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황과 마주하다

용감한 주부의 불안장애 ․ 공황 분투기

by 영글음

“4주 후에 뵙겠습니다.”


어라. 이 대사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혹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 나오는 이혼조정 기간? 하지만 이곳은 법정이 아니라 병원 진료실이었다. 의사 헬렌과 마주 앉아 있는. 내가 겪고 있는 증상과 지난번 해프닝을 설명하면서 “내 친구가 그러는데 그게 공황 발작일지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덧붙인 참이었다. 헬렌은 자기 생각에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31장이나 되는 종이뭉치를 건네주었다. 잘 읽어본 뒤 마지막 장에 있는 질문에 답을 해서 4주 후에 다시 만나자는 것이다.


받아 든 자료 앞에 Anxiety라는 큰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불안? 나는 지금 공황을 말하고 있는데 왜 불안에 관한 자료를 주었을까. 혹시 영어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뭔가 실수를 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분명히 헬렌의 입에서도 공황 발작 - 패닉 어택이란 단어가 나왔었던 것 같은데.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이게 내가 봐야 할 거 확실한가요? 저 공황 아닌가요?”․

“네, 같은 거예요. 가서 읽어보시면 알 거예요.”


공황이 왜 불안과 같다는 것인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자료를 가방에 넣었다. 받아 들고 온 자료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4주란 시간은 길고, 영어로 되어 있는 자료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법이므로. 하지만 곧 31장을 꼼꼼히 읽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헬렌을 만나고 온 2주 뒤, 두 번째 공황 발작(그때까지는 의심만 했던)이 왔다. 아침부터 몸 상태가 꽝이라고 생각했던 날, 자꾸만 눕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생각했던 날, 이러다가 또 발작이 오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휴대폰으로 공황에 관해 정보를 찾고 있던 딱 그때에 실제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불현듯 정인이의 말이 떠올랐다.


“언니, 그거 앞으로 계속 올 거야.”


이번에는 집이 아니라 스포츠 센터에서였다. 오한이 들면서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도무지 멈출 수가 없는 떨림이었다. 어지러웠다. 눈앞이 뿌옇게 되는 것 같은 착시현상도 생겼다. 호흡을 깊게 하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고 나에게 다가와 괜찮은지 물었다.


“아무래도 패닉 어택인가 봐요.”


그녀와 센터 직원이 나를 비어 있는 방으로 데려가 매트를 깔고 눕히고는 구급차를 불렀다. 지인은 교사였는데 이런 일을 많이 겪었다고 하면서 복식호흡을 시범 보였다. 숫자에 맞추어 그녀를 따라 했다. 떨리는 증상과 저림 증상이 번갈아 나타났다. 이번에도 40분 정도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증상이 사라졌다. 구급차는 취소했고 퇴근하던 남편이 센터로 달려와 나 대신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발작이 계속 올 거라는 정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첫 번째 경험 이후 전혀 그럴 낌새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은연중에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정도로 약한 사람이 아니니까. 게다가 아직 의사에게 확실히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나를 흔들고 있는 힘의 정체를 알아야 했다. 지배당하고 싶지 않았다. 우주의 평화는 나의 임무가 아니니까. 불안 장애. 정말 이 글자에 답이 있는 것일까. 책상을 뒤져 헬렌이 준 자료를 꼼꼼히 읽어나갔다.




* 영국 사는 용감한 주부의 불안 장애 분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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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용감한 주부의 불안장애․공황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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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입양 후 알게 된 불안 장애 시스템


2부 - 일상 되찾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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