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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onuk song Sep 29. 2015

4.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독일아내와 한국남편의 한국 생활기

서울로 들어오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 보며  꿈같은 브라질 생활을  돌아본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다. 브라질이라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로 어학연수를 갔고, 한 여자를 만났다. 어학연수가 끝날 무렵 부랴부랴 준비하여 유럽 배낭여행을 가서 그리운 그녀를 다시 보고 왔고, 또 다시 애틋한 그리고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국제 커플에게 공항은 참으로 아련한 곳이다. 그 곳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야 하니 공항에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은 떠오르는 감정들을 추스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게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눈 뜨기 싫은 단 꿈을 꾸다가 갑작스러운 알람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가 그 꿈의 그 애틋한 느낌을 놓치기 싫어 다시 잠들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어느 새 그 감정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눈을 뜨고 만다. 브라질이라는 한국과는 너무나 먼, 너무나 다른 그 자유로운 나라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사랑을 키운 여자친구는 꿈속에 남겨두고 나는 현실 속으로 그렇게 다시 들어와버렸다.


그 해 11월에 한국에 들어온 나는 그 이듬해 봄에 4학년으로 복학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취직 전쟁 준비에 돌입하느라 바빴다. 토익공부를 하고, 이력서를 쓰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듬해 봄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렸다. 3학년을 마치고 전략적으로 선택한 브라질 어학연수가 신의 한 수가 되어, 처음 이력서를 낸 곳에 4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것도 꿈에도 그리던 삼성전자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 입사했으니 꽤나 성공적인 대학생활을 보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인생에서 중요한 질문이 '무엇을' 보다는 '어떻게'가 되었어야 함을  그때 알았다만 조금 더 좋았을 것을. 회사나 그 회사의 겉모습만 보고 그 회사에 다니는 나를 상상하고 있었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깊이 생각하지는 못했다. 긴 대학 생활 동안 그 생각을 못 한 나는 서른 중반이 된 이제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나는 대학생들의 꿈이라고 하는 삼성전자에 입사가 확정이 되었고,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저 멀리 독일 베를린에서 그녀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안 보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당연한 말이었다. 그녀와도 시간이  갈수록 대화 내용은 점점 공감이 잘 되지 않았다. 서로의 얘기를 하지만 우리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별로 많지 않았다. 이렇게 전화통화만 언제까지 하고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얼굴을 보고 온 지도 1년이 다 되어 간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할 뿐이다. 함께한 시간은 짧고 공간적인 제약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 수 없이 많은 일이 내게 닥쳐올 텐데, 이제야 나는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하는 아기 새였을 뿐이었으니까.


연애 초기 브라질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그녀에게 둥근 달을 보며 맥주를 한 잔 기울이며 테라스에 앉아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를 멋지게 설명해 준 적이 있다. 앞으로 우리 앞에 일어날 일은 아무도 모르지만, 걱정할 할 필요 없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상황도 나중에 다시 좋은 상황이 오기 위한 것 일수 있다. 마침 말띠인 그녀가 유독 좋아하는 고사성어이다.


그런데 새옹지마의 그 운명의 말은 어디로 갔는지 돌아올 줄을 모르고, 불투명한 미래 속에 불투명한 관계에 지쳐가고 있을 그 해 여름이었다. 나는 입사가 확정되고 내 인생의 새로운 밑그림을 조금씩 그려나가면서 그녀를 그 밑그림 속에서 조금씩 지워나갔다. 나는 냉정하게도 불투명한 관계는  정리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다고 생각을 하였고, 그녀와 통화를 하면서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앞으로 이렇게 전화 통화만 할 수는 없다. 이제 관계를 정리하자고... 그녀는 내가 얘기를 채 꺼내기도 전에 내가 할 얘기를 눈치챘고, 슬프게 울었다.  며칠을 그렇게 전화하며 울고 달래고 그랬다. 서로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공간적 제약을 아무런 기약 없이 극복하기엔 너무나 멀고 주변 환경은 달랐다. 우울했다.


그녀와 관계를 정리하던 힘든 시기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여자 후배와 더 가까워지게 되었고 그렇게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후회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소중한 만남을 새로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깝게 지내던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났고,  그동안 지냈던 얘기들 그리고 얼마 전에 헤어진 독일 여자 친구 얘기를 했다. 나는 당연한 결정이라도 생각하고 말했는데 선생님은 정색을 하시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위해 한국에라도 오겠다고 희생을  얘기하는 사람을 두고, 아직 사랑하지만 상황 때문에 관계를 정리하는 건 평생 후회할 결정이라고 하셨다. 소중한 만남을 막 시작한  그때였기 때문에 선생님을 1주일만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소중한 좋은 친구를 잃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세속적인 계산으로 사는 것이 아니지 않으냐. 우주에서 한 날 티끌에 지나지 않을 내가, 이 세상을 상대로 계산할 수 있다는 그 알량한 속셈이 가소로울 뿐이지 않겠는가.


- 목 차 -

00장. Prologue

01장. 만남

   1) 낯선 곳에서의 인연

   2) 종을 뛰어넘은 표범의 사랑과 훔친 머리카락

   3) 네가 나무를 알아?

02장. 반찬의 나라로

   4)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5) 반찬의 나라로 편도 티켓

   6)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7) 먹 가는 독일 처자

   8) 낯선 곳으로 씩씩하게 내 디딘 첫 걸음    

03장. 결혼 (가제)

   9) 검정 턱시도와 검정 구두? (결혼 준비)

   10) 결혼 할래? 출장 갈래?

   11) 왜 하필 한국 사람이니?                

04장. 씩씩한 독일 여전사

   12) 한국은 극단주의인가봐

   13) 비닐봉지는 "No"

   14) 외갓집 차례지내기

   15) 아름다운 대한민국

   16) 명품 가방

05장. 아이 키우기

   17) 임신과 출산

   18) 혼혈아에 대한 생각

   19) 금지하는  것보다 위험함을 가르치는 것

   20) 육아휴직과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

   21) 어린이집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

   22) Bilingual

06장. 한국 회사와 외국인

   23) 외국인을 위한 자리

   24) 우리의 현실

   25) 우리는 왜 이렇게 일에 미쳐있나

07장. 세계 속 한국, 한국 속 세계

   26) 다문화 사회

   27) 국제커플에 대한 인식

   28)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

   29) 한류에 대한 생각

08장. 인생에 대해 생각하다

   30)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결심

   31) 계속되는 방황

   32) 철밥통을 버리다.

09장.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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