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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Sep 19. 2023

오지 않은 슬픈 나날의 두려움

Emotions 12. 회한 conscientioe 



회한(conscientioe)이란
희망에 어긋나게 일어난 
과거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에티카> 스피노자



<회한> 무력감을 반추하도록 만드는 때늦은 후회

회한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과거와 달리 더 이상 무기력하고, 비겁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과연 그럴까? 정말로 성숙하고 강해졌다면, 결코 회한의 감정이 유령처럼 따라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지금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과거지사는 단지 하나의 에피소드로 기억될테니까 말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p142



� 영화

리스본행 야간 열차


 도서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전락> 알베르 카뮈

<마음> 나츠메 소세키


� 음악 & 뮤직비디오

Theme of Night Train of Lisbon (리스본행 야간열차 OST)

바람기억_나얼

만약에_태연

예뻤어_데이식스





회한은 '뉘우치고 한탄함'을 의미한다. 좀 더 깊은 후회다. conscientioe는 오타인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라틴어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여 국어 사전적인 의미를 담은 후회와 죄책감, 양심의 범주에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회한과 후회가 다르다는 점이다. 회한은 양심적인 부분을 건드려 반성이 동반하는 결과에 대한 후회이고, 후회는 자신에게 원인을 돌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슬픔을 느끼는 감정이다. 모든 선택이 옳을 수 없고, 그런 과정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기에 후회 자체는 좀 더 유아적인 감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p28



� Theme Of Night Train To Lisbon



꿈을 펼쳐 보인다는 말은 달리 표현하면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는 것이다. 내 안의 소망, 재능, 확신 등이 뒤섞여 꿈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미래를 향해 달리는 열차와 같다. 그러나 스스로 억누르며 사느라 고작 두껑 닫힌 유리병 속 벼룩만큼 뛴다. 열심히 산다고 하지만, 사회가 가르쳐준 기준에 맞추느라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경우도 많다.



'리스본행 야간 열차'는 책도 영화도 수작이다. 고전문헌학을 강의하며 모든 일상이 각이 진듯 반듯한 그레고리우스는 우연히 폭우 속에서 빨간 외투의 여인을 구한다. 그리고 15분 후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표와 책 한 권이 그의 생각과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반면, 알베르 카뮈의 <전락>에서는 강물로 뛰어든 여인을 구하지 못했다. 아니, 외면했다. 생면부지의 남인 그 여인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회한의 감정이 되어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조금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자신의 입으로 선하고, 정의로운 변호사였던 클라망스는 정작 아무도 봐주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의로움과 선한 행동을 외면한 이기적인 자신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명예를 위해 정의로워 보이려 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속죄판사가 된다. 그것이 회한이다.



엎질러서는 안 되는 물동이를 엎질렀다는 슬픈 느낌. 이것만큼 회한의 감정에 대한 좋은 비유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우리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 그렇지만 회한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시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기를 소망한다. 순간의 결정이 이다지도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며 삶을 슬픔에 물들게 할지는 몰랐던 것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p146



나얼의 바람기억은 뮤직비디오가 음악과 결이 다른 느낌이다. 신앙심이 깊은 나얼이기에 기독교적인 '부활'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마지막 물고기 모양 즉, '익투스'의 등장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의미하고, 인간의 원죄가 원석이 떨어지는 것으로 비유되는데, 묘비에 새겨진 글귀가 '그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장 4절'이라고 한다. 부활과 구원을 담았다. 만약 회한의 감정 속에 갇혀 속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구원하리라는 메시지가 이 노래를 통해 들리지 않을까.



� 바람 기억_나얼 


[Verse 1]

바람 불어와 내 맘 흔들면

지나간 세월에

두 눈을 감아본다

나를 스치는 고요한 떨림

그 작은 소리에

난 귀를 기울여 본다

내 안에 숨쉬는

커버린 삶의 조각들이

날 부딪혀 지날 때

그 곳을 바라보리라


[Chorus]

우리의 믿음

우리의 사랑

그 영언한 약속들을

나 추억한다면 힘차게 걸으리라


우리의 만남

우리의 이별

그 바래진 기억에

나 사랑했다면 미소를 띄우리라


[Verse 2]

내 안에 있는

모자란 삶이 기억들이

날 부딪혀 지날 때

그 곳을 바라보리라


[Chorus] 반복



우리는 항상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이 나의 선택권, 즉 권리임을 안다면, 일정 가격을 지불하고 골라담는 아이스크림처럼 맘껏 고르고, 행동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인간이란 생각이 너무 많은 나머지 '만약에'라는 단서를 붙여 아직 생기지도 않은 두려움에 지레 겁먹는다. 사랑에서도 한 걸음 앞으로 가는 대신 뒷걸음질 치기 일쑤다. 



이렇듯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내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넘치는 경우다.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 지 확신할 수 없기에 다가가지도, 떠나가지도 못한다. 태연의 '만약에'도 아직 오지 않은 슬픈 나날들이 두렵다. 회한의 감정이 타인을 의식한 나머지 인간의 이중성을 발견하게 되는 마음이라면, 사랑하면서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 또한 헤아릴 수 있을 듯 하다.




� 만약에_태연


[Verse 1]

만약에 내가 간다면

내가 다가간다면

넌 어떻게 생각할까

용길 낼 수 없고

만약에 니가 간다면

니가 떠나간다면

널 어떻게 보내야 할지

자꾸 겁이 나는 걸


[Chorus]

내가 바보 같아서

바라볼 수 밖에만

없는 건 아마도

외면할지도 모를

니 마음과 또 그래서

더 멀어질 사이가 될까봐

정말 바보 같아서

사랑한다 하지

못하는 건 아마도

만남 뒤에 기다리는 아픔에

슬픈 나날들이

두려워서인가봐


[Verse 2]

만약에 니가 온다면

니가 다가온다면

난 어떻게 해야만 할지

정말 알 수 없는 걸


[Chorus]



예전에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거지.

<마음> 나쓰메 소세키



문득 지금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 생각난다. 이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지 알 수 없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게 바로 '회한'이 아닌가 한다. 선생님은 친구 K가 흠모했던 하숙집 딸과 자신이 결혼을 해버리는데, 그로 인해 K가 자살을 하고 만다. 이후 선생님 마음 속에서 일어났던 기만과 위선과 자기 혐오가 스스로를 괴롭히는데, 알베르 카뮈의 <전락>에 등장하는 클라망스의 마음 상태와 유사하다.


결국 회한에 빠진 사람은 아직도 성숙하지 못하고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회한이라는 슬픈 감정을 떨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중에 회한이 없도록 지금 과감하게 선택하고 당당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p146



데이식스의 '예뻤어'는 회한의 감정과는 달리 지난 과거의 인연을 담담하게 떠올리는 노랫말이다. 이별이라는 것이 사실, 그 당시는 고통스러울지라도 서로 간의 이해타산이나 소진된 감정으로 인해 하게 되는 합의점이다.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면, 후회와 회한과 미련으로 불쑥불쑥 자신을 괴롭히겠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더 좋은 인연을 위해 비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서로의 잘잘못도 있을 것이니, 이를 만회하기 위해 재회나 친구로 남는 선택지도 있겠지만, 스쳐지나갈 인연들을 일일이 힘들게 끌고 가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올 인연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뻤어'는 돌아봤을 때 좋은 기억과 추억을 남겨준 과거 인연에 대한 존중이 담긴 노래다. 회한의 감정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괴롭힌다면, 이 노래처럼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담담해질 필요도 있다. 돌이켜 보면, 어떤 인연들과는 더 좋아질 수 없고,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선택한 이별이 아닌가. 곱씹고 되뇌이기보다 이렇게 예쁜 마음으로 기억해 줄 수 있다면, 자신도 상대도 더없이 좋은 감정으로 지금 혹은 새로운 인연들을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다.



� 예뻤어_데이식스


[Verse 1]

지금 이 말이

우리가 다시

시작하자는 건 아냐

그저 너의

남아있던 기억들이

떠올랐을 뿐이야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너는

사랑한다 말해줬었지

잠들기 전에 또

눈 뜨자마자 말해주던 너

생각이 나 말해보는 거야


[Chorus]

예뻤어

날 바라봐 주던 그 눈빛

날 불러주던 그 목소리

다 다

그 모든 게 내겐

예뻤어

더 바랄 게 없는듯한 느낌

오직 너만이 주던 순간들

다 다

지났지만

넌 너무 예뻤어


[Verse 2]

너도 이제는

나와의 기억이

추억이 되었을 거야

너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다

지나간 일일 거야

정말 한번도 빠짐없이 너는

나를 먼저 생각해줬어

아무 일 아니어도

미안해 고마워 해주던 너

생각이 나 말해보는 거야


[Chorus] 반복


[Bridge]

아직도 가끔 네 생각이 나

어렵게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이 들 때도 많지만

Baby I know it's already over

아무리 원해도 너는 이제

이미 끝나버린 지난 날의

한편의 영화였었단 걸

난 알아


[Chorus 3]

마지막

날 바라봐 주던 그 눈빛

잘 지내라던 그 목소리

다 다

그마저도 내겐

예뻤어

예뻤어

내게 보여준 눈물까지

너와 가졌던 순간들은

다 다

지났지만

넌 너무 예뻤어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 카테고리
(감정의 포스팅 순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땅의 속삭임
1. 비루함(낙담)  2.자긍심  3. 경탄  4. 경쟁심  5. 야심 6. 사랑 
7. 대담함  8. 탐욕  9. 반감  10. 박애 11. 연민  12. 회한

� 물의 노래 
13. 당황 14. 경멸 15. 잔혹함 16. 욕망  17. 동경  18. 멸시 
19. 절망  20. 음주욕 21. 과대평가  22. 호의  23. 환희  24. 영광

� 불꽃처럼
25. 감사 26. 겸손 27. 분노 28. 질투 29. 적의 30. 조롱
31. 욕정  32. 탐식 33. 두려움 34. 동정  35. 공손 36. 미움 

� 바람의 흔적
37. 후회  38. 끌림  39. 치욕  40. 겁 41. 확신  42. 희망 
43. 오만  44. 소심함 45. 쾌감 46. 슬픔 47. 수치심 48. 복수심

48가지 감정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바탕으로 한 <강신주의 감정수업>의 목차를 따랐으며,
감정에 관한 포스팅은 도서 내용과 별개로 헤아리다가 선정한 음악과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 이전 포스팅

48가지 감정 위로 음악은 흐르고

48 Emotions <Prologue>


� 땅의 속삭임

Emotions 01.비루함, 낙담(adjectio) 자존감을 회복할 때

Emotions 02. 자긍심 acquiescentia in se ipso '당당히 할 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

Emotions 03. 경탄 admiratio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Emotions 04. 경쟁심 aemulatio '권투 말고 건투를 빌며' 

Emotions 05. 야심 ambitio 야생의 생명력으로 야심차게

Emotions 06. 사랑 amor  마주 잡은 은유의 기쁨

Emotions 07. 대담함 audacia 무모한 질문에 대한 무한한 대답 

Emotions 08. 탐욕 avaritia 갈망할수록 갈증나는

Emotions 09. 반감 aversio 'Make it better'

Emotions 10. 박애 benevolentia 'We are so beautiful'

Emotions 11. 연민 commiseratio 사랑이라 믿었던 연민



✅ 지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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