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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onuk song Oct 30. 2015

12. 한국은 극단주의인가봐

독일아내와 한국남편의 한국 생활기 - 신혼 살림 장만 하기

신혼집은 방배동 카페골목 근처 빌라가 많은 골목에 있는 작은 집이었다. 벚꽃이 여의도 만큼이나 많이 피는 곳이었는데, 우리가 처음 들어갔을 때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는 4월 말이었다. 그래서  그때를 떠올리면 아름다운 기억만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절은 그녀에게는 한국 사회와 몸으로 부딪히며 홀로서기를 배우는 때였다. 아침 7시에 사당역에서 회사 버스를 타야 했던 나는 6시 반이면 집을 나섰다. 서울로 오는 마지막 버스가 끊기는 밤 12시가 넘으면 회사에서 택시비를 지원해 주었는데, 택시를 타고 내린 기억이 더 많은 걸 보면 그 아름다운 기억들은 주로 주말만이었던 것 같다. 나보다 일찍 퇴근한 그녀는 혼자 장을 보고 밥을 해 먹고, 집 주변 식당들을 하나씩  맛보고  그중에 맛이 있거나 분위기가 좋은 곳이 있으면 주말에 나를 데리고 가곤 했다.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자기가 스스로 찾아보고 스스로 해결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나도 같이 있는 시간이 적다 보니 혼자 한국 사회의  이것저것을 경험했다. 그래도 주말이면 같이 카페골목의 줄줄이 늘어선 식당들을 구경하고, 길 건너편 서래마을에 한 번씩 구경 가면 높은 담 사이로 보이는 멋진 저택들을 보며 언젠가는 저런 집에 살자고 얘기하곤 했다.


부족한 살림살이를 마련하는 것도 그녀의 일이었다. 우리 집은 빌라 2층에 있는 14평의 작은 집이었으나, 둘이 살림을 꾸리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혼수가 없었던 만큼 짐이 많지 않았고, 살림살이를 하나씩 채워가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엔 침대도 없이 매트리스 하나, 장롱, 세탁기, 냉장고, 식기류 정도가 다였다. 실용적이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처음 살림 장만을 하면서 사실 맘에 들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집 인테리어를 하거나, 전자제품을 사거나, 가구를 장만할 때 선택의 폭이 제한적인 것에 실망을 했었다. 전세라 손댈 수 있는 부분이 제한 적인 탓도 있었지만, 인테리어 집을 여러 군데 돌아다녀봐도 가격이나 구성이 모두  비슷비슷했다. 우리 예산 한도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았고, 업체에서 제안하는 제품이나 재질들이 거기서 거기였다. 디테일한 선택은 안 되더라도 솔직히 나는 거기 있는 거 중에 적당히  선택해도 충분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면 직접 사서 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그녀는 나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을지로상가를 돌아다니며 전등갓이며 시트지며 자재들을 하나 하나 골랐다. 나중에 독일에 와 보니 문 손잡이 하나만 하더라도  가게마다 각기 다른 다양한 가격의 수십 가지 종류가 있는 걸 보니 우리의 선택의 폭이 좁긴 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제조업자나 유통업자들에 의해 제한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시장을 그렇게 가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하는 선택들이 시장을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싼 값에 패키지로 해주는 편한 것을 찾으니 그 구성물의 품질이나 마감이 조악해질  수밖에 없는데, 새로운  것보다는 만들어져 있는 것을 찾고, 개성보다는 편함을 추구했던 것은 아닌지...


내 목적은 일단 갖추어 놓는 것이었고, 그녀는 하나씩 갖추어 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구성이야 조금 맘에 들지 않아도 일단 갖추어 지면 그걸로 되었고, 그녀는 각각의 구성들이 모두 마음에 들어야 했던 것이다.


매장에 진열된 냉장고들도 우리 집 주방에 비하면 너무 컸다. 웬만한 건 다 500L가 넘고 혼수용으로 전시되어 있는 것들은 대부분 탱크 만한 양문형 냉장고들이다. 그녀는 200L 이하 소형 냉장고를 원했는데, 작은 냉장고는 여관에나 있는 냉장실 전용  80L짜리 밖에 없었다. 그래서 냉동 전용을 따로 살수 있나 보니 대부분 커다란 업소용 뿐이다. 하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이루어내는 그녀의 생활력은 나 뿐만 아니라 나의 부모님을  놀라게 하곤 했다.


"아휴... 이렇게 작은 냉장고를 어떻게 쓰니? 좀 더 큰 거 사라."
"엄마, 작지만 자주 사 먹으면 돼요, 그럼 더 신선하게 먹을 수 있어요."
(시어머니를 엄마라 부른다. 나 따라서...)


그녀가 찾아낸 냉장고는 145L짜리였는데, 높이가 120cm가 채 되지 않는 정말 작은 냉장고였다. 어떻게 찾아 냈는지, 냉동 냉장실이 구분되어 있는 제일 작은 제품인 듯했다. 신혼 혼수로 양문형 냉장고가 인기다 보니 우리 냉장고는 진열되어 있는 걸 찾기도 쉽지 않았다. 냉장고가 작더라도 그녀는 자주 사서 먹으면 신선하게 먹을 수 있다며 우리 둘이 먹기에  문제없다고 했다. 정말 귀여운 이 냉장고는 작은 우리 주방 한 귀퉁이에 쏙 맞게 들어갔다. 반찬도 조금씩 해서 먹고 거의 주말에만 집에서 밥을 해 먹으니 부족함도 없었다.


사실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크고 비싼 제품을 파는 것이 이윤이 더 많이 남는다.  냉장고처럼 부피가 큰 제품은 더욱 그렇다. 보관, 운송비만 해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프리미엄 제품을 더 많이 광고할 수밖에 없다. 혼수 제품으로 나온 냉장고들이 대부분 양문형이지만 그 번쩍거리는 탱크 같은 냉장고가 어울리는 집은 서래마을의 저택 같은 집들이 아닌지. 정말 그렇게 큰 냉장고가 필요한 건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대형마트의 등장과 함께 소비자들도 대형 냉장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묶음으로 할인한 제품들을 많이 사게 되니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사서 보관하고, 몇 년씩 묵혀둔 식재료들을 버린 경우가 없다고 할 사람은 없을 듯... 게다가 그 귀여운 냉장고는 탱크 같은 냉장고 가격의 10분의 1밖에 안 했다. 너도 나도 산다고 나도 똑같은 걸 사다 보면 시장에 선택의 폭은 점점 줄어들고, 그 뿐만 아니라 시장에 비슷한 제품이 많아 지고 가격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럼 제조업 체도 손해일  수밖에...  


식탁도 그랬다. 박스를 뒤집어 놓고 쓰다가 결혼한지 4개월이 넘어서야 마련했다. 맘에 드는 것을 딱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알았는지 그녀는 주문 제작하는 목공소를 찾아 작은 주방에 맞게 2인용으로 주문을 했다.


"야... 이렇게 작아서 나중에 애 낳으면 애는 어디에 앉냐?"
"다리 잘라서 아이 책상으로 쓰면 돼 걱정하지 마..."

그렇게 식탁은 20만 원대에 제작을 했다. 시중에서 사는  것보다 디자인도 훨씬 마음에 들었고, 못을 쓰지 않고 짜맞춤으로만 만든 그 정도 퀄리티에 그 만한 제품을 시중에서는 살 수 없었다. 한국말도 서툴면서 어떻게 그렇게 찾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그동안 가구 거리들을 돌아다녀 봐도 비슷한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정말 비싸거나 완전 싸구려 제품이나, 둘 중에 하나다. 좀 쓸 만하면 비싸고, 싼 건 정말 조잡해 보인다.


대형 가구 회사들이 제품을 만들어 내고 중소 업체에서는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낸다. 이런 와중에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온지 1년도 되지 않아 잘 나가고 있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이케아가 국내  진출한다고 해서 국내 가구 시장이 죽느니 하면서 말이 많았다. 유럽에서는 사실 이케아 제품이 요즘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이기는 하지만 내구성이 떨어지고 자재 품질 자체가 그렇게 높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반가워했다. 그래도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케아 때문에 문을 닫을 영세 업체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동안 고여 있던 시장이 한 번 출렁이면서 시장도 그렇게  성장할 수 있을 거란다. 독일도 그랬듯이.


"한국은 극단주의(extreme) 문화인가 봐... 인테리어 업체도 그렇고, 냉장고도 그렇고, 가구도 그렇고, 중간 선택지가 없어.
Very luxurious or very cheap. There is nothing in the middle.
좀 비싸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사는 걸 똑 같이 사려는 게, 시장을 더 극단으로 몰고 가는 거 같아"

시장리인 그녀는 나름 분석을 내 놓는다.

극단이라......

술 마실 때도 끝장을 봐야 하고, 정치도 양극화가 첨예한데... 어떻게 알았지...

작은 식탁 위의 주말 아침 밥상, 계란, 야채, 커피에 오이 찍어먹을 쌈장도 저기 빠지지 않는다. 신혼여행 다녀온 그리스 산토리니의 파란색으로 주문 했지만, 나무에 칠하니 딱 그 색은 안 나온단다. 그래도 예쁨!! 미안해 하시는 작가아저씨 마음도 예쁨!!


- 목 차 -

00장. Prologue

01장. 만남

   1) 낯선 곳에서의 인연

   2) 종을 뛰어넘은 표범의 사랑과 훔친 머리카락

   3) 네가 나무를 알아?

02장. 반찬의 나라로

   4)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5) 반찬의 나라로 편도 티켓

   6)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7) 먹 가는 독일 처자

   8) 낯선 곳으로 씩씩하게 내 디딘 첫 걸음    

03장. 결혼 (가제)

   9) 검정 턱시도와 검정 구두? (결혼 준비)

   10) 결혼 할래? 출장 갈래?

   11) 왜 하필 한국 사람이니?                

04장. 씩씩한 독일 여전사

   12) 한국은 극단주의인가봐

   13) 비닐봉지는 "No"

   14) 외갓집 차례지내기

   15) 아름다운 대한민국

   16) 명품 가방

05장. 아이 키우기

   17) 임신과 출산

   18) 혼혈아에 대한 생각

   19) 금지하는  것보다 위험함을 가르치는 것

   20) 육아휴직과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

   21) 어린이집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

   22) Bilingual

06장. 한국 회사와 외국인

   23) 외국인을 위한 자리

   24) 우리의 현실

   25) 우리는 왜 이렇게 일에 미쳐있나

07장. 세계 속 한국, 한국 속 세계

   26) 다문화 사회

   27) 국제커플에 대한 인식

   28)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

   29) 한류에 대한 생각

08장. 인생에 대해 생각하다

   30)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결심

   31) 계속되는 방황

   32) 철밥통을 버리다.

09장.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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