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주부의 불안장애․공황 분투기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9명의 사람들이 의자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맨 마지막으로 간 것이었다. 진행자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하나 남은 의자에 앉으라 권했다.
"I'm sorry."
급히 자리를 잡으며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원래 시작 시간은 10시. 뭐야. 제시간에 온 거잖아. 마지막으로 온 탓에 나도 모르게 "아임 소리"를 했다. 진행자는 낮은 목소리로 뭔가 설명하고 있었다. 영어라 귀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집중모드로 돌입하기 전, 함께 앉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30대에서 50대처럼 보이는 남녀가 다소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이들도 서로 모르는 사이겠지. 그들이 가진 마음의 병을 짐작해 봤다. 불안 장애? 공황? 우울증? 아니면 강박증?
의사 캐서린의 조언에 따라 "mindfullness"라고 불리는 명상 수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마음 챙김"이라고 한다는데 태어나서 명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나는 뭐라 불러도 모두 생소한 용어들이었다. 책에서 명상을 하는 것이 불안 장애에 좋다는 걸 봤다. 카린과 케이트도 추천했다. 그래서 캐서린이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을 때 망설임도 없이 하겠다고 했었다.
명상 수업의 진행자는 눈을 감으라고 했다. 호흡을 시범 보였다. 열 명이 들고 내쉬는 숨이 방 안에 가득 찼다. 그녀는 몸을 느껴보라고 했다. 엉덩이가 의자를 누르는 느낌, 발이 바닥을 짚은 느낌, 팔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감각, 내 몸에 어디 가 무겁고 뻐근한 지, 어디가 가장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등등.
'뭐지? 내 몸을 어떻게 느껴보라는 거지?'
하라는 데로 따라 하려 노력했지만 잘하고 있는 건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10분 후 눈을 뜨고 또 설명을 들은 뒤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엔 외부 소리에 집중하란다. 마침 창밖에서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잠잠해지고 교실 안에 진행자의 목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으며 느렸다. 안 그래도 다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가 엿가랏처럼 주욱 늘어졌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첫 명상 시간이 끝나고 캐서린을 만났다.
"어땠어요? 할만했나요?"
"나쁘지 않았어요. 근데 중간에 잠이 들었어요."
"후후, 마음이 편했다는 증거 아닐까요? 계속할 의향 있어요? 1주일에 한 번씩 8주 과정이에요."
"음....... 안 할래요. 영어라 집중이 어려워요. 선생님과 인지행동치료만 하겠습니다."
나의 첫 명상 수업은 이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그 후로도 친구들이 추천해준 앱을 깔아 마음이 안절부절못할 때 명상을 시도해 보았다. 안방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하란데로 호흡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더 조급해지기만 할 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명상이 나에게 안 맞는 것일까. 그 후 불안장애 치료에서 명상은 뺐다.
명상을 잊고 산지 1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 그러니까 2021년 3월 초. 참여하고 있는 북클럽에서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라는 책을 읽고 토론하기로 했다. 책 선정은 돌아가면서 하는데, 내가 고른 책은 아니었다. 지난 시절 명상을 하다가 망한(?!) 경험이 있는지라 끝까지 잘 읽을 수 있을까 하며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읽었다.
책장을 덮고서 무릎을 쳤다. 아! 내가 명상을 잘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구나! 명상은 무조건 조용한 곳에서 눈 감고 호흡에 집중하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파란 눈의 스님인 저자 앤디 퍼디컴은 명상은 기술 같은 거라고 했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려면 시간을 들여 익혀야 하는 법.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가 잘 타려면 몇 번이고 넘어지고 휘청거리며 연습을 하여 몸에 익혀야 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명상은 처음 마음가짐도 중요할뿐더러 계속해봐야 느는 것이었다.
헬스클럽에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으로 명상 공간에 가서 실제로 할 경우에만
명상 효과를 볼 수 있다
- 책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중에서 -
그것도 모르고 열날 때 먹을 수 있는 해열제처럼 한 두 번의 실행으로 바로 효과를 보려 했으니 될 리가 없었다. 헬스클럽에 한 달 다녔다고 근육이 금세 붙는 게 아니듯, 명상도 꾸준히 해야 하고 시도하면 할수록 느는 것이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하란데로 10분 명상을 하며 내 마음 알아차리기, 마음 챙김 등의 방법을 적용하려 애를 썼다. 혼자 했기에 역시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100%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이전보다는 집중이 잘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알아차리기 기법은 불안 증상이 몸으로 나타날 때마다 지금껏 내가 하고 있던 방법과 겹쳤다. (다음 글 참조) 그것이 명상에 기반한 방법인 줄도 모르고 이미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 장애나 공황 장애 혹은 우울, 무기력 등이 있는 분들이라면 명상을 시도해봤으면 좋겠다. 비록 나는 첫 번째 시도에 실패를 했었고 지금도 계속 알아가는 중이지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데 명상은 도움이 될만한 수련법이라 생각한다. 명상으로 덕을 보았다는 분들의 후기도 많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겠다. 혼자 앱을 깔고 하거나 책을 보며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익히려면 계속해야 하는데 지속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러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직접 대면하여 몇 주간이라도 방법을 익힌 뒤, 어느 정도 감이 오면 그때 가서 혼자 연습하는 것이 시간의 낭비를 줄이고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명상이 나랑 안 맞을 것 같고, 고리타분하며 시간 낭비일 것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진짜 그런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불안장애라는 괴로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해 볼 수 있는 것은 일단 다 해보라 권하고 싶다. 그만두는 건 그때 가서 선택해도 늦지 않다.
* 영국 사는 용감한 주부의 불안 장애 분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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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주부의 불안장애․공황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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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나의 불안, 너는 누구냐
2부 - 일상 되찾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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