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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onuk song Jan 03. 2016

13. 비닐봉지는 "No"

독일 아내와 한국남편의 한국 생활기 - 비닐봉지는 "No"

"어린이나 노약자는 바깥활동을 하지 않으시고 창문을 잘 닫아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른 봄에 불어오는 황사만 지나가면 숨 쉬고 사는데 크게 어려움은 몰랐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계절과 관계없이 자주 듣는 일기예보 멘트이다. 바깥활동을 하지 말라니... 하다못해 어린이집 또는 학교라도 가려면 밖에 나가야 하는데... 대책도 없이 일 년 내내 실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멘트만 듣다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TV 방송에서 무슨 박사들이 나와서 마스크를 바르게 쓰는 법을 알려주지만 마스크를 쓰는 게 미세먼지에 대한 대책이 아닐 텐데... 게다가 마스크를 쓰고 숨을 들이 마시면 벌어진 콧등 틈이나 턱 쪽으로 대부분의 공기가 들어오게 마련이지, 마스크를 통해서 들어오지는 않는다. 안경을 쓰는 나는 콧등 틈으로 나오는 숨 때문에 안경에 김이 서리는 걸 보더라도, 미세먼지가 마스크에 걸러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왜 근본적인 대책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은 없는 걸까?


어릴 때 살던 집은 천호대교 북단 부근이었다. 북쪽으로 난 내 방 창문으로는 항상 저 멀리 도봉산이 보였다. 내 방에서 보던 도봉산은 사람 얼굴이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고등학생 때 책상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면 창밖으로 그 커다란 얼굴이 누워 있었고, 종종 멍 때리며 쳐다보곤 했다. 특히  해질 녘에 붉게 물드는 북쪽 하늘과 도봉산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산의 얼굴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비라도 흠뻑 온 직후에나 잠시 보일 뿐이다. 결혼을 한 2008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새 공기가 무척이나 더 나빠졌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없는 거야.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중국과 공동연구를 진행해서 미세먼지를 줄이자고 제의를 했는데 중국에서 거부하고 있다는 뉴스 보도를 듣고 아내에게 전해주었다.


"한국사람들은 대부분이 미세먼지는 중국이 옆에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하지만 이 꽉 막힌 차들 좀 봐. 그리고 비 오고 나서도 금방 뿌옇게 되는 걸 봐... 이건 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거라고..."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나 대기 오염 탓을 하곤 하는데 실은 우리나라 자체적으로 만들어 내는 미세먼지가 절반 이상이라고 한다. 중국 탓하기 전에 우리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정부에서 발표하는 수치도 30~40%는 중국에서 오는 오염물질이라고 한다. 그리고 미디어에서는 이렇게  보도한다. "국내 미세먼지 농도 관리 기준이  강화되더라도 절반 정도는 중국에서 유입되기 때문에 결국 중국에서 잘 관리되지 않으면 우리나라도 미세먼지 농도를 관리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1) 절반은 우리 탓인데 결론은 중국 탓인 것이다. 그리고 환경부에서  내놓은 대책은 미세먼지 예보제를 도입하여 실외활동을  자제하는 것이다. 행동요령이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자는 것도 아니고 실외활동을 자제하라는 거라니....

1) SBS 현장 21_20131119


최근에 나사에서 발표한 이산화질소 농도 위성사진만 보더라도 중국 옆에 있는 북한은 깨끗한 걸 보면 공기 안 좋게 꼭 중국 탓만은 아닌 것이다.


아내가 길을 걷다가 정말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동차의 공회전이다. 시동을 껐다 켰다 하면 연료 낭비가 더 심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에어컨을 틀어놓기 위해서나 히터를 틀어놓기 위해서 인지, 자동차 시동을 켜 놓는 앉아 있는 경우가 유독 많다. 동네 슈퍼 앞에는 장 보러 간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들이 시동을 켜둔 채 앉아 있는 걸 자주 본다. 슈퍼 앞에 진열되어 있는 과일을 고르다가 그녀는 지나치지 못하고 차 창문을 두드린다.


"왜 시동 켜놓고 있어요? 공기 나빠요! 여기 과일 있는데 고를 수 없어요!"


어눌한 한국말로 하면,  멋쩍어하면서 시동을 끄는 사람도 있고, 못 들은 척 무시하고 그냥 있는 사람도 있다. 욱하고 뛰쳐나와서 외국인인걸 보고 입을 다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녀의 나라에서는 누군가 잘못을 하면 누구라도 직접 가서 얘기를 하지만, 그런 게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가슴 졸이는 상황이 이렇게 벌어지곤 하니 남편으로선 마음이 불편하다. "제발 그냥 좀 넘어가면 안 되겠니?"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 우리나라에도 공회전을 하는 차량에 대해 5만 원 과태료가 부가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뉴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그래... 그래도 아내가 맞았구나... 어쨌든 아직까지  단속하는 경우는 못 봤지만...


그녀가 그렇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독일 사회도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라인강의 기적으로 흔히 알고 있는 독일도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환경오염 문제가 많이 부각되었다. 오늘날 독일은 정부의 환경에 대한 다양한 규제를 통해 기업들도 환경에 대한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정부나 기업을 탓하기 이전에 그녀는 한국 사람 개개인도 환경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독일 사람들은 중국 제품을 잘 사지 않아. 품질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중국 제품은 환경을 고려해서 만들지 않기 때문이야. 우리가 조금 더 비싸게 주고 사는 건 환경에 대해 지불하는 거라고 생각해."


잘 사는 나라의 여유인 건지, 그래서 선진국이 된 건지...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비싸더라도 오래 쓰는 물건을 고르는 독일인의 특성이 반영된 거라 생각하지만, 우리는 중국에서 넘어오는 온갖 오염물질 탓을 하면서도 당장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면, 한철 쓰고 버리더라도 싼 제품을 사는데 크게 거리낌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품질과 디자인이 비슷하면 오직 가격만이 구매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물건을 살 때도 만들어지는 과정을 고려하고, 환경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내겐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다.


우리의 무의식 중에 편리함이 모든 가치에  우선시되고 있는 건 아닐까


가끔 독일 처갓집에 때, 차를 몰 경우가 있는데, 운전대는 항상 그녀의 차지이다. 15년 전 처음 면허를 딸 때 2종 자동으로 땄던 나는 독일에서 운전을 할 수가 없다. 웬만한 차들이 모두 수동 미션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자동미션이 95% 이상이다 보니 이상할 것도 없고, 요즘은 기술이 워낙 좋아져 자동이 수동보다 연비가 좋다고 하지만 정말 고급 차들이나 그렇지 웬만한 보통 차들은 그렇지도 않다. 한국 도로 사정이 안 좋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이  한국보다 크게 낫다고 얘기할 수도 없다. 그냥 편하기 때문이다. 돈 좀 더 내고라도 연비 좀 안 나오더라도 편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그거 아니어도 신경 쓸 것 많고 힘든데 운전이라도 좀 편하게 하자는 거 아닐까. 어떤 사람은 정부에서 면허를 2종 자동으로 권장하니 수동을 모는 사람이 없어지고 프리미엄 붙여 팔 수 있는 자동차 제조업체만 좋아진다고 하기도 한다.


우리 집 현관문 옆에는 항상 여러 종류의 장바구니가 걸려있다. 그녀는 장 보러 갈 때 항상 장바구니를  들고나간다. 장바구니가 없으면 웬만한 건 가방에 넣고 유모차에 쑤셔 넣고 손에 들고 온다. 어차피 안 버리고 모아놓는데 그냥   하나받아오면 될 것을 이라고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다. 김밥 한 줄을 사 올 때도, 라면 한 봉지를 사 올 때도 50원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면 습관적으로 비닐봉지에 담아 덜렁덜렁 들고 오곤 했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비닐봉지 드까요' 물을 때,  '아니요'라고 대답하면 왠지  으쓱해진다. 


습관적으로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아주머니도 비닐봉지에서 물건을 빼고 다시 봉지를 돌려드리면 처음에는 어리둥절 하다가도 이내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환기를 안 시키는데 오히려 건강에 더 도움이 되는 시대이다.

미세먼지가 단순히 호흡기 쪽으로 안 좋다고 생각했지 태아에게도 영향을 미치는지는 몰랐다. 폐로 유입된 미세먼지는 혈액을 타고 태아에 전달되어 태아 장기 성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환경마크가 붙어 있어도 진짜 친환경 공법으로 만들었는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사회적인 약속도 믿을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안타깝지만, 나부터가 조금씩 의식을 했으면 한다.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일회용 비닐이나 플라스틱 알루미늄 포일 비닐장갑 등이 많지는 않은지 주위를 돌아봐야겠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워낙 뜨거운 요즘이지만, G7에 들어가는 한국도 이미 지구의 환경과 기후변화에 국제적인 책임을 분담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원자력 발전을 모조리 없애기로 한 독일 정부의 결정이 부럽다.


- 목 차 -

00장. Prologue

01장. 만남

   1) 낯선 곳에서의 인연

   2) 종을 뛰어넘은 표범의 사랑과 훔친 머리카락

   3) 네가 나무를 알아?

02장. 반찬의 나라로

   4)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5) 반찬의 나라로 편도 티켓

   6)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7) 먹 가는 독일 처자

   8) 낯선 곳으로 씩씩하게 내 디딘 첫 걸음    

03장. 결혼 (가제)

   9) 검정 턱시도와 검정 구두? (결혼 준비)

   10) 결혼 할래? 출장 갈래?

   11) 왜 하필 한국 사람이니?                

04장. 씩씩한 독일 여전사

   12) 한국은 극단주의인가봐

   13) 비닐봉지는 "No"

   14) 외갓집 차례지내기

   15) 아름다운 대한민국

   16) 명품 가방

05장. 아이 키우기

   17) 임신과 출산

   18) 혼혈아에 대한 생각

   19) 금지하는  것보다 위험함을 가르치는 것

   20) 육아휴직과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

   21) 어린이집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

   22) Bilingual

06장. 한국 회사와 외국인

   23) 외국인을 위한 자리

   24) 우리의 현실

   25) 우리는 왜 이렇게 일에 미쳐있나

07장. 세계 속 한국, 한국 속 세계

   26) 다문화 사회

   27) 국제커플에 대한 인식

   28)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

   29) 한류에 대한 생각

08장. 인생에 대해 생각하다

   30)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결심

   31) 계속되는 방황

   32) 철밥통을 버리다.

09장.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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