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송정, 장성, 정읍, 신태인, 김제, 익산, 강경, 논산, 계룡 그리고 서대전. KTX 열차인 줄 알고 탔던 ITX 정차역입니다. 마치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듯 했던 정차 역은 참 낯선 도시였습니다. 한번도 밟아 보지 못한 곳은 없지만 하루 이상 머문 곳도 없습니다. 무엇이 그리 바빴을까 싶습니다.
마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라는 소설 제목이 떠 오른 감성이었습니다. 한 시간이면 도착했을 곳에 두어시간 걸려 내리니 풋풋한 웃음이 지어지더라고요. 그것이 무엇인지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으나 기분 나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다음에는 'K'와 'I'를 잘 구별하자는 다짐이 유일한 수확이었을 뿐입니다.
In the Winter Garden, 1879
평판이 협력을 끌어내는 과정은 사실 말처럼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그 과정은 한마디로 험난한 뭇사람들의 추론의 허들을 넘어야 합니다.
죄수의 딜레마 모형을 보면, 분명 두 사람이 협력(침묵 - 침묵) 하면 형량을 모두 줄일 수 있는 이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고집스럽게 배신(자백 - 자백)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아주 쉽게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바보 같은 놈들 협력하면 될 것을~'이라는 말 말입니다. 사실 이 말은 맞습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말이죠. '추론의 과정'을 거친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추론은 인류가 진화하고 생존하는 데 있어 '정보'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 능력을 제대로 잘 쓰면 공동체는 외부 위협을 곧 잘 피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기술 문명을 발전시킨 데에도 한몫을 했지요. 이를테면 우연이 불을 발견한 인류는 불의 용도를 다방면으로 추론함으로써 기술과 문명 발전의 초석을 이뤘습니다. 그 위대한 추론이 '평판'과 '협력' 사이로 들어오면 다양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큰 선행을 했을 때 만인이 모두 그 사람을 칭송하지는 않습니다. 일부는 그 선행에 의도가 있는지를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평판 이익'과 '지위 이익'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도덕적 우위까지 차지 합니다.
또 다른 예로 채식주의자는 육식주의자들에게 끈질긴 조롱, 폄하, 조롱 섞인 살해 위협을 당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고기소비를 줄이는 식생활이 도덕적으로 가치 있고, 동물의 고통을 줄일 수 있으며, 식탁 위 음식 조리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채식주의를 선택했다면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도 작은 협력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의 행위를 의심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우리를 모두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라는 한 사람의 토로는 너무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반응 아닌가 싶지만 한번 생각해 볼 만한 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이유라면 '익명으로 기부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 납득이 됩니다.
'협력의 유전자'를 쓴 니컬라 라이하니 런던대학교 진화생물학 교수는 소셜 미디어 상에서 2010년 모금 플랫폼 저스트기빙 Just Giving이 실시한 조사를 인용, 그 시사점으로 '선행을 의심'하는 '오염된 이타주의 tainted altruism' 효과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저스트 기빙이 낸 보고서에는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기부 웹페이지에 '좋아요'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기부금도 약 5파운드(한화 약 7천 원) 씩 늘어난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에 고무된 고무된 저스트 기빙은 기부를 한 사람에게 모금 웹페이지를 공유할 것을 부탁하는 문구를 띄웠죠.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저스트 기빙은 대책 마련에 들어갔고, 그중 공개적으로 기부를 자랑하는 문구는 가장 효과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놀랍도록 멋진 사람입니다. 기부한 사실을 널리 알리세요!' 또는 '친구들도 기부에 관심 있지 않을까요?' 문구 역시 효과가 없었습니다.
'친구의 모금 웹페이지를 공유해 더 많은 기금을 모으게 도와주세요!'라는 문구가 효과가 가장 좋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자신이 착한 일 즉, 기부를 했다는 명분을 줬고, 둘째, 내가 기부한 사실을 뽐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돕고자 공유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과는 기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추세가 28퍼센트가량 늘었고, 기부금액이 당해 연도에 300만 파운드(한화 약 46억 원)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문구를 바꿨을 뿐인데 사뭇 다른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니컬라 라이하니 교수는 이 조사 결과에 대해서 선행의 의도를 무턱대고 추론하는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선행이 평판 이익과 지위 이익을 안겨주는 도깨비방망이는 아니다'라며, 선행을 어떤 경쟁 행위로 인식하는 '오염된 이타주의' 태도에서 벗어나라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제일 먼저 내가 뒤집어 쓰고 있는 '오염된 이타주의'는 없는지 살피는 게 기부를 대하는 협력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