡틴이라고 부른 사람은 김일순 전 삼성증권 감독이다. 2014년 12월 팀 해체 소식을 들었을 때 정현은 자책하였다. “우리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팀이 해체되었다.” 그때 김일순 감독이 말했다. “네(정현)가 진짜 잘하면 우리는 다시 뭉칠 수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을 정현은 진짜로 믿었던 모양이다. 그는 선수들끼리 좋은 성적을 내면 캡틴을 부르기로 하였다. 그는 호주 오픈 4강에 오르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 4강에서는 테니스 황제 페더러를 만나 분전하였지만, 안타깝게도 발바닥 부상으로 기권하였다. 테니스화 끈을 풀고 양말을 벗었을 때 테이핑한 왼발 발바닥이 보였다. 굳은살 위로 반복해서 잡힌 물집은 터졌고 발바닥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정현은 경기 후 말했다. “안 좋은 몸 상태로 계속 뛰어 팬들에게 제대로 된 경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게 더 안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기권했다. 너무 아팠고 걸을 수조차 없었다. 준결승에 올라 행복했고 특히 페더러를 만나 영광이었다.” 그는 인터뷰할 때마다 관중과 시청자의 마음을 만져주는 사이다 발언을 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정현선수처럼 성취를 이루고 인터뷰하면서 이 모든 것이 순수한 나의 노력과 재능 때문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재수 없을까? 사실 정현 선수의 노력과 재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자신의 공(功)을 옛적 자기를 키워준 스승에게, 그리고 뒤에서 격려하고 응원해준 팬들에게 돌리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가 만일 신실한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에스더 10장을 읽으면, 참으로 황당한 결론을 만난다. 짧은 3절 말씀에 모르드개가 얼마나 높아지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자리에 올라갔는지 쓰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돌린다는 기록이 눈에 띄지 않는다. 심지어 에스더에게도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 영광은 모르드개가 고스란히 다 받는다.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성경의 결론치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왜 이렇게 썼을까?


신명기 31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얼굴을 숨기겠다고 하셨다.(신31:16-18) 신명기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철저하게 숨어계신 성경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에스더서이다. 하나님의 이름, 역사, 섭리, 인도, 계시. 그 어느 것 하나 찾을 수 없는 성경이 에스더서이다. 그렇다면 에스더서는 어떻게 하여 정경에 포함되었을까? 정말 에스더서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신 것일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간섭하고 일하시는 것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홍해가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3년 가뭄 끝에 비가 오고, 죽은 자가 살아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고 말한다. 인간의 노력과 아무런 상관없이, 인간은 감히 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 간섭하셨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기적이 일어나야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일까? 자연법칙을 깨트리는 신비한 일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일까?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일 뒤에서 섭리하신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우상을 향해서는 졸고 있는가보다 깨우라고 조롱할 수 있지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감찰하시고,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세신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성장 과정에 함께 하셨다.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창21:20)

하나님은 종으로 팔려간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의 삶을 형통케 하였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창39:2)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니 그가 점점 강성해졌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5:10)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섭리하신다. 비록 나의 능력으로 일이 잘 풀리고, 나의 수고와 땀방울 때문에 열매 맺는 것으로 보이지만, 성경적인 눈으로 보면 그 모든 일 뒤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운전하는 분들이 '어린 사무엘' 그림을 매달아 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림은 18세기 초상화가로 유명한 죠수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 1723~1792)가 그다. 죠수아는 특별히 어린이 초상화를 자주 그렸는데 ‘어린 사무엘’은 1776년 그렸다. 하늘을 응시하면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기도를 들어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누가 그 그림에 “오늘도 무사히”라는 기도 제목을 붙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림과 글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평범한 하루의 일상을 지켜달라는 기도다.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지나가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은건가? 그렇지 않다. 무사함과 아무 일도 없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증거다. 에스더서는 문자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안 보이지만, 하나님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분명 역사하신다.


에스더에는 우연이 많이 등장한다.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오지 않아 궁중 역사를 읽는데 마침 모르드개가 왕을 구출한 이야기를 읽는다. 왕이 모르드개에게 무슨 상을 줄까 고민하는 데 마침 원수 하만이 찾아온다. 에스더서에는 기막힌 우연, 놀라운 우연, 거짓말 같은 우연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우연을 만나면 하나님이 특별히 섭리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연 속에서만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일상 속에서 더 많은 일을 하신다. 우리의 노력과 수고와 계획 속에서 더 많은 일을 하신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숨어 있는 하나님이 에스더 주제인듯싶지만, 에스더서는 마치 숨은 보물찾기하듯 일상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기가 주제이다.  


학자들은 에스더라는 이름이 페르시아어로서 별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티머시 빌(Timothy K. Beal, 1963~) 같은 학자는 조금 달리 해석한다. 에스더(רתסא)를 히브리어 동사 형태로 번역하면, 바로 “나는 숨길 것이다”이다. 즉 에스더는 단순히 페르시아 이름이 아니고 히브리어로서 에스더의 중심 주제인 ‘하나님의 숨으심’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자기 정체를 숨기고 페르시아에서 일하였다. 하나님도 자신을 숨기시고 디아스포라 유대에서 일하였다.


숨으신다고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자부하지 마라. 에스더서는 숨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자에게 의미 있는 책이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오늘 하루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형통하였노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되기를.

내 노력으로 이루었지만,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노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되기를.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에스더 이야기

1. 에스더를 새롭게 읽기

2. 아하수에로

3. 어떻게 살아야 할까?

4. 왜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무릎꿇지 않았나?

5. 아말렉의 정체

6.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의미

7. 세 여자

8. 확률적 착시

9. 변화를 향한 작은 몸부림

10. 우리 모두의 하나님

11. 폭력 사회에서 비폭력을

12. 하나님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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