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 엔드게임> 개봉전까지 마블 영화 보기 19화
앤트맨 정체성의 불확실성과 불안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앤트맨은 영화 내내 불안과의 싸움을 한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스콧 랭은 범죄자가 되었고 2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하게 된다. 한 발짝이라도 거주지를 벗어나는 순간 스콧 랭은 다시 범죄자가 된다. 스콧 랭은 이제 하루만 버티면 보호 감찰을 받지만 자유의 몸이 된다. 그러나 스콧 랭은 행크 핌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해크 핌과 호프에 의해 집에서 나오게 된다. 다만, 스콧 랭을 대신해 거대한 개미가 스콧 랭의 전자 발찌를 차고 있다. 영화 내내 스콧 랭은 불안에 떤다. FBI가 스콧 랭이 거주지를 이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는 범죄자가 된다. FBI는 스콧 랭이 개미가 차고 있는 전자 발찌 때문에 스콧 랭이 집에 갇혀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직접 스콧 랭의 거주 사실을 보기 전에는 스콧 랭이 스콧 랭 자신인지 개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끊임없이 FBI는 스콧 랭의 집을 찾아가 스콧 랭이 집에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한다. FBI도 눈으로 보기 전에는 불확실성의 상태에 놓여있고 외부에 나와있는 스콧 랭도 영웅적 정체성과 범죄자의 정체성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스콧 랭 즉 앤트맨은 실존적 불안을 느끼고 있다. 스콧 랭이 개그 캐릭터여서 느껴지지 않지만 말이다. 고스트와의 결전이 있은 후 FBI는 스콧 랭이 거주지를 이탈했다는 사실을 알고 스콧 랭을 추적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거대한 앤트맨이 벽을 등지고 숨어 있는 모습을 통해 FBI는 스콧 랭을 범죄자로 확정지었다. 그러나, 거대한 앤트맨 수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즉, 우리가 시각으로 보는 행위와 그것이 실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행위는 인간의 감각의 한계성과 불안을 야기시킨다.
고스트의 실존과 불안
고스트는 '슈뢰뒹거의 고양이'를 현실판으로 반영한 인물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사고 실험이다. 고양이를 완전히 밀폐된 상자에 넣어 놓는다. 고양이는 한 시간 후에 1/2확률로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다.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상자를 열어보았을 때다. 양자역학에서 고양이가 상자에 갇혀있을 때는 삶과 죽음이라는 상호배타적인 개념이 상자 속에서 동시에 존재하며 연구자에 의해 관찰될 때만 고양이의 삶 혹은 죽음이 하나로 확정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철학적으로 인간의 존재와 불안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스트는 아버지의 실험 실패로 인해 부모를 잃고 존재 자체가 불완전하게 변했다. 고스트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다. 즉, 삶과 죽음의 경계선 상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겠다. 고스트는 매일매일이 불안의 연속이다. 고스트는 매일매일 신체가 분해되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한다. 현대사회는 이성의 빛으로 자연의 질서, 사회질서를 파악하고 모든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를 진보로 보았다. 진보의 세상에서 모든 것은 에너지로 환원가능하다고 믿는다. 이와 더불어 인간 또한 기술적으로 이용가능한 에너지로 환원되다. 이때 인간은 사회에서 진정한 존재가 사라지는 시대에 살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죽음과 고독에 빠져살게 된다. 고스트는 죽음 앞에서 '일상'은 사라지게 된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그동안 소중하다고 여기는 부와 명예 따위가 무의미해진다. 고스트의 앤트맨과 아스프와의 갈등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고민과정으로 볼 수 있다. 고스트가 악당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가 내일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사라져 가는 자신의 실존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실존적 불안을 이겨내게 하는 사랑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과연 우리가 보는 세상은 불확실하며 개인의 실존 또한 불안한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불안의 실체란 무엇인가. 마블에서 말하고 있는 불안이라는 것은 바로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관찰하며 평가하기 때문에 현대의 인간은 언제나 불안하다. 앤트맨이 영웅인지 범죄자인지 확인하는 것은 바로 FBI다. 하지만 스콧 랭의 선한 동기와 행동을 보면 그는 영웅이다.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리가 돈, 명예, 영향력을 얻고 싶은 이유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고스트처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가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기행을 펼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동기는 다양하겠지만 종국에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어하지만 타인에게 사랑을 주려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을 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연인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이나 수많은 가족과 연인들이 서로 갈등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행크 핌과 호프는 밴 다인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불확실한 양자역학의 세상에서 그녀를 찾아냈다. 빌 포스터는 고스트가 자신의 딸은 아니지만 그녀를 딸같이 사랑했고 그녀가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스콧 랭도 끊임없이 자신의 딸인 캐시 랭을 사랑해준다. 사실, 캐시 랭의 경우 이혼 가정 하에 놓여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정체성에 불안이 올 수 있다. 그러나, 스콧 랭의 끊임없는 사랑으로 인해 캐시 랭은 언제나 행복한 아이로 자라나게 된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가족영화로 치부해서 '가족은 언제나 가족구성원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영화의 주제를 반만 본 것이다.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받는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은 매우 불안정하며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하게 되면 대중의 사랑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게 된다. 사랑은 하는 동시에 받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하지만 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은 아니다. 내 몸매, 얼굴, 부와 명예 때문에 받는 사랑은 허깨비와 같은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꾸미지 않더라도 어떤 모습을 보이더라도 사랑해주는 단 사람이 있다면 우리 안의 불안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서 사랑을 무조건 받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타인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타인을 사랑하는 행위는 과거에도 쉽지는 않았을 테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더 힘들어진 것 같다. 사랑은 일종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희생이라는 것이 목숨을 거는 것도 있겠지만 자신의 시간과 금전과 에너지 등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사랑이 힘든 이유는 현대인들이 너무나 합리적으로 변해서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아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오로지 자기자신의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매일매일의 삶이 얼마나 불안한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타노스의 핑거 스냅과 삶
앞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를 했는데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실험이 일어났다. 고양이가 1/2확률도 삶과 죽음이 갈리는 것처럼 <앤트맨과 와사프>의 쿠키영상에서 우주 인구의 반이 사라지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사랑을 받고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사랑을 하라고 메시지를 던진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스콧 랭이 동네 아저씨 히어로지만 멋있게 보이는 이유도 딸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토니 스타크가 이기적으로 보였지만 피터 파커를 사랑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타노스는 달랐다. 타노스가 생각하기에 인구가 계속 늘어나며 생산성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면 당연히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그리하여, 타노스는 공평한 심판관이 되어 우주의 절반을 핑거 스냅으로 제거해 버린다. <어벤저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울트론과 타노스는 세상을 지키려는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울트론이 구약 성경의 심판의 하나님만을 보고 사랑을 보지 못했다는 점, 타노스의 고민은 합리적이었으나 그 안에 생명에 대한 사랑이 전혀 없었다는 점은 그들이 비뚫어진 사상을 가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타노스는 자신의 사랑하는 양녀 가모라를 죽여버렸다. 독재자는 자신의 삶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고 성인은 자신을 희생시켜 모두를 살린다.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쿠키 영상에서 타노스에 의해 인류의 절반이 사라지는 모습은 타노스의 생각이 옳다 할지라도 그가 얼마나 잔인하고 비극적인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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