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아내와 한국남편의 한국 생활기
내 편한대로 가져다 붙여 생각하는 것을 아전인수격이라고 한다. 처가에 정식으로 결혼을 승낙받지 않았음에도 이미 전화로는 얘기를 했기도 했고, 언어적인 제약으로 인해 장인 장모님과 내가 직접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서양인이라 이해할 거라는 막연한 잘못된 믿음으로 처갓집에 미리 인사하러 가는 것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 편한대로 생각하다가 그녀에게 한 방 크게 먹었다.
이미 알고 있더라도 크리스마스에는 같이 가서 그녀의 아버지에게 직접 허락을 받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허락이라기보다는 나 이 사람과 결혼하겠습니다라는 인사 차원이었지만, 그들에게 크리스마스에 우리의 설이나 추석과 같이 그들에게는 온 가족이 다 모이는 일 년 중 유일한 날이었다. 4월이 결혼식이었으니 시기적으로도 그때 가서 처가에 얘기하는 것이 적절했다. 그런데 갑자기 브라질로 해외 출장이 잡힌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한국 도착하는 일정이라 한국에 돌아왔다가 가면 크리스마스이브 가족 저녁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한국에 왔다가 하루 늦게 조인하겠다고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엄청나게 화가 났지만, 난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건데 어쩌란 말인가. 안 가겠다는 것이 아니고 조금 늦게 가겠다는 건데...
그리고 그녀에게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그때 그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나는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화가 난 그녀를 달래기 위해서 노력했을 뿐이었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 년에 딱 한번 있는 날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참석하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방식대로 얼굴도 모르는 수백 명이 참석을 하는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스스로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는데, 결혼할 그 남자는 정작 그녀에게 중요한 가족 행사에 늦게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까지 그녀가 원했던 것은 단지 내가 가족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 평생 같이 살아가야 할 사람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바로 보기를 원했던 것이었다.
그렇다. 회사 때문에, 일 때문에... 조금 과거로 돌아가 보면 나는 학생 때도 그랬다. 추석 때는 중간고사 때문에, 설에는 학원 때문에... 자주는 못 갔지만 기장 바닷가에 있는 할머니 댁과 외가는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그런 곳이었다. 햇살에 따듯해진 정겨운 마당의 세 면가처럼 가족의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고, 지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조금 크고 학업이 중요해진 때부터 그 곳에 가지 못하고 집에 혼자 남겨지곤 했다. 차례상에 엎드려 절을 할 때 나는 어렸을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곤 했지만, 언젠가부터는 그럴 수 없었다. 큰 애는 공부해야 해서... 할머니는 그 큰 놈이 보고 싶으셨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허용되는 최 우선순위 핑계거리는 인생에서의 성공이었다.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 성공이었고 인생의 목표였다. 잘못된 목표를 보고 뛰었으니, 그 나이에 왜 뛰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명절도 할아버지의 제사도 모두 후순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렇게 자리 잡았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가족과 전통을 찾는다고 다시 돌아 올리 없다. 떠들썩한 고향집 분위기는 어린 시절 놓칠 수 없는 행복 중에 하나였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포기해야 것이라는 생각이 익숙해져 버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었다니... 우리네 인생에서 성공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수 있는 것인지 진지한 고민을 할 틈은 별로 없었다. 우리네 삶은 단지 입학과 입사가 목표였기 때문에 입학하고 나서는 방황하면서 놀고, 입사 하고 나서는 이게 내가 원했던 건가 헷갈리면서도 시키는 대로 일을 할 뿐이다.
지금은 그만둔 이전 직장에서도 출장 중에 개인 휴가를 줘서 출장지에서 쉴 수 있게 해준다. 사실 다른 나라의 많은 회사가 그렇게 한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출장 중에 사고가 나면 회사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여 절대 허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출장도 가고 가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독일을 경유해 거기서 며칠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신입사원이었던 그 당시에는 하늘 같던 삼성전자 본사 경영지원 부서장에게 전화하여, 출장 중 휴가를 결재 해주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간신히 허락을 받는다.
그렇게 가족 행사에 참석하여 결혼 얘기를 했다. 그 때의 나는 그래도 그저 힘든 고개 하나를 넘겼구나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00장. Prologue
01장. 만남
1) 낯선 곳에서의 인연
3) 네가 나무를 알아?
02장. 반찬의 나라로
7) 먹 가는 독일 처자
03장. 결혼 (가제)
9) 검정 턱시도와 검정 구두? (결혼 준비)
10) 결혼 할래? 출장 갈래?
11) 왜 하필 한국 사람이니?
04장. 씩씩한 독일 여전사
12) 한국은 극단주의인가봐
13) 비닐봉지는 "No"
14) 외갓집 차례지내기
15) 아름다운 대한민국
16) 명품 가방
05장. 아이 키우기
17) 임신과 출산
18) 혼혈아에 대한 생각
19) 금지하는 것보다 위험함을 가르치는 것
20) 육아휴직과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
21) 어린이집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
22) Bilingual
06장. 한국 회사와 외국인
23) 외국인을 위한 자리
24) 우리의 현실
25) 우리는 왜 이렇게 일에 미쳐있나
07장. 세계 속 한국, 한국 속 세계
26) 다문화 사회
27) 국제커플에 대한 인식
28)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
29) 한류에 대한 생각
08장. 인생에 대해 생각하다
30)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결심
31) 계속되는 방황
32) 철밥통을 버리다.
09장.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