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안은 어디서 왔나
건강염려증, 공황 장애 등의 불안 장애는 ‘우울’이라는 녀석과 ‘베스트 프렌드’ 사이다. 모두 경험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불안증을 앓는 사람 중 많은 이들이 우울한 감정이나 무기력 등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내 경우, 처음에는 불안 장애 증상이 나타나고 약 1년 후 공황 발작을 겪었으며 그로부터 2개월 후 극심한 우울감이 찾아왔다.
나에게는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었다. 최소한의 것만 한다 치더라도 아침, 저녁으로 가족들 먹을 밥상은 준비해야 했다. 본업으로 핸드메이드 공예품을 팔고 있었으니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어야 했다. 특히 둘째는 나이가 어려 영국의 시스템 상 부모가 학교에 직접 데려다주고 데리고 와야 했다.
목 이물감, 심계항진, 호흡 곤란 등의 불안 장애 증상만 있었을 때는 그럭저럭 해나가던 일들이 우울까지 겹치고 나니 뭐 하나 쉽게 되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둘째 딸 친구 난시네 엄마인 소피에게 내 증상을 말했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소피는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며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꼭 안아주었다.
다음날, 하교 시간. 엄마들이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운동장에 모였다. 그때 스카이네 엄마 카린이 다가왔다.
“영글음, 소피에게 들었어. 너 공황 발작 왔다면서? 나도 공황 장애잖아. 지금 휴직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어. 나는 너보다 훨씬 심해서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니까. 지금은 어때? 괜찮아?”
카린도? 물리치료사인 그녀가 6개월 간 휴직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공황 장애 때문인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카린이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덩어리 같은 게 울컥 올라왔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어 꾸역꾸역 학교로 왔던 참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괜찮냐”고 묻는 이를 만나니 눈물샘이 다시 “ON"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녀의 어깨에 기대에 흐느꼈다.
“아니, 나 안 괜찮아, 카린.”
그날 이후, 네 명의 엄마들이 번갈아가며 한 명씩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들 모두 자신이 겪은 공황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세상에.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각자의 이유도, 처했던 상황이나 정도도 달랐지만 전부가 공황의 경험이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사실이었다. 이게 그렇게 흔한 거였어?
카린은 당시 내가 겪고 있는 문제와 거의 비슷했다. 물리치료사이다 보니 모든 병을 너무 잘 알고 있는 탓에 스스로에게 조그만 증상이 나타나도 나처럼 죽을병이라 의심했다고. 지난 몇 개월간 다양한 검사를 끊임없이 받다가 공황이 온 경우였다. 집에서 매일 운 것은 물론이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휴직을 했다. 근처에 사는 부모님이 와서 가사와 육아를 도왔다. 하지만 약물치료와 정신과 상담으로 완전히 회복해서 다음 주부터는 복직을 한다고 했다.
케이트는 브라질에서는 약사였는데 영국에 오면서 일을 못하게 되자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심해져 공황이 왔단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떻게 극복을 했는지 알려주었다. 약 대신 마음을 가라앉히는 천연 건강기능식품과 명상 앱을 추천해 주었다. 소피는 산후우울증과 함께 공황 발작을 겪었다. 티미는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로 증상이 심했는지 말하면서 여전히 그것과 싸우고 있다고 했다.
그녀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그들이 잡아주는 손을 잡고 웃기를 반복했다. 한 달 전, 세영과 희수, 정인에게 첫 공황 발작을 말했을 때는 다소 의기양양했었는데 고작 몇 주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나에게 건네는 위로는 대체로 일관된 메시지가 있었는데 바로 구글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들은 대개 최악의 상황까지 보여주기 때문에 그것으로 불안해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불안과 공황 장애 환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문득 인터넷이 없는 세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의사를 만나는 것 외에는 의학 정보를 찾을 길이 별로 없는 세상이라면, 만약 블로그에 불안을 조장하는 각종 질병 정보가 넘쳐나지 않는 세상이라면, 만약 남들의 성공 이야기가 발에 치이지 않는 세상이라면 지금보다는 불안한 사람들이 줄지 않았을까?
개인의 불안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불안을 부추겨 돈벌이를 하려는 자들이 득실대고 경쟁이 일상인 사회에서는 불안하지 않은 게 더 불안할지도 모른다. 허나 중요한 것은 이유가 어디에서 왔건, 자신의 불안은 스스로 거둬들이는 수밖에는 없다는 점이다. 소피, 카린, 케이트, 티미의 위로는 따뜻했다. 나만 그러 게 아니었구나, 나를 이해하는 이가 많구나 하는 것을 느껴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불안을 가져가 주지는 않았다.
구글링 하지 말라는 조언. 머릿속으로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동의하지만 손가락은 말을 듣지 않으니 그 후로도 인터넷 검색은 계속되었고 증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영국 사는 용감한 주부의 불안 장애 분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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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주부의 불안장애․공황 분투기
여는 글
1부 - 나의 불안, 너는 누구냐
2부 - 일상 되찾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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