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身心의 사용설명서 2부
호흡이 지혜가 되는 문6화

by 순야 착지

2부 호흡이 지혜가 되는 문

6화: 가짜 ‘나’와 진짜 ‘나’ 구별하기 [환(還)에서 정(淨)으로]


우리는 하루에도 수만 번 ‘나’라는 말을 씁니다. 내가 기쁘다, 내가 화났다, 내 것이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정작 그 ‘나’가 누구인지 물으면 말문이 막히곤 합니다. 육묘법문의 다섯 번째 단계인 환(還)의 정점에서, 우리는 드디어 이 거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삼제원융(三諦圓融)으로 본 자아의 실상

천태 지혜의 핵심인 삼제원융은 우리가 '나'라고 믿는 존재를 세 가지 관점으로 비춥니다.

공제(空諦): '나'라는 고정불변한 알맹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텅 비어 있는 것입니다.

가제(假諦): 그러나 비어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연에 따라 잠시 이름 붙여진 '나'라는 현상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가(假)의 나’입니다.

중제(中諦): 비어있으면서(空) 동시에 존재(假)하는 이 역설적인 실상이 바로 '진짜 나'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고통은 '가(假)의 나'를 '영원한 나'로 착각할 때 발생합니다. 인연에 따라 잠시 맺힌 구름을 바위라고 믿으니, 구름이 흩어질 때 바위가 깨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뇌과학이 규명한 ‘서사적 허구’로서의 자아

놀랍게도 현대 뇌과학은 천태의 가제(假諦)를 과학의 언어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지과학자 대니얼 데넷(Daniel Dennett)은 자아란 실체가 아니라 뇌가 삶의 파편들을 모아 일관성 있게 엮어낸 '서사적 자아(Narrative Self)'라고 정의했습니다.

뇌과학의 권위자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S. Gazzaniga) 또한 좌뇌에 존재하는 ‘해석기(Interpreter)’ 모듈이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들을 사후에 조작하여 일관된 이야기로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즉, 우리가 느끼는 견고한 자아란 사실 브루스 후드(Bruce Hood)가 말한 '서사적 허구'이자 뇌가 생존을 위해 편집해낸 시나리오에 불과합니다. 인연(정보)이 바뀌면 시나리오(자아)도 바뀌는 '가(假)'의 존재임을 과학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전 기술] 행주좌와(行住坐臥) 호흡으로 ‘나’라는 감옥에서 나오기

지혜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걷고, 머물고, 앉고, 눕는 일상의 모든 순간인 행주좌와(行住坐臥) 속에 녹아들어야 합니다. 이제 고통이나 번뇌가 밀려올 때, 심리학자 매슈 리버먼(Matthew Lieberman)의 라벨링 기술과 호흡을 결합하여 수행해 보십시오.

숨을 들이마시며 ‘라벨링(Labeling)’ 하기

코끝으로 들어오는 숨을 느끼며, 지금 내 마음을 지배하는 생각에 이름을 붙입니다. "들이마시는 숨에, 뇌의 해석기가 '불안'이라는 서사를 집필하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숨을 머금으며 ‘가제(假諦)’ 확인하기

잠시 숨이 머무는 찰나, 이 서사의 실체를 꿰뚫어 봅니다."잠시 머무는 숨 속에서, 이 불안은 인연에 의해 나타난 '가(假)'의 현상일 뿐임을 확언합니다."

숨을 내뱉으며 ‘거울(스크린)’로 돌아가기

숨을 길게 내뱉으며, 모든 집착을 함께 흘려보냅니다."내뱉는 숨과 함께, 나는 시나리오 속 주인공에서 벗어나 이 모든 것을 비추는 거대한 '마음 스크린'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고통이 아니라, 고통이 상영되는 텅 빈 공간임을 깨닫는 순간 '나'라는 감옥의 문은 열립니다.


[천오백 년의 처방전]

오늘의 증상

과거의 트라우마나 습관적인 성격에 갇혀 "나는 원래 이래"라며 괴로워한다.

타인의 평가나 사회적 지위에 나의 존재 가치를 동일시하여 불안을 느낀다.

천태의 진단 키워드

가제(假諦): 고정된 실체는 없으나 인연에 따라 임시로 존재하는 나를 인정함.

서사적 자아: 대니얼 데넷과 마이클 가자니가가 규명한 뇌의 편집 작용을 이해함.

천태의 처방

뇌가 써 내려가는 '나'라는 소설에 속지 않는다.

인연에 따라 변하는 '가(假)의 나'를 지혜롭게 활용하되, 그것을 '진짜 나'라고 고집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및 추천도서]


브루스 후드 저, 조현욱 역, 『self란 무엇인가』(The Self Illusion), 바다출판사, 2013.11.15; 뇌과학과 심리학을 통해 자아가 어떻게 뇌에 의해 조작된 환상(Illusion)인지를 파헤치며, 가제(假諦)의 현대적 의미를 학술적으로 설명함.

마이클 가자니가 저, 박택규 역, 『뇌로부터의 자유』(Who's in Charge?), 추수밭, 2012.01.10; 좌뇌의 '해석기' 기능을 규명하며, 우리가 주인이라고 믿는 자아가 사실은 뇌의 사후 해석 결과물임을 밝혀냄.

매슈 리버먼 저, 최호영 역, 『사회적 뇌』(Social: Why Our Brains Are Wired to Connect), 시공사, 2015.01.26; 감정 라벨링이 뇌의 편도체 안정화에 미치는 영향 등 사회적 지능과 자아 통제에 관한 뇌과학적 원리를 서술함.

에크하르트 톨레 저, 노혜숙·유영 역,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A New Earth), 연금술사, 2013.05.20; 생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에고(가짜 나)의 메커니즘을 폭로하고, 현존을 통해 진짜 존재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안내함.


[연재 안내]

<내 몸과 마음의 사용설명서> 제2부 <호흡이 지혜가 되는 문>는 매주 화요일 10시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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