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주부의 불안장애 ․ 공황 분투기
“여보.......”
입에서 모기만 한 소리가 세어 나왔다. 이래 가지고는 화장실 밖에 있는 남편의 귀에 들리지 않을 게 뻔한데. 이를 어쩐다. 몸속 기운이 뱅글뱅글 빠른 속도로 돌고 있었다. 강한 자력이 N극과 S극을 휘두르며 내 육체를 조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지러웠다. 호흡이 빨라졌다. 눈을 감았다.
“여보....... 이리 좀....... 와봐!”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 겨우 힘을 주어 소리를 높였다. 남편이 달려왔다.
“응, 왜! 왜 그래?”
“몸이 이상해. 못 움직이겠어....... 응급차 불러줘.”
저녁을 먹은 후 처방받은 철분 약을 입에 털어 넣은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화장실 변기에 앉았을 뿐인데 갑자기 몸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몸 전체가 저리기 시작한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장부터 손톱 끝까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증상이었다. 남편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 밖으로 나온 후 바로 바닥에 엎어졌다.
“손, 발이 안 움직여....... 마비된 것 같아.”
“응급차 부를게, 여보 지금 얼굴이 너무 하얘!”
당황한 남편은 서둘러 휴대폰을 가져와 999(영국 긴급상황 전화번호)를 눌렀다. 마루에 널브러져 오그라든 두 손을 보고 있자니 단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러다 내가 죽나?’ 당장 출동할 구급차가 없어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응급실 간호사는 전화로 내 상태를 체크했다.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네, 말은....... 할 수....... 있어요.”
“현재 증상을 말씀해 보세요.”
“손, 발을....... 못 움직이겠어요....... 어지럽고, 온몸이 저려요.......”
5분에 한 번씩 두 번을 더 통화하는 동안 구급차는 오지 않았다. 그 사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30분쯤 지났을 무렵 증상이 모두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것도 감쪽같이. 손가락, 발가락 스무 개 모두 까딱거릴 수 있게 되었다.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어 앉아 연거푸 물을 들이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생각했던 상황 치고는 앞뒤가 안 맞는 전개였다. 남편은 불렀던 구급차를 취소하고 직접 운전해서 나를 종합병원에 데려갔다.
그날 밤. 영국 병원의 응급실에는 대기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응급수술이 필요한 경우나 어린이 환자를 제외하고는 도착해서 접수한 순서대로 대기실에 앉아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접수를 마쳤을 때 이미 몇십 명의 환자들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긴급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 아마 그들의 눈에는 나 역시 그렇게 보였겠지. 도대체 내 몸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루푸스 때문인지도 몰랐다. 열일곱 때 처음 발병해 이날 이때껏 달고 사는 나의 친구. 루푸스는 자기가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이다. 의사가 복용 중인 약을 물어볼까 봐 기다리는 동안 아홉 글자나 되는 긴 약의 이름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하이드록시 클로로퀸, 하이드록시 클로로퀸.
세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잘 자고 있으려나. 내일 아침에 올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기 시작했을 때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피검사, 소변검사 등을 한 뒤 의사를 만났다.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단다. 빈혈 때문에 먹었던 철분제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물었다. 빈혈약 부작용 중에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제가 루푸스가 있어요. 혹시 그거 때문은 아닐까요?”
“그건 전문의 만나서 물어보셔야 해요.”
“아, 네.......”
그럼 뭐지? 지구가 나를 끌어당겼나. 땅 속 깊이 마그마를 지나 지구의 핵이 내 몸을 강렬하게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는데. 우주의 평화를 위해 내게 임무를 맡기려 했던 것일까. 대체 누가? 문제가 없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지, 아닌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꼭 하나 확실한 것은 이날의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는 점이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육체의 흔들림, 그 속에서 진하게 펼쳐지는 죽음을 향한 두려움. 시쳇말로 ‘병맛’이었다.
밤 9시에 병원에 갔다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 영국 사는 용감한 주부의 불안 장애 분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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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주부의 불안장애․공황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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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나의 불안, 너는 누구냐
2부 - 일상 되찾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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