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로 Apr 13. 2023

눈물이 핑 돌려는 걸, 괜히 코를 컹 하고 들이마셨다

제17화

[이 글은 현재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연대기로 정리하는 시리즈 글입니다. 브런치와 네이버 카페 강한 영어학원 만들기에 업로드합니다.]





하얀 포터 트럭을 타고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타일 도매상이었다.


도심 외곽에 외딴섬처럼 엄청나게 큰 건물과, 그 옆에 딸린 창고가 보였다.


“내리자.”

“네, 삼촌.”


트럭을 타고 오는 동안 사장님 사장님 하면서 이것저것 물었더니 그냥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호칭을 정리해 주셨다.


타일 도매상에는 정말 다양한 타일들과 약간의 도기들이 있었다.


'쩝. 타일 종류가 이렇게 많다니. 타일 디자이너도 있겠지? 세상엔 내가 모르는 직업들이 아직도 많겠네.'


어떤 고객에게 선택될지 기다리는 빤딱빤딱한 타일들이 마치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나 같았다.


미리 골라둔 것이 있으셨는지 이삭인테리어 삼촌은 금방 결제까지 마쳤다.








트럭 뒤에 타일을 잘 싣고 향한 곳은 어느 동네 시장 노래방 상가의 화장실.


오래된 화장실을 리모델링하는 일이었다.


1층은 상가 출입구, 지하 1층은 노래방, 그리고 그 사이 중간 지하 0.5층쯤에 있는 화장실이었다.


도착하니까 현장에 모르는 사람이 밑작업을 이미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일단 꾸벅하는 나를 보고 누구냐는 듯 힐끗 보고는 이삭 삼촌을 바라본 그는 삼촌과 종종 함께 일하는 조용한 분이었다.


“어, 내 조카야. 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오늘 구경이나 하라고 데리고 왔어.”


나는 어느새 알게 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이삭 삼촌의 조카가 되어 있었다.


무턱대고 찾아온 애로 나를 소개하면 조용삼촌이 이상하게 볼 까봐 그랬던 걸까.


조카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큰데(?).


어쨌든 이 작은 배려에 코 끝이 순간 찡했다.


회사에서도 내가 힘들 때 도와줬던 파트장님과 능력자 동료가 떠올랐다.


어딜 가도 힘든 일 있다지만, 어딜 가도 도와주는 사람도 있구나.


모르는 사람의 조카가 되는 건 꽤나 따뜻한 일이구나.


눈물이 핑 돌려는 걸, 괜히 코를 컹 하고 들이마셨다.







이삭 삼촌이랑 조용 삼촌이 열심히 타일을 자르고 붙이고 하는 동안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뒷정리를 했다.


CU 편의점에 가서 2+1 하는 대왕 비타오백도 사 와서 셋이 하나씩 나눠먹었다.


노래방 화장실 작업은 하루 이틀 더 걸려 마무리했고 그다음엔 OO동 빌라 202호의 화장실 수리였다.


202호는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사시는 집인데 에어컨이 없었다.


비좁은 화장실에서 오로지 선풍기 바람 하나에 의지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삼촌은 일을 끝냈다.



“오늘 봤지? 현장은 이렇게 힘든 곳 많어. 더운 곳, 더러운 곳, 위험한 곳. 너 그래도 계속할 거야?”


아직 내가 직접 해 본 건 아니니까,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너 그럼 타일메지 하지 말고, 돔해, 돔.”


“돔이 뭐예요?”


“화장실 천장이 보통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지? 그게 돔이거든. 이건 여자애가 하기 그나마 괜찮을 거 같다. 어디 보자.”


이삭 삼촌은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내일부터 일 배우는 애 하나 거기로 갈 거라고, 잘 가르쳐 보라고 했다.


다음 날, 나는 크고 작은 업체들이 모여 있는 공단의 한 창고 앞으로 쭈뼛거리며 도착했다.


창고 앞마당에서 종이컵에 맥심 커피믹스를 마시고 있는 6개의 눈이 나에게 꽂혔다.



<다음 화에 계속>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1화 영어 이름으로 제니퍼를 정했는데 철자를 모르겠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199

2화 내가 수업 시간에 최초로 ‘외운’ 영어 문장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1

3화 별스럽지 않은 날의 퉁퉁 불은 오뎅꼬지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4

4화 문제는, 나는 그들과 비슷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6

5화 나는 동그라미 모양인데 그 회사는 별 모양이라서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7

6화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8

7화 다음 날, 나는 인사팀에 면담을 요청했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9

8화 자리에 앉자마자 팀장님은 말씀하셨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0

9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팀장님에게 연락했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1

10화 선생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2

11화 부서 배치 열흘 만에 질병 휴직계를 내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3

12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겨둔 마지막 약 하나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5

13화 화해는 둘이 하는 거지만, 용서는 혼자 할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6

14화 오래된 건물의 3층, 풀 냄새가 진동하는 도배학원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7

15화 생초짜에게 일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8

16화 바빠요? 곧 현장 갈 건데. 갈 거면 같이 가든가.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19





매거진의 이전글 바빠요? 곧 현장 갈 건데. 갈 거면 같이 가든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