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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Jul 12. 2020

UN 인턴십이 끝나고... 이제 뭐 먹고살지?

스펙? 쌓아도 부질없더라

[전 회차 몇 줄 요약]

어쩌다 UN 직원을 대상으로 사내 강연까지 하게 된 인턴 나부랭이. 강연 이후 여기저기서 일 좀 도와달라는 러브콜이 쇄도. 정신없는 말년을 보내게 되는데... 근데 나 이제 뭐 먹고살아?




2013년 1월, 어리버리하게 시작한 UN 인턴십이 슬슬 끝나갑니다. UN 인턴이 동일한 기관에서 최장으로 근무할 수 있는 기간은 6개월입니다. 국제회의 서포트, 인포그래픽 제작, 사내 강연 등 정신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계약 기간인 6개월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인턴 생활 나름 잘했다면서?
그럼 정직원으로 전환해달라고 하면 안 되나?
▶ 불가합니다. ^^;


UN은 계약직이라도 최소 '석사' 학위를 보유해야 합니다. 저는 학부도 졸업하지 않은 쪼무래기였는데, 대부분은 인턴도 석사 학위를 갖고 있습니다. 정직원은 관련 분야에서 최소 7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박사학위 보유자가 대부분입니다. 거기다 UN은 한국 공무원보다 훠어어어얼씬 철밥통이라서 정직원 자리 자체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UN 들어가는 문턱은 높기만 하여라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1. 근무했던 UN 사막화방지기구 말고 다른 UN 기구로 인턴십 지원한다. (예 : WHO, UN 기후변화협약, 유네스코 등)

2. 한국으로 돌아가 대학으로 복귀하여 일단 학부 졸업한다. (졸업까지 2학기 남은 상태) 그 이후 대학원을 가든 아니면 다른 길을 가든 정한다.


다른 UN 기구로 간다면 친한 상사, 동료 직원이 추천서를 써준다고 합니다. 흠... 어쩐다. 머리 싸매고 고민해도 정답은 없습니다. 졸업을 하긴 해야하는데, 다른 UN 기구에서 일해보는 것도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운이 좋다면 UN 기후변화협약 같은 기구에서 인턴을 할 수도 있었겠죠


결국 내린 결론은 '귀국'.
일단 졸업하자 였습니다.


UN은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꿈의 직장입니다. 매주 금요일 오전에는 직원을 위한 요가 교실이 열렸고, 사무실로 찾아오는 출장 마사지 서비스는 물론 그 당시 (7년 전)에는 센세이션 했던 재택근무도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복지와는 별도로 UN의 업무 분위기는 글쎄요...? 저야 정말 운 좋게 이것저것 일을 따냈지만(?) 보통 인턴은 근무 기간 내내 연하장을 보내거나 단순한 메일 업무만 처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더군다나 엄청나게 느린 의사결정 속도. 국제회의를 하면 약 150개국 대표들이 모여 UN 문서를 놓고 토론을 하는데 단어 하나를 바꾸는데 2-3일이 걸리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많은', '대부분', '대다수' 중 어떤 단어를 선택하나) 

단어 하나를 결정하는데 밤샘 토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정직원은 철밥통이기 때문에 몇십 년 동안 근무한 상사가 대부분입니다. 조직 문화 자체는 유연하지만 그 속의 콘텐츠는 '고여'있지요. 

그리고 다른 UN 기구에서 인턴을 하더라도 '인턴은 인턴'입니다. 아무리 인턴 경험이 많아도 석사 학위가 없으면 계약직도 평생 못합니다. 그래, 평생 인턴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심지어 무급인데) 일단 학사라도 끝내자고 결정합니다.  



다시 대학생으로

6개월간 근무를 마무리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여름방학 기간입니다. 돌아오자마자 신촌의 파X다 학원에서 잡무처리를 해주는 대신 무료로 토플 수업을 들었습니다. 혹시 일 년 후쯤 석사 유학을 하게 된다면 토플 성적이 필요할 테고, 반년 간 영어로 일했으니 그나마 지금이 영어 실력이 나은 편이겠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독했다...) 


그리고 9월 개강. 정신없이 1년간 학점을 따고 짧게 짧게 다른 인턴쉽도 했습니다. (환경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그런데 도저히 모르겠더라고요. '나 무슨 일 하고 싶지?' '나 왜 UN에서 일하고 싶었더라? 아 돈 많이 주고 간지 나니까.' 

그럼 석사 전공 뭘로 선택해야 하지? 나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 모르겠다. 뭘 하고 싶은지 진짜 모르겠다... 그냥 취직이나 할까? 고민하기 귀찮다...



취준생과 멘탈

그때부터 그냥 취직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대학 전공인 '사범대 - 과학교육학과'는 어디 써먹어야 되지? (애당초 선생님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냥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되네. 어디 들어가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결국 돌고 돌아, 하고 싶은 게 없는 건 UN에서 일하기 전과 같구나) 공채 모집하는 기업을 쭉 나열하고, 연봉 많이 주는 곳 위주로 이력서를 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스펙업 카페를 들락거렸던 시절) 


그때였습니다. 인생에서 자존감이 가장 낮았을 때.

전공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학벌, 영어점수, 인턴경험, 학점... 어느 것 하나 빠지진 않다고 오만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죠. 10개 가까운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면접은커녕 서류에서 줄줄이 탈락. 처음 탈락 메일을 받았을 땐 '나 안 뽑으면 누구 뽑냐'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엔 '아, 합격 통보 메일 열어보기 너무 무섭다.. 


각양각색의 불합격 통보 문구...

어차피 또 탈락이겠지' 이렇게 자포자기하게 되더라고요. 진짜 이것저것 경험도 많이 쌓고, 학점도 열심히 관리했는데 다 부질이가 없네.  인적성 공부하고 취업 스터디도 하고. 대학교 입시 준비할 때도 이렇게 멘탈 나가진 않았는데. 장바구니 담듯 담아서 가고 싶은 곳 중 하나 그냥 고르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가까스로 2-3곳에서 서류 합격 통보를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한 기업에 합격합니다. '석유화학회사'. 화학공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경영지원'이라는 모호하고 애매하고 추상적인 포지션으로 말입니다.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까요...? 평범한 직장인의 삶.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해 오전엔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그런 직장인의 삶..? UN은 이제 영영 안녕일까요. 전 무엇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한 번 사는 인생, 기깔나고 간지나게 살아야지.
누구보다 찬란하고 눈부시게.



Upcoming.. 목차


· 환경부 장관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다 (석유화학회사 근무기)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을 찾다

· 에필로그


(부록) 

· UN 붙었다고 끝이 아니다. 출국 전 준비해야 할 A to Z (피곤 주의)

· 독일에서 둥지 틀기 - 완벽한 워라밸이란 이런 것?




UN에서 일하는 가장 쉬운 방법 (이전 글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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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누리

운동과 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석유화학회사를 때려치우고 와인 공부하다 스타트업에 정착했다. 2019년 한 해동안 1,200개 가 넘는 커뮤니티 이벤트를 개최했다. (자칭 이벤트 전문가) 창의성과 영감이 샘솟는 삶을 위해,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과 문장들을 수집 중이다. 


(현) 패스트파이브 커뮤니티 크리에이터팀

(전) 독일 UNCCD(유엔사막화 방지기구) FCMI 팀

석유화학회사 환경안전경영팀

서울대학교 과학교육, 글로벌환경경영 전공

산림청 주관, 유네스코 - DMZ 지역 산림 생태 연구 인턴

한국장학재단 홍보 대사

4-H 동시통역사, 캐나다 파견 대표

서울대학교 아시아 연구소 1기 인턴 팀장

서울대학교 국제 협력본부 학생대사 이벤트 팀장

와인 21 객원 기자, 레뱅드매일, 파이니스트 와인 수입사 홍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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