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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Apr 12. 2023

바빠요? 곧 현장 갈 건데. 갈 거면 같이 가든가.

제16화

[이 글은 현재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연대기로 정리하는 시리즈 글입니다. 브런치와 네이버 카페 강한 영어학원 만들기에 업로드합니다.]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이대로 다시 가라앉을 순 없었다.


작은 가방을 챙겼다.


안에는 500ml 삼다수와 샤오미 보조 배터리를 챙겼다.


집을 나서면서 어플을 켰다.


공유자전거 어플이었다.


다행히 집 바로 근처에 몇 대가 있었다.


그중 하나를 타고 무작정 나섰다.





목적지는 큰 아파트 단지와 시장 근처였다.


내가 찾는 곳은 인테리어 가게와 타일 및 도기 가게였다.


보통 인테리어 가게는 직접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PM 같은 개념이다.


소비자에게 인테리어나 리모델링 같은 프로젝트 수주를 따고, 도배든 타일이든 필요한 인력들을 따로 구해서 중간에서 마진을 먹는 구조다.


동네 인테리어 가게에 가면 분명 타일 공사를 하는 프로젝트가 있을 것이고, 사장님은 타일 일을 하는 사람과 알고 지낼 것이다.


그럼 메지 일을 배울 수 있는 물꼬를 틀 수 있지 않을까?


약 20년 된 아파트 대단지 앞 상가, 첫 번째 가게 앞에 자전거를 잠시 정차하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제가 메지 일을 배우고 싶어서 그런데요. 혹시 사람 안 필요하신가요?”


“아이고. 젊은 아가씨가 왜 힘든 일 하려고 그런데?”


첫 번째 사장님은 아쉽지만 메지만 따로 사람을 구하거나 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혹시 주변에서 사람을 구하면 연결해 달라고 내 전화번호를 남기고 나왔다.




두 번째 가게는 벽지 지물 가게였다. 가게 이름은 <종로지물>.


차가 없어서 도배는 어려울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내심 미련이 남아서 일단 들어갔다.


사장님께 도배 일을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어떤 일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으셨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때로는 처음 만난 낯선 이에게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더 쉬운 순간들이 있다.


사장님은 내 말을 다 들어주시고는, 사장님이 어린 시절부터 어떻게 자랐고 어떻게 이 가게를 일구게 되었는지에 대해 4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말씀하셨다.


지금은 힘들어도 이렇게 열심히 살려하니 분명 잘 될 거라고 덕담도 잊지 않으셨다.


결국 내가 원하는 도배 일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가족에게도 속 시원히 털어놓기 힘든 마음을 비우기도 했고 40분 동안 무료 푸념 털어놓기와 인생 상담을 했다 치면 손해 보는 거래도 아니었다.





며칠 동안 몇 곳의 인테리어 가게에서 모두 별 소득이 없었던 차에, 어느 날 어김없이 자전거 순회를 하다 들어간 <이삭인테리어>.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는 메지 일을 배우고 싶은데요. 혹시 사람 안 필요하신가요?”


“음? 메지일? 흠. 지금 혹시 바빠요? 곧 현장 갈 건데. 갈 거면 같이 가든가.”




10분 뒤, 나는 하얀색 현대 포터 트럭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그 길로 현장으로 출발했다.




<다음 화에 계속>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1화 영어 이름으로 제니퍼를 정했는데 철자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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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내가 수업 시간에 최초로 ‘외운’ 영어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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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별스럽지 않은 날의 퉁퉁 불은 오뎅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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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문제는, 나는 그들과 비슷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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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나는 동그라미 모양인데 그 회사는 별 모양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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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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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다음 날, 나는 인사팀에 면담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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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자리에 앉자마자 팀장님은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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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팀장님에게 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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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선생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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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부서 배치 열흘 만에 질병 휴직계를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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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겨둔 마지막 약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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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화해는 둘이 하는 거지만, 용서는 혼자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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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오래된 건물의 3층, 풀 냄새가 진동하는 도배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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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생초짜에게 일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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