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을 바라본다는 것

용감한 주부의 불안장애․공황 분투기

by 영글음

불안 장애를 공부하다 보니 신체에 증상이 왔을 때 억지로 없애려 하지 말고 알아 차린 후 바라 보라는 내용이 있었다. 불안하거나 괴로운 생각이 들어도 물 흐르듯이 놔두라고 했다. 그냥 지나가도록 하란다. 여러분들은 이런 문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그래,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이 먹어지나?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웬 뜬구름!'


일단 어쩌라는 건지 와 닿질 않았다. 신선놀음을 하라는 말 같이 들렸다. 한가한 소리라 여겼다. 몸과 마음에 번쩍번쩍 이는 스파크를 어떻게 바라보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흐르게 놔두란 말도 당최 이해가 안 되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집에 불이 났을까 봐 걱정이면 그것을 막지 말고 계속 하란 뜻인가? 그 생각이 안 들 때까지? 어쩌라고!!


그런데 공부를 더 하다 보니까 그것이 마음 챙김 명상에서 말하는 알아차림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내가 지금 불이 났을까 봐 걱정을 하고 있구나', '시간이 흘렀는데도 계속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리는 과정을 거치라는 것이다. 이 역시 뜬구름 같았지만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니 실제 상황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이게 맞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차례를 거듭할수록 감이 오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방법이 나에게는 꽤 효과가 좋았다.


다시 한번 예를 들어, 갑자기 심장 뛰는 게 느껴지는 불안 증상이 생겼다고 쳐보자. 예전 같으면 내 머릿속은 이랬을 것이다.


-> 또 시작이군. 힘들어. 큰 병에 걸린 게 분명해. 언제쯤 끝이 날까. 괴롭다. 눈물 주르륵


하지만 알아차림의 기법을 적용한 후부터는 이랬다.


-> 심장 뛰는 게 느껴지는구나. 내가 불안한가 보구나.


친구와 놀러 나간 딸아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을 때 예전 같으면 내 머릿속은 이랬을 것이다.


-> 무슨 나쁜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전화는 왜 안 받아. 기절하시겠네. 머리 뚜껑 열림.


하지만 알아차림의 기법과 인지행동치료에서 배운 내용을 적용한 후부터는 걱정을 하다가도 이랬다.


-> 내가 지금 늦게 오는 딸을 걱정하고 있구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앞서 나가고 있구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구나.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신의 증상 혹은 생각에 '내가 지금 OOO 하고 있구나'를 붙여보는 것이다. 마치 다른 사람의 증상이나 생각을 표현하듯이. 마치 나를 제삼자처럼 다루어 보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내 상태를 알아차리고 나면 증상에 집중하지 않고 무시하기가 쉬웠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불안 증상이 사라져 있었다.






어쩔 땐 1인 2역을 하며 나 자신과 대화를 할 때도 있다. "너 지금 불안해? 괜찮아, 정상이야. 내가 알아차렸잖아. 지금 상황이라면 누구도 그럴 수 있어." 이렇게 말하며 손으로 나를 토닥거린 적도 있다. 일명 나와 나의 1:1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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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장애, 공황 발작과 만나기 전에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늘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기만 했지 나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자아도 강하고 자존감도 강한 편이라 여겼다.


하지만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만들다 보면 나 이외에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나의 앞날보다는 가족 전체의 미래를 계획해야 했고, 그 안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나의 길과 꿈은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를 사랑했지만 좀 더 사랑했어야 했다.


내 불안을 바라보며 나는 자신을 바라보는 법도 함께 배웠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했다. 내가 편안해야 가족, 친구들도 행복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뿐인가.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겪고 있나 생각하고 돌아보면서 그동안 외면했던 나의 내면을 만나고 인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불안 장애가 없었다면 결코 갖지 못했을 기회들. 적절한 시기에 날 찾아와 준 그것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갱년기 전에 먼저 겪게 되어 다행이다.


지금 한창 골짜기 속에서 헤매고 있는 분들이라면 감사고 나발이고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그럴 때는 당연히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 약물치료, 상담치료, 명상치료, 글쓰기치료 등등 해볼 수 있는 걸 총동원하여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면 자신의 불안에 의미를 붙여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과정을 통해 잃은 것과 얻은 것을 정리하되 얻은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다시 쓰는 것이다. 시련을 시련으로만 남기지 말고 인생에 하나의 발판이 되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좀 더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는다면 고통이었던 순간도 값진 경험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영국 사는 용감한 주부의 불안 장애 분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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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용감한 주부의 불안장애․공황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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