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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onuk song Sep 29. 2015

3. 네가 나무를 알아?

독일아내와 한국남편의 한국 생활기

사귄지 채 100일이 되지 않아 그녀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독일로 다시 날아갔다. 나는 브라질에 그렇게 혼자 남게 되었다. 사실 그러고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어려운 길을 택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얼다가 독일로 돌아가기 전에 몇 번 함께 갔던 여행에서도, 역시나 생각의 차이를 많이 겪었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말들로 심하게 다투었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싸운 날은  하루빨리 그녀가 독일로 돌아가기로 한 그 날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다투고 화해하고 이해하고 하면서 조금씩 서로에게 맞추어지고 있었던 것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떠나간 그녀를 그리워하여 오픈 마인드의 수많은 브라질 미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미 나의 친구들이 되어 버린 그녀의 친구들과 항상  함께했기 때문에, 나는 감히 한 눈을 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정해 두고 웹캠으로 만나고, 편지를 쓰고, 새로 정착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나를 그리며 한국 음식을 배워 요리해 먹었다고 자랑하며 사진을 보내고, 붓글씨를 배워 사랑해요 라고 한글로 써서 책갈피를 만들었다. 나는 그 해 10월 브라질 연수를 한 달 남겨두고 유럽 배낭여행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가는  것보다 조금 싸기도 했거니와 그렇게라도 그녀를 다시 한번 더 볼 수 있는 핑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브라질이라는 꿈같은 곳이 아닌 그녀가 살고 있는 현실 속 베를린에서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가족들을 만나고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20년쯤 된 낡은 블랙 타이거(장인이 타다가 3 자매에게 준 도요타 애칭)를 끌고 공항에서 나를 픽업하고 즐거워하며 들뜬 모습으로 도시 곳곳을  소개해주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낯선 유럽의 한 가운데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꽤나 좋은 기분이다. 철저히 관찰자 시점이 되는 호스텔이나 카페가 아닌 그녀의 집 주방에 커피 한 잔 따라놓고 창밖을 바라보면 이미 그 사회에 반걸음 들어가 그 속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었다. 


직장을 구해 일을 하고 있었던 그녀는 함께 다닐 수 없었지만, 베를린을 거점으로 주변 나라들을 여행했고, 베를린으로 돌아올 때면 또 같이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따로 나와 살면서 넉넉하진 않지만 자유롭고 또 씩씩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도 모든 것이 낯선 유럽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고, 동양인이라는 것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지만 그녀와는 어딜 가든 자연스럽게 그들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시 가까이 있다 보면 또 다툼이 생긴다.


"네가 나무를 알아?" 그녀는 독일 여자였다. 독일 사람들은 여자도 어렸을 때부터 연장을 다루고 못질은 기본이라는 걸 알리가 없었다.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집 정리를 하는 중이었는데 그녀는 방안에 편하게 앉을 수 있게 나무로 우리로 치면 평상을 짜려고 하고 있었다. 강원도 산골짜기 부대에서 목공 작업, 삽질, 땜질, 배관일 등 온갖 작업으로 다져진 예비역 병장이 물론 기꺼이 나섰다. 그런데 왠 걸... 내가 하는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치며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하며 시범을 보여준다. 모로 가나 도로 가나 잘 만들면 되지 뭐가 문제야? 화가 난 나는 큰 소리를 치지만 돌아오는 한 마디는 가관이다. "네가 나무를 알아? What do you know about wood?"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를 잘 했다. 군대에서도 나무 좀 만졌다고 했는데 이렇게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수백만 예비군을 욕먹이는 거라는 생각,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또 크게 다투고 또 다시 회의가 든다. 이 여자가 맞는가? 무슨 여자가 못질에 톱질에... 못도 그냥 박으면 안 되고, 나사로 돌려 박아야 튼튼하며,  한쪽을 다 박고 다른 한쪽을 박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돌아가며 균형을 맞춰서 못질을 해야 한다며, 나처럼 그렇게 하면 튼튼하지 않다고 한다. 남자를 이렇게 무시할 수 있나. 내 실력 발휘를 좀 하며 뽐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 내 기대를 여지없이 또 꺾어 버린다. 내가 여기를 무슨 생각으로 다시 왔을까. 내가 미쳤지. 이미 후회해야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 그렇게 자라 왔던 것이다.


내가  그때까지 독일에 대해 아는 것은, 사실 별로 많지 않았다. 독일 사람은 검소하여 검은 딱딱한 빵과 물만  먹는다는 것. 어렸을 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 조각을 사와서 교실에서 웅변을 했던 친구에 대한 기억. 심지어 독일에 관한 영화조차도 히틀러와 유대인에 관한 것 외에는 본 것이 없었다. 나는 사실 그녀를 안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녀가 어떻게 자라고 살아왔는지 어떤 교육을 받아왔는지 몰랐다. 같은 국적의 여느 커플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내가 살아온 것과 다른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가진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은, 그 만큼 더욱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내가 당연히 옳다고 배워 오고, 믿어 왔던 것들이 틀린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있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삶을 사는, 그리고 삶에 대한 다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못질하는 것에서 인생을  돌아봤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이다. 하지만 내가 그려온 삶의 모습, 인생의 모습이 모두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용납이 안 된다. 대한민국 육군 병장이 이렇게 여자한테 못질 못하고 페인트칠을 못 한다고 무시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내가 유럽 여행 와서 왜 이러고 있나 싶으면서도 다음날 그녀가 회사에 간 동안 작업을 서둘러 마치긴 했다. 서로 이해하고 맞추어 가는 것이 한 순간에 될 수가 없다. 어찌 20년이 넘는 세월을 다른 환경에서 다른 말을 하며 살아왔는데, 예수님, 부처님도 아니고 한 번에 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냥 참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많이 다투고, 싸우는 것이 서로에게 중요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 목 차 -

00장. Prologue

01장. 만남

   1) 낯선 곳에서의 인연

   2) 종을 뛰어넘은 표범의 사랑과 훔친 머리카락

   3) 네가 나무를 알아?

02장. 반찬의 나라로

   4)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5) 반찬의 나라로 편도 티켓

   6)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7) 먹 가는 독일 처자

   8) 낯선 곳으로 씩씩하게 내 디딘 첫 걸음    

03장. 결혼 (가제)

   9) 검정 턱시도와 검정 구두? (결혼 준비)

   10) 결혼 할래? 출장 갈래?

   11) 왜 하필 한국 사람이니?                

04장. 씩씩한 독일 여전사

   12) 한국은 극단주의인가봐

   13) 비닐봉지는 "No"

   14) 외갓집 차례지내기

   15) 아름다운 대한민국

   16) 명품 가방

05장. 아이 키우기

   17) 임신과 출산

   18) 혼혈아에 대한 생각

   19) 금지하는  것보다 위험함을 가르치는 것

   20) 육아휴직과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

   21) 어린이집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

   22) Bilingual

06장. 한국 회사와 외국인

   23) 외국인을 위한 자리

   24) 우리의 현실

   25) 우리는 왜 이렇게 일에 미쳐있나

07장. 세계 속 한국, 한국 속 세계

   26) 다문화 사회

   27) 국제커플에 대한 인식

   28)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

   29) 한류에 대한 생각

08장. 인생에 대해 생각하다

   30)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결심

   31) 계속되는 방황

   32) 철밥통을 버리다.

09장.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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