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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onuk song Sep 29. 2015

6.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독일아내와 한국남편의 한국 생활기

한국에 온 그녀는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많은 고정 관념들과 가치관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가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좋아하여 다시 돌아보게 하고, 그냥 모른 척 눈 감고 지나치던 잘못된 것들을 꼭 집어 다시 끄집어 내었다. 그리고 나와 그리고 한국 사회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부딪히기 시작하며 갈등이 곳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부딪혔던 갈등은 잠을 어디서 자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남녀가 유별한 유교 문화라는 어려운 벽에 부딪혀 버린 것이다. 재밌는 것은 브라질이나 독일에서는 문제 되지 않던 것이 한국에 오면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인데, 이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개인의 신념 보다 '남이 어떻게 보겠는가' 하는 외부의 시각이 더 중요한 기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 빈 방이 있는데 다른 집을 구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지만 부모님 입장에서 결혼도 안 한 다 큰 처자를 집에 들이는 것이 큰 문제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건설회사에 다니셨던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부터 중동으로 일을 하러 가셨던 건설역군이셨다. 오래 그렇게 생활을 하셨던 터라 아직도 외국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신다. 부모님은 우리가 자라던 대부분의 시간 떨어져 지내셨고 어머니는 나와 동생이 대학을 간 이후에야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왔다 갔다 하시며 양쪽 집을 돌보셨다. 그녀가 한국에 왔을 때도 어머니는 아버지가 계신 곳에 잠시 가 계셨던 참이라, 집에는 나와 내 여동생만 살고 있었다. 부모님도 없는 집에 다 큰 여자를 들이다니. 하지만 그녀가 서울에서 집을 따로 구하는 것은 경제적인 부담이 너무 컸고, 말도 통하지 않는 그녀를 내가 회사를 다니는 주중에 혼자 두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같이  생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금에서야 동생에게 물어보니 쿨한 동생은 생판 다르게 생긴 외국 여자가 오빠 좋다고 한국 까지 와서 같이 살게 된 것이 그냥 신기하기만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방을 따로 쓰려고 했다. 다 큰 동생이긴 하지만 한국 정서로는 결혼도 하지 않은 관계인데 방을 같이 쓴다는 것이, 특히나 여동생 보기에는 좀 민망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그 개념을 설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것봐. 한국에서는 결혼 전에는 같은 방을 쓰는 일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야. 특히 여동생 보기에 좀 그래. 우리는 7살만 되어도 남녀가 따로 앉아야 한다는 말도 있거든. 그래서 우리나라는 남학교 여학교가 따로 있어. 대화가 이렇게 까지 이어지면 남녀를 구분하는 문화와 성차별, 성범죄율 등 또 토론이 시작되어야 하고 나는 또 지고 마는 레퍼토리대로 흘러갈 것이 뻔하니 시작하지 않는 게 좋다. 어쨌든 저 멀리서 나 보겠다고 날아온 여자 친구에게 내 방을 두고 한 집에서 각자 다른 방을 써야 한다고 설명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골치 아픈 이 문제는 사실 누가 옳다 그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면 각자의 문화에서는 모두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방을 같이 쓰는 것도 옳을 수 있고, 방을 따로 쓰는 것도 옳을 수 있다. 내가 몇 년 동안 양쪽의 가치관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느라 전전긍긍 해 왔던 것들이 사실 해결책은 어렵지 않았다. 그냥 두면 되는 것들이었다는 것을 뒤 늦게 깨달았다.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하면 되는 것이지 기준이 각기 다른 문제들의 균형점을  찾는다는 것이 사실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왔으니 우리 문화를 따라야 한다? 어느  한쪽의 사고 방식이나 가치관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왔더라도  우리나라가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할 수 있는 관용적인 사회라면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며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법은 따라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왔기 때문에 우리 문화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이 논리는  우리나라에는 한 가지 가치관만 존재하며, 한 가지 문화만 인정한다는 의미로, 한국에 왔으면 삼겹살에 소주를 마셔야 하고 노래방에 가서 한국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생각과 각자의 문화를 존중해야 하는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 그리고 다문화 가정이 이렇게 늘어가고 있는 한국사회에 매우 위험한 그리고 잘못된 고정관념인 것이다. 


그녀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외국인과 같이 손을 잡고 길을 다니는 풍경이 익숙하지는 않았다. 식당에 들어갈 때도, 전철을 탈 때도,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릴 때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보지 않는 척 하면서도 흘끔거리고 보는 사람들, 대 놓고 빤히 쳐다 보는 사람들, 얼다와 대화를 하면서도 뜨거운 뒤통수를 느끼며 잘 집중하지 못했고, 신기해하고 수군거리는 사람들 앞에서 일부러 대수롭지 않다는 듯 행동했지만 얼른 그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길 기다렸다. 그래서 더욱 그녀를 한국이라는 사회에 퍼즐 조각 맞추듯 끼워 맞추고 싶었다. 튀고 싶지 않았다. 남이야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녀였지만, 고민하는 나에게 머리를 검은 색으로 염색을 하면 어떨까 얘기를 하기도 했었다. 


그녀가 한국에 오고 나서는 한국 정서와 달라 주변 사람들이 안 좋게 볼 수 있는 행동, 태도, 말투 그리고 옷차림 등에 대해 설명하고 거기에 맞추어 주기를 바랐다. 가슴이 많이 파진 옷은 입지 말고, 어른들 앞에서는  뽀뽀하면 안 되고, 싫어하는 한국 음식이 있어도 싫어한다고  얘기하지 않았으면 했다.

 

"유럽에서는 가슴 파진 옷은 괜찮아. 오히려 한국에서 많이 입는 짧은 치마는 헤픈 여자들이 입는 옷이라고."

"어쨌든 여긴 한국이잖아."


 그녀는 한 나라에서 옳다고 생각되는 것도 다른 나라에서는 아닐 수 있고, 한국의 기준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지만, 내 귀엔 답답한 소리로만 들렸다. 특히 부모님이나 친구들 앞에서, 한국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에 적응을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외국인의 미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미녀들의 수다라는 TV 프로그램이 큰 인기가 있었고, 한국말을 잘 하는 그녀들이 한국에 있는 외국인이 본받아야(?) 할 표준이 되어 있었다. 미녀는 아니지만 섭외가 들어오기도 했었다. 아직 직장이 없었던 그녀가 한국 사회 적응 차 하기에 좋을 것 같아 권유를 했지만,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다. 고정 출연해서 인기를 얻으면 광고라도 찍을 수 있었을 텐데 했지만, 아는 친구를 통해 뒷 얘기들을 들어보면, 대본이 정해져 있어 대본 대로 말하는 연습을 시키고, 한국인이 듣기 원하는 모습을  얘기하도록 각본이 짜여져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들을 깨기 위한 시도들을 했지만, 막걸리를 좋아하고 삼겹살에는 당연히 소주가  최고~라고 외치는 외국 여자들을 보여주는 프로였다. 우리 것이 최고라고 말하는 대중이 듣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하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우리 것도 외국에서 통할 수 있구나 또는 외국인이  좋아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심어준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외국인도 한국에 왔으면 한국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대중에게 교육되고 전파되고 있었던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들이 만든 기준에 수 많은 다문화 가정의  며느리들이 그들의 것을 버리고 우리 문화에 동화되기를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이다.


- 목 차 -

00장. Prologue

01장. 만남

   1) 낯선 곳에서의 인연

   2) 종을 뛰어넘은 표범의 사랑과 훔친 머리카락

   3) 네가 나무를 알아?

02장. 반찬의 나라로

   4)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5) 반찬의 나라로 편도 티켓

   6)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7) 먹 가는 독일 처자

   8) 낯선 곳으로 씩씩하게 내 디딘 첫 걸음    

03장. 결혼 (가제)

   9) 검정 턱시도와 검정 구두? (결혼 준비)

   10) 결혼 할래? 출장 갈래?

   11) 왜 하필 한국 사람이니?                

04장. 씩씩한 독일 여전사

   12) 한국은 극단주의인가봐

   13) 비닐봉지는 "No"

   14) 외갓집 차례지내기

   15) 아름다운 대한민국

   16) 명품 가방

05장. 아이 키우기

   17) 임신과 출산

   18) 혼혈아에 대한 생각

   19) 금지하는  것보다 위험함을 가르치는 것

   20) 육아휴직과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

   21) 어린이집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

   22) Bilingual

06장. 한국 회사와 외국인

   23) 외국인을 위한 자리

   24) 우리의 현실

   25) 우리는 왜 이렇게 일에 미쳐있나

07장. 세계 속 한국, 한국 속 세계

   26) 다문화 사회

   27) 국제커플에 대한 인식

   28)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

   29) 한류에 대한 생각

08장. 인생에 대해 생각하다

   30)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결심

   31) 계속되는 방황

   32) 철밥통을 버리다.

09장.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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