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주부의 불안장애 . 공황 분투기
정인이 얼른 병원에 가라고 말하기 전부터 나는 자주 의사를 만나오던 터였다. 루푸스라는 지병이 있기 때문에 영국에 오자마자 전문의를 찾아 6개월에 한 번씩 만나야 했다. 그뿐인가. 마흔이 넘어가면서 목 디스크와 함께 찾아온 목, 어깨 통증 탓에 ‘카이로 프락틱’이라 부르는 척추 교정술도 받는 중이이었다. 하지만 당시 몇 개월 동안 나를 괴롭히던 증상들은 따로 있었다. 목 이물감, 가만히 있어도 뛰는 게 느껴지는 심장, 피로감, 무기력 등이었다.
먼저 목 이물감. 경험해 보지 않은 자는 말을 말지어다. 목에 무언가가 걸려 있는 느낌으로 한방에서는 이것을 ‘매핵기’라 부른단다. 매실 씨앗이 목에 걸린 느낌이 들어 그렇게 부른다는데, 누가 지었는지 이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명칭이다. 주관적인 표현을 더 하자면 무엇인가가 목 한가운데를 누르고 있는 느낌이랄까, 혹은 목구멍 입구에 뚜껑 같은 게 닫혀 있는 기분이기도 했다.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이 불편한 증상 탓에 이미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 하고 있었다.
영국은 일단 아프면 동네에 지정해 놓은 병원에 가서 지피(GP-General Practice)라 불리는 의사를 만난다. 지피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약을 처방하거나 전문의, 물리치료사 등을 연결해 준다. 국가가 의료시스템을 관리하기 때문에 개인은 지정된 병원 딱 한 군데만 가야 한다. 한국처럼 이 내과 갔다가 저 이비인후과 가며 여러 의사를 만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건 무상의료라는 점이다. 아무리 추가 검사를 받고 싶어도 의사가 봤을 때 받을 상황이 아니면 처방을 내려주지 않는다. 나라에서 비용을 대니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검사를 남발하지 않는다. 지인들이 목 이물감은 역류성 식도염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위 내시경 검사는 한 번 받은 상태였다. 결과는 이상 무.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 인터넷으로 '매핵기', '목에 무어가 걸린 느낌' 등 단어를 바꾸어 가며 검색하고 자료를 뒤졌다. 아버지가 몇 년 전 식도암에 걸려 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다. 동생은 갑상선암을 떼어냈다. 모두 목 이물감이 생길 수 있는 병들이다. 지피에게 가족력을 말했을 때 혈액검사를 처방해 주었다. 갑상선 기능이 모두 정상이라고. 목에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다고. 위 내시경은 몇 개월 전에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해줄 수가 없다고. 그리고는 끝이었다.
한국에서는 갑상선 초음파로 정밀 검사를 한 뒤에나 내릴 수 있는 진단을 어떻게 피 한번 뽑고 끝내려 하지? 환경호르몬 같은 발암물질이 지천에 깔려 있는데 몇 개월 만에 식도에 암이 걸리지 말란 법이 있을까? 영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쌓여만 갔다. 일주일에 두세 번 나타났다가 사라지던 목 이물감이 네댓 번으로 늘어갔다. 아, 정말 내시경 검사를 딱 한 번만 더 받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목 이물감과 함께 내 몸을 들들 볶은 증상은 가만히 있어도 뛰는 게 느껴지는 심장박동이었다. 심계항진이라고도 하는 이 증상은 일상생활을 못하게 방해했다.
“여보 나, 심장이 뛰어.”
“응 나도 뛰어. 안 뛰면 죽지.”
“아니, 그게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막 뛰는 게 느껴진다고. 튀어나올 것 같아. 여보도 그래?”
“흠, 그렇지는 않은데?”
여러분들은 언제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지는가. 회장님 모셔두고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당락이 결정되는 시험 결과를 알려고 인터넷 창 앞에서 확인 버튼을 누르기 직전? 짝사랑하는 연인에게 수줍은 진심을 고백할 때? 아니면 100미터 달리기를 한 끝에?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 쿵쾅쿵쾅 뛰어야 할 심장이 내 경우엔 시도 때도 없이 뛰었다. 아니, 뛰는 게 느껴졌다.
소파에 가만 앉아 있는데도 달리기를 막 끝마친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어떨지 상상해 보라. 진짜 뛰기라도 한 것처럼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몸이 힘들어진다. 온 신경이 심장 박동에만 가 있어서 다른 곳에 집중을 할 수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의 할 일을 빼곡히 써 놓았어도 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 무기력해진다. 누워서 오른손가락을 왼손 손목에 댄 채 1분에 몇 번이나 뛰는지 체크하며 몇 시간이고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심장엔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확신한다. 큰 병에 걸렸다고. 증상이 심해진다. 믿음은 강고해진다. 이 상태가 끊임없이 돌고 돌면서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불안 장애의 한 종류인 건강염려증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 영국 사는 용감한 주부의 불안 장애 분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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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주부의 불안장애․공황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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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나의 불안, 너는 누구냐
2부 - 일상 되찾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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