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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onuk song Sep 29. 2015

7. 먹 가는 독일 처자

독일아내와 한국남편의 한국 생활기

서예를 하겠다고? 요즘엔 잘 없을 텐데? 어렸을 적에는 아파트  단지마다 있던 서예학원 간판을 요즘은 못 본지 꽤 된 듯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집 근처에는 없고, 버스를 타고 강을 건너 풍납동 주민센터 근처 골목에 있는 것을 하나 찾았다. 브라질에서 독일로 돌아간 얼다는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서예를 같이 배웠다. 붓글씨에 재미를 들린 그녀는 한국에서도 계속해서 배우고 싶어 했다. 덕분에 나도 사각사각 먹 가는 소리와 마음이  차분해지는 먹 냄새를 오랜만에 맡을 수 있었다. 배우는 사람이 많지 않아 주말에 같이 가면 여든이 넘으신 선생님은 무척이나  반가워하셨다.  선생님은 한국에 와서 서예를 배우는 독일 처자가 마음에 드시는지 칭찬 일색이셨다. 얼마 안 되는 문하생들이지만 그들이 올 때마다 소개를 해주고 수재자라도 되는 마냥 자랑을 하셨다. 아껴두신 음료수를 꺼내오시고 과일을 깎아 주셨다. 가끔 같이 갈 때는 얼다와 앉아 옛날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썼는데, 선생님이 빌려주신 길이 잘 든 붓에 뻑뻑하게 간 먹물을 넉넉히 먹여 한지에 써 내려 가는 그 매끄러운 감촉이 참 좋았다. 초등학교 때 다니던 서예학원은 아파트 단지 상가 건물에 더벅머리 노총각 선생님이 하시던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노총각 선생님이 지금 내  나이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들로 가득한 서예학원은 항상 시끄러운 곳이었고, 그 곳의 화장실 세면대는 아이들이 씼어대는 붓의 시커먼 먹물로 하예질 날이 없었다. 중학교를 가기 얼마 전이던가 서예학원을 그만 두면서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서 벼루 밑에 숨겨두었던 부끄러움 많던 소년이 여기 한 노란 머리 여자와 나란히 앉아 다시 붓을 들고 있다. 어느 순간엔가 그 많던 서예학원이 다 어디 갔단 말인가. 산만한 아이들에게 좋다고 엄마 손 잡고 너도 나도 갔던 서예가 어느 새 고리 타분한 것이 되어 버렸다. 때 되면 나오는 비슷비슷한 핸드폰들은 경쟁적으로 고사양 고 스펙 제품을 내 놓는다. 다음에 나오는 핸드폰은 더 올릴 스펙이 없어 알 수 없는 숫자들을 찾아 자꾸 올리고 우리는 그 숫자에 속에 또 핸드폰을 바꾼다. 어느 순간인가 사회가 더 발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손에 잡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 피상적인 것에 집중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은 이미 잘 사는 나라야"


처음에 어머니는 그녀가 잘 사는 나라에 왔다가 한국에 와서 젓갈 냄새나는 음식들이 입에 맞는지, 불편한 게 많지는 않은지 걱정이셨다. 큰 김치를 힘들게 자르다가 결국은 손으로 찢으면서 한국에서는 이렇게  먹어하면서  멋쩍어하셨다. 동대문 시장이나 재래시장보다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백화점이나 마트 가는 것을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시고 좋은 곳만 데리고 다니셨다. 혹시나 한국의 덜 발전한(?) 모습을 보고 실망하여 아들에게 불이익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셨다. 하지만 동대문시장과 서울에도 곳곳에 있는 재래시장과 수산시장은 그녀가 너무나 좋아하는 곳이다. 그리고 김치만 그런 것이 아니고, 피자도 손으로 들고 먹는다고 했다. 우리가 발전하던 과정이 그래 왔기 때문이었다. 흙길은 아스팔트로 포장을 했고, 재래시장이 있던 곳에 마트가 들어섰고, 그러면서 함박스테이크를 칼로 썰어 먹는 양식당이 들어 왔기 때문이다. 경제 사정이 조금씩 좋아지면서 변화해 간 모습이 외형적이었기 때문에 발전이라면 그런 외형적인 발전만 발전인 것으로 인식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위 말하는 선진국도 모든 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을 수는 없고 또 그래야 좋은 것도 아닌데, 우리는 스스로가 우리의 모습에  부끄러워하고 스스로에게 더욱 채찍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청년 실업, 전세난 등 살기 각박하고 청소년들의 행복지수가 낮아 자살률이 높아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는  말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사회 인프라 자체는 꽤 높은 수준이다. 미국도  부러워하는 의료보험과 어디 가나 잘 닦인 도로가 있고, 지하철도 어느 매트로 폴리탄 못지않게 잘 깔려있다. 도시 어디에 있든 깨끗한 화장실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것은 독일의 장인어른도 혀를 내두르는 것중 하나다. 발전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또는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불 달성이라는 수치적인 목표가 우리의 의식 속에 암묵적으로 외형적인 성장에 중점을 두는 의식을 심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다는 누구나 5천 원짜리 커피를 들고 다니는 한국은 이미 충분히 잘 사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만나는 한국 사람마다 독일은 잘 사는 나라이며 한국은 독일 따라가려면 멀었다고  얘기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한국은 충분히 잘 사는 나라이고, 삶의 질(만족도와는 다름)이 꽤 높으며 어디를 가든 잘 닦인 길이 있고, 청소를 하는 사람이 있고, 질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물질적인 성장 보다는 우리 내면을 들여다 보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불 달성은 정부의 숙제이우리가 달성해야할 숙제가 아니니까.


여든이 넘으신 서예 선생님은 한국에 가족이 없는 그녀를 위해 선생님의 성을 따서 박부경이라고 한국 이름을 지어주셨다. 부산에서 태어난 남자를 만나 서울에 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과 종종 아홉 점을 깔고 바둑을 두었고, 1년 후 선생님은 우리의 결혼식 주례를 봐 주셨다.


- 목 차 -

00장. Prologue

01장. 만남

   1) 낯선 곳에서의 인연

   2) 종을 뛰어넘은 표범의 사랑과 훔친 머리카락

   3) 네가 나무를 알아?

02장. 반찬의 나라로

   4)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5) 반찬의 나라로 편도 티켓

   6)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7) 먹 가는 독일 처자

   8) 낯선 곳으로 씩씩하게 내 디딘 첫 걸음    

03장. 결혼 (가제)

   9) 검정 턱시도와 검정 구두? (결혼 준비)

   10) 결혼 할래? 출장 갈래?

   11) 왜 하필 한국 사람이니?                

04장. 씩씩한 독일 여전사

   12) 한국은 극단주의인가봐

   13) 비닐봉지는 "No"

   14) 외갓집 차례지내기

   15) 아름다운 대한민국

   16) 명품 가방

05장. 아이 키우기

   17) 임신과 출산

   18) 혼혈아에 대한 생각

   19) 금지하는  것보다 위험함을 가르치는 것

   20) 육아휴직과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

   21) 어린이집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

   22) Bilingual

06장. 한국 회사와 외국인

   23) 외국인을 위한 자리

   24) 우리의 현실

   25) 우리는 왜 이렇게 일에 미쳐있나

07장. 세계 속 한국, 한국 속 세계

   26) 다문화 사회

   27) 국제커플에 대한 인식

   28)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

   29) 한류에 대한 생각

08장. 인생에 대해 생각하다

   30)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결심

   31) 계속되는 방황

   32) 철밥통을 버리다.

09장.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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