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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onuk song Oct 15. 2015

11. 왜 하필 한국 사람이니?

독일아내와 한국남편의 한국 생활기

나는 아내와 결혼한지 7년이 되어서야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내의 한국어가 많이 늘기도 했고, 우리끼리는 우리만의 시크릿 랭귀지 포르투갈어로 대화를 하니 독일어를 배워야 하는 동기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 나중에 엄마와 아들이 얘기하는 걸 내가 못 알아들으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들어 벼르던 학원에 드디어 저녁 반 수업을 끊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저녁 수업에 앉아 있으면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이 설레었다. 그리고 가끔이지만 장인 장모님을 만날  때마다 들던 미안한 마음이 이제는 안 들어도 된다는 것이, 미뤄둔 숙제를 한 듯이 뿌듯했다.  결혼할 당시만 해도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하던 장인 장모님이었지만, 한국에 왔다 가시고 나서는 이른 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영어 수업을 끊으시더니 지금도 꾸준히 수업을 다니신다. 물론 아직 더듬 더듬 영어 사전을 찾아가면서 어렵게 대화를 하지만, 그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것 자체가 대단한 도전이었기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독일어 공부를 미루고 있었던 내게는 항상 미안한 짐이었다.


동독 출신인 장인 장모님은 삶에서 한 번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태어나서 줄 곧 옳다고 믿고 살아왔던 세상이 바뀌었고, 직장을 잃었다. 이 보게 사위...  그땐 정말 힘들었지만, 배운 기술이 있었던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네... 일 없이 지내던 시간은 가족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일 년에 한 번 나오는 바나나를  배급받기 위해 4시간 씩 줄을 서기도 하며, 식료품 배급을 받던 생활을 하다가 시장경제로 한 순간에 바뀌었으니,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의 변화에 충격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세 딸들도 새로운 세상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부모와는 다른 생각을 배우고 자라면서 부모와 갈등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두 분은 딸들의 급진적인 생각이나 행동에 크게 놀라지 않는다. 변화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곤 한다. 그래도 둘째 딸의 국제결혼 선언에는 걱정이 되셨었던 것 같다.


"왜 하필 한국 사람이니?"


크리스마스에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갔을 때, 저녁을 먹고 모녀 간에 따로 조용히 대화하는 걸 들었다. 너의 결정이니, 후회하지 않게 잘 살거라. 같은 유럽 문화권도 아닌 먼 동아시아 끝자락에 떨어져 지내면서 자주 보지도 못하고, 낯선 외국 생활에 걱정이 되신 것이다.


장인 장모님이 한국에 처음 오신 건 결혼식을 이틀 앞두고 였다. 나의 부모님을 만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영어도 전혀 하지 못했던 장인 장모님을 독일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나의 부모님께 덜렁 맡겼다. 결혼식 전 바쁜 와중에 장인 장모님을 돌볼 여유가 없었고, 처제 둘에 그녀의 친구 한 명이 독일에서 같이 왔기 때문에, 14평의 좁은 신혼집에서 같이 잘 수 없었다. 그래서 호텔을 잡아드려야 하나 생각했는데, 그녀는 시부모님 댁에서 자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결혼식 전에  사돈끼리 같이 있으라고? 나도 아직 같이 있으면 어색하고 불편한데... 게다가 말도 안 통하는데? 나도 모르겠다. 지금 신경 쓸 것이 너무 많다. 얼마나 어색했을까. 그리고  어색해할 네 분을 상상하며 내 마음은 얼마나 불편했던지... 나는 불안해 죽겠는데 그녀는 어떻게든 될 거라고 그냥 두라고 한다. 그런데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이 맞았다.


낯선 곳에 딸을 두고 가는 장인 장모님의 마음과, 그런 사돈의 마음을  이해하는 우리 부모님의 마음이 다르지 않았으니, 무슨 복잡한 말과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손님으로 오신 두 분을 좀 더 잘 챙겨드리고 싶은 우리 부모님의 마음과 그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장인 장모님의 마음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서로 느낄 수 있었다. 독영 사전과 영한 사전 두 권을 펴 놓아야 대화가 되는 두 사돈 지간은 결혼식이 끝나고 3주나 더 같이 여행을 다니시며 더 없이 친해지셨다. 제주도 강원도 등등 같이 다니셨는데, 여행을 다녀오신 부모님은 재밌었던 경험에 들떠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셨다.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밥 먹는데 양반다리가 불편한 장인을 위해 상 위에 상을 하나 더 올리고 양쪽으로 상을 또 놓고 의자 삼아 앉아 먹었던 얘기이다. 힘들어하던 장인을 보고 상을 그렇게 배치해 준 식당 주인도 그렇고 주변에 밥을 먹다가 상 옮기는 걸 도와준 사람들의 따듯한 마음도 충분히 전해 졌으리라 생각이 되어 훈훈했다. 서로 사전을 펼쳐가며 간단한 대화도 힘들지만 재미있게 했던 얘기들... 입에 맞지 않았을 음식들을 힘들게 먹었던 얘기들... 둘 째 딸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는 장인 장모님을 보고, 어머니는 공감하는 것이 많았던 모양인지 그렇게 좋아하시기도 했고... 하지만 외국인 손님이자  친구처럼만 생각했는데, 제주도 식물원에서 한 선인장을 보고 독일에서는 시어머니 의자라고 부른다는 장모의 말씀에 그래도 사돈은 사돈이구나 느끼며 살짝  긴장했다는 어머니...


그렇게 두 사돈은 공항에서 오래된 친구를 보내듯이 눈물을 흘리시며 아쉬운 이별을 했고,  그다음해에 나의 부모님은 독일로 여행을 떠나셨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우정을 쌓으셨는지, 사돈끼리 이래도 되는가 싶었다.


우리는 혼수가 따로 없었다. 처갓집 지역의 유명한 찻잔 한 세트와 장모님이 직접 만든 도자기 그릇 하나가 다였다. 전세비를 보태 주신 우리 부모님 입장에서는 아쉬운 게 있으셨겠지만, 내색하지 않고 기대를 접으셨다. 집안 간에 내가 얼마를 하니, 그 쪽은 얼마를 해라 이런 이해관계가 섞이지 않았고, 딸을 낯선 나라에 시집 보내는 마음이 얼마나 짠 하겠나 헤아리는 우리 부모님의 마음 씀씀이에 두 사돈 지간은 그렇게 친구 지간이 되었다. 요즘도 때 되면 한 번씩 반갑게 연락하고 선물도 보내고 하면서 지내시는 모습을 보면 참 좋아 보이는 사돈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 목 차 -

00장. Prologue

01장. 만남

   1) 낯선 곳에서의 인연

   2) 종을 뛰어넘은 표범의 사랑과 훔친 머리카락

   3) 네가 나무를 알아?

02장. 반찬의 나라로

   4)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5) 반찬의 나라로 편도 티켓

   6)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7) 먹 가는 독일 처자

   8) 낯선 곳으로 씩씩하게 내 디딘 첫 걸음    

03장. 결혼 (가제)

   9) 검정 턱시도와 검정 구두? (결혼 준비)

   10) 결혼 할래? 출장 갈래?

   11) 왜 하필 한국 사람이니?                

04장. 씩씩한 독일 여전사

   12) 한국은 극단주의인가봐

   13) 비닐봉지는 "No"

   14) 외갓집 차례지내기

   15) 아름다운 대한민국

   16) 명품 가방

05장. 아이 키우기

   17) 임신과 출산

   18) 혼혈아에 대한 생각

   19) 금지하는  것보다 위험함을 가르치는 것

   20) 육아휴직과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

   21) 어린이집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

   22) Bilingual

06장. 한국 회사와 외국인

   23) 외국인을 위한 자리

   24) 우리의 현실

   25) 우리는 왜 이렇게 일에 미쳐있나

07장. 세계 속 한국, 한국 속 세계

   26) 다문화 사회

   27) 국제커플에 대한 인식

   28)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

   29) 한류에 대한 생각

08장. 인생에 대해 생각하다

   30)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결심

   31) 계속되는 방황

   32) 철밥통을 버리다.

09장.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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