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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Sep 18. 2023

사랑이라 믿었던 연민

Emotions 11. 연민 commiseratio

연민(commiseratio)이란
자신과 비슷하다고 우리가 상상하는 타인에게 일어난
해악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에티카> 스피노자



<연민> 타인에게 사랑이라는 착각을 만들 수도 있는 치명적인 함정

사랑은 함께 있을 때는 기쁨을, 반대로 떨어져 있을 때는 슬픔을 가져다주는 감정이다. 이에 반해 연민은 남의 불행을 먹고사는 서글픈 감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불행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에게 연민의 감정은 씻은 듯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결과론적 이야기이지만, 결국 연민을 계속 품고 있으려는 사람은 상대방이 계속 불행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도서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음악 & 뮤직비디오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_BIG Naughty(서동현) (feat.이수현 of AKMU)

널 사랑하지 않아_어반자카파

헤어지자 말해요_박재정

Candy_NCT Dream (원곡 H.O.T)




연민은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commiseratio는 동정과 연민을 의미한다. 우리가 혼선해서 사용하는 동정과 연민은 사실 다른 감정이다. 둘다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같지만, '연민'은 자부심과 우월감이 깔려 있고, '동정'은 '동등한 위치에서 공감하는 감정'이다. 자칫 거꾸로 이해하기 쉬운데, 말하자면 연민은 '내가 너보다 낫네'라는 비교의 감정이라면 , 동정은 '나도 그런 적 있어'라고 하는 위로의 감정이다.



약자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발생하는, 강자가 되었다는 자부심, 혹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존재감, 이것이야말로 연민의 감정 뒤에 숨겨진 이면의 정체다. 그렇지만 강자의 자부심은 오직 약자가 약자로서 계속 자신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까지만 유지되는 법. 이 점에서 연민의 주체는 연민의 대상만큼이나 약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 사랑의 감정은 어느 누가 약자이고 어느 누가 강자인 관계가 아니라 두 사람이 대등한 관계에 있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p131



음악칼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OST에 관한 글을 쓰면서 연민에 대해 좀더 세심하게 살펴 보게 되었다. 호의나 호감으로 시작하는 감정이 설렘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면 서로가 사랑이라 착각하기 쉬워진다. 물론 '괜찮아, 사랑이야'라고 한다면 다행이지만 우리가 호의와 호감을 구별하기 어려워 하듯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연민임을 뒤늦게 깨달을 수도 있다.





Big Naughty의 곡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에서 사랑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감정은 절규에 가깝다. 감정을 다 소진하기도 전에 헤어지는 연인의 아픔이 진하게 느껴진다. 사랑임을 알지만, 현실적인 벽으로 인해 헤어지는 커플과 달리, '사랑이라 믿었을 뿐', 수많은 사랑 이외의 감정들이 사랑인 척 한다. 48가지 감정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글을 써내려갈수록 감정도 사람도 모두 다 쉬운 게 아니구나 싶다.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_BIG Naughty(서동현) (feat.이수현 of AKMU)


[Verse 1]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어린 날의 추억일 뿐

추억이라 믿었던 것들은

오래 썩는 기억일 뿐

기억이라 믿었던 것들은

지금 너와 나의 기쁨

깊은 곳에서 숨 쉬는

불행들의 연료일 뿐


불행이라 믿었던 것들은

어린 날의 상처일 뿐

상처라 믿었던 것들은

새로운 살의 양분일 뿐

새살이라 믿었던 것들은

의미 없는 가죽일 뿐

그 살가죽을 뚫고 온 너를

사랑이라 믿었을 뿐


[Chorus]

길 잃었다

실없다

사랑에

길 잃었다

웃었다

누군가

웃는 바람에

길었다

질었다

굶주렸다

사랑 따위에

비웠다

지웠다

고작

너란 사람에

쉬웠다


[Verse 2]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어린 날의 미련일 뿐

미련이라 믿었던 것들은

피지 못한 필연일 뿐

필연이라 믿었던 것들은

지금 너와 나에 깃든

더 짙은 색으로 태어난

시련들의 시작일 뿐


시작이라 믿었던 것들은

끝의 예쁜 이름일 뿐

이름이라 믿었던 것들은

너의 작은 조각일 뿐

조각이라 믿었던 것들이

어쩌면 너의 전부

그 전부를 건넨 너를

사랑이라 믿었을 뿐


[Bridge]

사랑이라 믿을 때쯤에

넌 왜 불행에 불을 지피는데

상처라고 믿었었는데

넌 왜 새살이 날 용기를 주는데

미련이라 믿을 때쯤에

넌 왜 나타나 날 부추기는데

어젠 시작이라 믿었었는데 넌 왜

오늘의 끝엔 나를 밀어내는데


[Chorus] 반복




슈테판 츠바이크는 연민을 두 가지로 나눴다. 나약하고 감성적인 연민과 진정한 연민으로 말이다. 나약한 연민이 바로 자신과 상대에게 죄책감과 부담감 그리하여 초조함을 유발하는 감정이다. 이에 반해 진정한 연민은 진정한 사랑으로 발전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연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 중 하나인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은 그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가능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하며, 함께 고통을 나누는 대신 남의 고통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한다. 진정한 연민이란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인 연민으로, 이것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연민을 말한다.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감정이라는 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두 사람이 어떻게 관계를 유지해 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랑에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연민으로 시작했더라도, 끝까지 책임있는 태도로 마음을 줄 수 있다면, 이는 사랑이 될 수 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를 듣다가 문득 뮤직 비디오의 결말이 흥미로워졌다. 반지까지 끼워주고 안아주는 커플. 헌데 남자의 표정과 눈빛,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겉으로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확실하지만, 마지막 유승호의 눈빛 연기와 바 테이블에 앉은 여성의 하이힐이 발에 걸쳐 있는 상태가 왠지 의미심장하다. 뮤직비디오 해석을 두고 누리꾼들의 추리가 많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이 전 연인이었다거나 첫눈에 반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사랑이라 믿었던 관계들의 속내를 보여주는 아찔한 뮤직비디오가 아닐까.



널 사랑하지 않아_어반자카파 (Urban Zakapa)


[Verse1]

무슨 말을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개만 떨구는 나

그런 날 바라보는 너

그 어색한 침묵

널 사랑하지 않아


[Chorus]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 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Chorus] 반복



박재정의 '헤어지자 말해요'가 요즘 인기다. 이렇게 유심히 듣기는 나도 처음이다. 연민의 감정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쩌면 이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거라 생각된다. 사랑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다. 섣부르게 판단해도 안 되겠지만, 힘겨운 사랑에 진을 빼는 것도 비추. 헤어짐은 어쩌면 비움의 과정이 아닐까. '그댈 위한 이 노래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테니' 남은 마음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이었겠지만,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줄 수 없는 어떤 이유가 있다면 그렇게 놓아 주는 것이다. 



헤어지자 말해요_박재정


[Verse 1]

헤어지자고 말하려 오늘

너에게 가다가 우리 추억 생각해 봤어

처음 본 네 얼굴

마주친 눈동자

가까스로 본 너의 그 미소들

손을 잡고 늘 걷던 거리에

첫눈을 보다가 문득 고백했던 그 순간

가보고 싶었던 식당

난생처음 준비한 선물

고맙다는 너의 그 눈물들이

바뀔까 봐 두려워


[Chorus]

그대 먼저 헤어지자 말해요

나는 사실 그대에게 좋은 사람이 아녜요

그대 이제 날 떠난다 말해요

잠시라도 이 행복을 느껴서 고마웠다고


[Verse 2]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어쩔 수 없을 걸 문득 너의 사진 보겠지

새로 사귄 친구 함께

웃음 띤 네 얼굴 보면

말할 수 없을 묘한 감정들이

힘들단 걸 알지만


[Chorus] 반복


[Bridge]

한 번은 널 볼 수 있을까

이기적인 거 나도 잘 알아

그댄 그럴 수밖에 없던

어린 내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길


[Chous 3]

그댈 정말 사랑했다 말해요

나는 사실 그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영영 다신 못 본다 해도

그댈 위한 이 노래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테니



연민이라는 감정은 구분하기가 참 어렵다. 친절과 다정함으로 시작하는 관계. 측은지심을 갖는 것은 착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니, 그 속에 똬리를 틀고 있을 우월감과 자부심은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된다는 게 함정이다. 게다가 본인조차도 연민인지 사랑인지 몰랐을 수도 있겠다. 연민이라는 거울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비춰주고 사랑으로 왜곡해서 보여주니까.



문득 지나친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의 심리도 연민이 아닌가 싶다. 연인 사이가 아닌 우정이나 부모 자식 간에 참견하고, 구하지도 않은 조언을 하는 경우, 상대방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은 갸륵하고 기특하나, 그것이 자신을 과시하는 목적이라면, 주의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나서서 상대방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무시하거나 낮춰보는 시선일 수 있으니 말이다.



H.O.T의 'Candy'를 NCT DREAM이 리메이크 해서 불렀다. 제목과 리듬만으로는 마냥 밝고 사랑스러운 곡이라 여겼는데, 가사를 보면 남성의 심리가 담겨 있다. 특히 '몰래 몰래 몰래 다른 여자들과 비교 비교했지'라는 사실을 상대 여성이 알게 되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비교 자체가 우월과 열등을 나누는 행위니까. 허나, 사연을 들여다 보면 이해도 간다. 그녀는 앞에 있고 남성은 뒤에 있으니 이미 두 사람 사이에도 갑을이 결정되어 있다. 다행히 스스로 변하겠다는 결심과 앞뒤가 아닌, '너의 곁엔 내가 있잖아'로 훈훈하게 마무리 된다. 


그녀도 그 마음 알아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무리 선곡은 달콤한 'Candy'! :)



Candy_NCT Dream (원곡 H.O.T)


Candy


[Verse 1]

사실은 오늘 너와의

만남을 정리하고 싶어

널 만날 거야 이런 날 이해해

어렵게 맘 정한 거라

네게 말할 거지만

사실 오늘 아침에

그냥 나 생각한 거야


햇살에 일어나 보니

너무나 눈부셔

모든 게 다 변한 거야

널 향한 마음도

그렇지만 널 사랑 않는 게 아냐

이제는 나를 변화시킬 테니까


너 몰래 몰래 몰래

다른 여자들과 비교 비교했지

자꾸만 깨어지는 환상 속에

혼자서 울고 있는

초라하게 갇혀버린 나를 보았어

널 떠날 거야 uh

널 떠날 거야 uh

하지만 아직까지 사랑하는 걸

그래 그렇지만 내 맘속에

너를 잊어갈 거야


[Pre-Chorus]

머리 위로 비친

내 하늘 바라다보며

널 향한 마음을 이제는 굳혔지만

웬일인지 네게 더 다가갈수록

우린 같은 하늘 아래 서 있었지


[Chorus]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

이제껏 준비했던

많은 말을 뒤로한 채

언제나 니 옆에 있을게

이렇게 약속을 하겠어

저 하늘을 바라다보며



[Verse 2]

내게 하늘이 열려있어

그래그래 너는 내 앞에 서 있고

그래 다른 연인들은 키스를 해

하지만 항상 나는

너의 뒤에 있어야만 해

이제 그만해 나도 남잔데

내 마음 너도 알고 있는 걸 알아

그래 이제 나도 지쳐서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내게 하늘이 열려있어

그래그래 너는 내 앞에 서 있고

그래 다른 연인들은 키스를 해

왜 난 너의 뒤에 있어야 할까


햇살에 일어나 보니

너무나 눈부셔

모든 게 다 변한 거야

널 향한 마음도

그렇지만 널 사랑 않는 게 아냐

이제는 나를 변화시킬 테니까


[Pre-Chorus] 반복


[Chorus] 반복


[Post-Chorus]

한 번 더 한 번 더 말했지

이제껏 준비했던

많은 말을 뒤로한 채

(준비했던 많은 말을 뒤로한 채

다시 널 사랑한다고 했지)

언제나 니 옆에 있을게

다신 너 혼자 아냐

너의 곁엔 내가 있잖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 카테고리
(감정의 포스팅 순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땅의 속삭임
1. 비루함(낙담)  2.자긍심  3. 경탄  4. 경쟁심  5. 야심 6. 사랑 
7. 대담함  8. 탐욕  9. 반감  10. 박애 11. 연민  12. 회한

� 물의 노래 
13. 당황 14. 경멸 15. 잔혹함 16. 욕망  17. 동경  18. 멸시 
19. 절망  20. 음주욕 21. 과대평가  22. 호의  23. 환희  24. 영광

� 불꽃처럼
25. 감사 26. 겸손 27. 분노 28. 질투 29. 적의 30. 조롱
31. 욕정  32. 탐식 33. 두려움 34. 동정  35. 공손 36. 미움 

� 바람의 흔적
37. 후회  38. 끌림  39. 치욕  40. 겁 41. 확신  42. 희망 
43. 오만  44. 소심함 45. 쾌감 46. 슬픔 47. 수치심 48. 복수심

48가지 감정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바탕으로 한 <강신주의 감정수업>의 목차를 따랐으며,
감정에 관한 포스팅은 도서 내용과 별개로 헤아리다가 선정한 음악과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 관련 포스팅

48가지 감정 위로 음악은 흐르고

48 Emotions <Prologue>


� 땅의 속삭임

Emotions 01.비루함, 낙담(adjectio) 자존감을 회복할 때

Emotions 02. 자긍심 acquiescentia in se ipso '당당히 할 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

Emotions 03. 경탄 admiratio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Emotions 04. 경쟁심 aemulatio '권투 말고 건투를 빌며' 

Emotions 05. 야심 ambitio 야생의 생명력으로 야심차게

Emotions 06. 사랑 amor  마주 잡은 은유의 기쁨

Emotions 07. 대담함 audacia 무모한 질문에 대한 무한한 대답 

Emotions 08. 탐욕 avaritia 갈망할수록 갈증나는

Emotions 09. 반감 aversio 'Make it better'

Emotions 10. 박애 benevolentia 'We are so beautiful'



✅ 지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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