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함께 사는 법

용감한 주부의 불안장애․공황 분투기

by 영글음

불안 장애, 공황 발작이 잠잠해진지 1년이 넘어간다. 한참 힘들 당시 가장 궁금하고도 두려웠던 질문은 "내가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였다. 다행히 고요한 일상이 다시 내게 왔다. 아니, 그 이상이다. 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 지금의 나는 옛날만큼 걱정을 달고 살지도, 작은 일에 연연하며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어제나 내일이 아닌 오늘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깨달아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려 노력한다. 그렇다면 내 삶에서 '불안'이라는 두 글자는 영원히 사라졌을까?


인생 자체가 기쁨과 시련, 즐거움과 괴로움, 행복과 불행 등으로 버무려져 있는데 어떻게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불안 장애도 마찬가지다. 공황 발작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지만 몸으로 나타나는 불안의 증상은 여러 번 있었다. 최근에 겪은 것은 몹쓸 놈의 코로나 때문이었다.




작년 말, 가족을 놔두고 혼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3년 간 고생하던 성대결절을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영국 의료시스템은 거의 마비 수준이었고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만나는 예약은 몇 달째 소식이 없던 차에 남편의 배려로 혼자 한국에 간 것이다.


7주간 열심히 병원 투어를 했다. 간 김에 건강검진도 하고 정형외과도 갔다. 건강검진 결과 가슴에 엽상종양이 발견되어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절개하여 제거 수술도 받았다. 성대 전문 이비인후과에도 가서 40만 원짜리 음성 테스트를 받으며 성대에 직접 놓는 주사요법 시술(?)도 받았다. 치료를 목적으로 간 것이지만 초딩, 중딩 애 둘 엄마가 7주 동안 자유부인이 되다니! 결혼생활 1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솔직히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물론 가족들 엄청 보고 싶었지만)


문제는 돌아오기 2주 전 즈음부터 일어났다. 우연히 체온을 쟀는데 37.3도가 아닌가. 37.5도 이상 되면 비행기를 탈 수가 없다. 공항 출국 심사에서 막히기 때문이다. 며칠간 계속 체온을 쟀는데 상황은 비슷했다. 모두 37도 이상이었다. 어쩔 땐 37.4도가 나오기도 했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코로나에 걸렸나? 나 때문에 연세 많으신 우리 부모님들 코로나 걸리는 거 아니야? 이러다가 영국 못 가면 어쩌지? 불안한 생각들이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때마침 영국에서 변종 바이러스가 발견되면서 많은 나라들이 영국발 비행기를 금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까딱하다가는 한국에서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도 언제 중단될지 몰랐다. 그때부터였다. 다시 불안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큰 숨 쉬기가 힘들고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이번엔 식욕도 떨어졌다. 평소 먹는 양의 반만 먹어도 배가 차서 더 이상 목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그때 생각했다.


불안 장애가 또 왔구나. 끈질긴 놈.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불안 장애나 공황 장애는 재발이 쉽다고 한다. 나이나 날씨에 따른 호르몬 변화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생각과 감정을 인지하는 방식에 따른 것이므로 감기 낫듯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누구? 용감한 주부! 배운 데로 실천을 하기로 했다. 먼저 불안 바라보기.


미열 때문에 영국 못 돌아갈까 봐 내가 불안하구나.

증상이 있을 때마다 복식호흡을 했다. 몸 움직임을 늘리기 위해 밖에 나가 걷고 유튜브 보면서 홈트레이닝을 반복했다. 또한 인지행동치료에서 배운 대로 상황을 극으로 몰아 상상하다가 한 단계씩 낮춰보기도 했다. 내가 만약 코로나에 걸렸다면? 한국에 있으니 치료를 받으면 된다. 후유증이 있다지만 모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열 때문에 비행기에 못 탄다면? 몇십만 원의 비행기 값을 날릴 수 있지만 며칠 뒤 열이 내린 다음에 다시 타면 된다.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노선이 중단되면? 한국발 비행기를 막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게다가 상황은 바뀌니 없어졌다 해도 다시 생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출국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나 자신을 달랬다. 마음이 가라앉았다가도 불쑥불쑥 불안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최소한 그것에 압사당하지는 않았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내가 나의 불안을 다스리며 일상을 유지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기특했다. 출국날이 다가왔다. 모든 심사대를 잘 통과하고 지난 1월 추운 어느 날 나는 영국에 잘 도착했다. 그러자 불안 증상은 물에 소금 녹듯 사라졌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내 안의 불안과 싸우며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내가 이길 때가 많을 것이라 예상은 하지만 때론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겪어 보지 않은 갱년기도 어떻게 나타날지 기대가 크다(!). 하지만 이제는 대략 감을 잡았으니 주저앉아 울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신 친구로 삼으려 한다. 이 감정도 필요하니까 나에게 왔을 것이다. 무언가 나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온 감정이다. 그것을 잘 받아들이고 나면 내 인생이 더욱 반짝반짝 빛나게 될 거란 사실을 알기에 불안, 그 녀석을 기꺼이 베스트 프렌드로 맞이했다. 베프라 해도 삐지고 싸울 수도 있는 거니까 앞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잘 살아나갈 것이다.


불안 장애 분투기의 마지막 글이다. 부족한 글이었을 텐데, 그동안 관심을 갖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혹시 지금 불안과 공황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이 계시다면 응원하고 싶다. 글 몇 개로 큰 위로가 될 순 없겠지만 여기 같은 증상으로 고생하다가 터널을 잘 지나온 사람이 있으니 부디 조금만 더 힘을 내시라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힘들면 좀 쉬었다 가면서 용감하고 씩씩하게 파이팅.




* 영국 사는 용감한 주부의 불안 장애 분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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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용감한 주부의 불안장애․공황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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