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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onuk song Feb 11. 2016

14. 외갓집 차례 지내기

독일 아내와 한국남편의 한국 생활기 - 명절증후군

나와 같이 회사를 다니던 여러 며느리들은 명절에 출장이 잡히면 겉으로는 툴툴거리면서도 크게 군소리를 안 했다. 그래도 명절에 일하러 간다는 티를 내기 위해 한 번은 튕기곤 했다.


"김 과장, 출장  다녀와야겠다."

"어머, 설인데요?"


얼마 전부터 추석이나 설이 되면 꼭 나오는 기사가 명절 후 이혼율에 대한 기사이다. 명절이 서로에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남녀의 사회적 역할이 변하는 만큼 전통에 대한 우리의 생각의 변화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非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는 우리 명절 모습은 어떨까? 아내는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다. 세배를 하고 성묘를 가는 것이나, 차례 지내는 것도 그랬다. 한 상 가득 차린 음식에 조상님 사진을 올려놓고 절을 하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처럼 음식을 놓는 순서와 규칙과, 절을 하고  술잔을 올리는 절차도 모두 신기했다. 그런데 그 속에 숨어있는 갈등을 파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좁은 주방에 쭈그리고 앉아 음식을 하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설거지를 하는 큰어머니, 어머니, 그리고 숙모와 TV 앞에 앉아 있는 일가(남자) 친척 어른들의 대비는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거 뭐야? 왜 남자들은 그냥 앉아 있어?"


불합리를 끊으려고 하시는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차례, 제사 음식을 배울 것을 굳이 강요하지 않으셨다. 외국인 며느리를 들인 핑계로 굳이 고생을  대물림하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제사상을 받아야 하는 입장의 친척들은 못마땅했겠지만 말이다.


내 고향은 경남 양산군에 속해 있다가, 부산이 광역시가 되면서 부산으로 편입된 기장이라는 어촌마을이다. 울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기장으로 가는 길은 즐거운 추억이었다. 기장이 내게 더욱 특별한 것은 친가와 외가가 모두 기장에 있기 때문이다. 기장역에서 내려 엄마와 동생과 셋이 논 밭 사이 시골길을  걸어가던 기억은 참 따듯하게 남아있다. 사실 내 또래 사촌들이 있고, 나이차가 많지 않은 외삼촌, 이모가 있는 외가를 더 좋아했다. 주말에도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거의 같이 가지 못 했지만,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먼저 가는 곳은 항상 친가였다. 걸어서 10분 거리이지만, 어머니는 명절 때도 손님들이 다 오고 나서 설거지가 다 끝나고 나면 그제야 외가로 가셨다. 언젠가 한 번 엄마 가족이 있는 외가에 먼저 가면 안 되냐고 따져 물었다가 당연히 할머니 집에 먼저 갔다가 외가에 가야 한다고 혼난 적이 있다. 그래서 내게 친가는 항상 우선이고, 외가는 후순위가 되었던 것 같다.



장손이라는 부담


그런데 몇 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제사가 서울 큰집으로 올라오면서, 더 이상 기장에 잘 가지 않게 되었다. 때마다 먼 길 가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기는 했는데, 명절인데 서울에만 있기도 좀 명절 기분이 덜 났다. 힘들더라도 벅적벅적하게 다녀와야, 서로 용돈을 드렸다가 다시 주머니에 밀어 넣고 실랑이를 하고 와야 명절 느낌이 났다. 아내도 그런 명절 느낌을 좋아한다. 외가의 따듯한 돌담의 온기를 좋아하고, 늘 뭔가 챙겨주시는 외할머니를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해는 아내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다. 추석과 설 중에 한 번은 외가에 가자는 것이다. 장손인 내가 차례를 안 지내고 외가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아내는 끊질기다. 외가에 가면서 포항, 경주를 들러 구경을 하고, 자갈치 시장에 가서 회를 먹고 싶은 속셈인 건 알지만, 몇 번 없는 연휴를 알차게 보내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마침 그 해에 큰집에 일이 생겨  겸사겸사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고, 아내 바람대로 외갓집에 가게 되었다.


"저 우에(위에) 큰외삼촌 집에서 차례 지내는데 느그도(너희도) 올라갈라나?" 추석날 아침, 작은 외삼촌이 슬쩍 물어보신다.

"그럼요. 가야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낄 곳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절에 다니면서 교회 예배를 참석하면 이런 느낌일까?


덕분에 나는  난생처음으로 외갓집에서 차례를 지냈고, 그제야 비로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 절을 하고 술잔을 올릴 수 있었다. 나는 따지고 보면 외갓집에서도 장손인데 말이다.


추석날 저녁 외갓집 식구들 모두 모여 바비큐를 하자고 한 것은 아내의 아이디어였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좁은  앞마당에 모여 고기를 굽고 야채와 버섯을 굽고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왁자지껄 떠드는 재미. 그게 명절의 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친가에서 차례를 지내든 외가에서 차례를 지내든 내 조상님이고, 제사상에 피자를 올리든, 짜장면을 올리든, 조상님이 좋아하던 음식을 올리는 것이 더 의미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번거로운 고기 산적을 만들고 전을  부치기보다 갈비찜을 만들어 차례상에  올려놓고 나서 오랜만에 모인  친척끼리 나누어 먹어도 되고...


김치도 100년 전에는 우리가 지금 먹는 이런 김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 것은 그렇게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싶어 하는지, 형식보다는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의의를 우선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홍동백서, 조율이시 전통적인 방식으로 차례상을 차려놓고 그런 전통과 맞지 않는 양복을 입고 절을 하는 모습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으로 양복이 가장 잘 차려입는 옷이 되었기 때문이겠지만, 이혼을 불사하고라도 지키고 싶은 차례상 앞에서라면 한복을 입어줌 직도 한데 말이다. 차례상 안 차리고 제사 안 지내는 것을 뭐라 할 것이 아니라, 그 명절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조상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 그 전통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의미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목 차 -

00장. Prologue

01장. 만남

   1) 낯선 곳에서의 인연

   2) 종을 뛰어넘은 표범의 사랑과 훔친 머리카락

   3) 네가 나무를 알아?

02장. 반찬의 나라로

   4)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5) 반찬의 나라로 편도 티켓

   6)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7) 먹 가는 독일 처자

   8) 낯선 곳으로 씩씩하게 내 디딘 첫 걸음    

03장. 결혼 (가제)

   9) 검정 턱시도와 검정 구두? (결혼 준비)

   10) 결혼 할래? 출장 갈래?

   11) 왜 하필 한국 사람이니?                

04장. 씩씩한 독일 여전사

   12) 한국은 극단주의인가봐

   13) 비닐봉지는 "No"

   14) 외갓집 차례지내기

   15) 아름다운 대한민국

   16) 명품 가방

05장. 아이 키우기

   17) 임신과 출산

   18) 혼혈아에 대한 생각

   19) 금지하는  것보다 위험함을 가르치는 것

   20) 육아휴직과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

   21) 어린이집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

   22) Bilingual

06장. 한국 회사와 외국인

   23) 외국인을 위한 자리

   24) 우리의 현실

   25) 우리는 왜 이렇게 일에 미쳐있나

07장. 세계 속 한국, 한국 속 세계

   26) 다문화 사회

   27) 국제커플에 대한 인식

   28)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

   29) 한류에 대한 생각

08장. 인생에 대해 생각하다

   30)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결심

   31) 계속되는 방황

   32) 철밥통을 버리다.

09장.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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